간단히 정리하는 이탈리아 역사

by 옥상평상

1. 7 왕 시대-공화정 시대


기원전 753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로마가 건국되었다. 인근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기 시작하며 7 왕 시대를 열었다. 로물루스를 제외한 나머지 6 왕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대 그리스의 선진 문명을 가지고 있던 에트루리아 인들에게 정복되어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배를 당하게 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마침내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 인들을 몰아내고 귀족과 평민들이 정치권력을 나누어 갖는 공화정을 세웠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형제

2. 제정 시대- 로마의 분열- 서로마 제국의 멸망


공화정 체제의 로마는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여 대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기원전 60년경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등장하여 공화정의 기능을 무너뜨리고 삼두 정치를 실시했다. 1차 삼두 정치는 그 유명한 카이사르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마무리되지만 그 역시 양아들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되고 만다.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2차 삼두정치의 와중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면서 황제가 권력을 독점하는 제정시대가 시작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불리는 옥타비아누스가 지배하는 시대를 지나 로마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다스리던 5 현제 시대에 제국의 최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황제의 잦은 교체 등의 이유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던 로마 제국은 330년,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혼란을 수습하려 했던 콘스탄틴누스 대제에 의해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하지만, 종교의 힘으로도 통합에 성공하지 못했던 로마는 이후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서로마 제국은 5세기경 멸망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이후에도 1000년이나 번성하였다.

로마 제정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의 모습

3. 중세 시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 반도는 혼란기를 거친 후 신성 로마 제국에 의해 지배되다가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피렌체, 베네치아, 시에나 등의 도시 국가로 분열되게 된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여덟 번에 걸쳐 일어난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 역시 멸망하게 된다.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이 십자군 전쟁을 기회로 이슬람 세력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이 축적된 부는 르네상스를 탄생시키는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화가 지오반니의 그림 '콘스탄티노플 함락'

4. 르네상스


'문예부흥운동'이라고도 불리는 르네상스는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를 탈피하고, 개인의 개성과 합리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부흥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 했던 시도였다.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위치한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는 발달한 상업과 금융업을 토대로 학문 연구와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메디치 가문이 지배했던 피렌체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당대의 천재들을 배출하며 그 예술적 성과를 드높였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과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같은 위대한 건축물들은 바로 이 시기의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동서 무역로를 가로막히면서 무역업으로 번성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르네상스의 역작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피렌체 두오모 성당)

5. 이탈리아 통일


이탈리아라는 말은 지금은 나라 이름으로 쓰이지만, 통일 전까지는 이탈리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프랑스혁명에서 촉발된 자유와 평등사상은 이탈리아 반도에도 전해져 외세에서 독립하여 통일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후 통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시행착오로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가리발디 장군이 자신이 정복한 시칠리아 왕국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왕국을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인 에마누엘레 2세에게 양보함으로써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외교적인 노력으로 오스트리아에게서 베네치아를 되찾으며 1870년 완전한 이탈리아 통일을 이루었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기꺼이 양보해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이 된 가리발디 장군




6. 무솔리니 정권- 이탈리아 공화국


통일을 이룬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문화와 체제 속에 살아온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데 융화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금융과 공업이 발달했던 북부는 부유했던 반면, 그렇지 못했던 남부는 상대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제 체제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낀 남부 지역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한 혼란은 1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그 유명한 무솔리니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혼란을 하나의 이념 아래 모든 사람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파시즘 운동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무솔리니는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이들을 잔인하게 제거했고, 독일의 히틀러와 연합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무솔리니는 곧바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꾸어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히틀러(우)와 함께 있는 무솔리니(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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