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로마

바르셀로나 공항-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이탈리아 로마

by 옥상평상

반가워, 로마

바르셀로나 공항-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이탈리아 로마



11살 일기

스페인에서 로마로 왔다. 지저분한 로마의 모습에 조금 실망했다. 로마도 좋아할 수 있을까?

9살 일기

아빠가 다음에는 꼭 화장실이 있는 방을 예약해줬으면 좋겠다.




비행기는 다행스럽게도 제시간에 출발하였다. 비행기 안에는 귀에 익은 스페인 말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보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유럽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반도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도 스페인어도 잘 모르는 나였지만 언뜻 들어도 이탈리아 말과 스페인 말은 억양부터 단어까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이를테면, 여행 중 많이 쓰게 되는 '감사하다'는 말은 스페인어로 그라시아스(Gracias),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Grazie)였고, '다리(교량)'를 뜻하는 말은 스페인어로 뿌엔떼(puente), 이탈리어로 뽄떼(ponte)였다. 두나라 사람의 기질 역시 평소에는 활기가 넘치고 친절하다가 화가 나면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다에 둘러싸였지만 대륙과도 접하고 있는 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인 걸까? 때때로 우리네 정서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경우 역시 종종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그 두나라 사이에 놓인 거대한 지중해를 무심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로마로 오기 위해서는 공항버스나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야 했다. 공항버스가 더 저렴하긴 했지만 아이들과의 초행길이었기에 비싸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는 스페인의 기차인 렌페에 비해 낡고 관리가 덜된 느낌을 주었다. 비교적 최근에 성장을 이룬 스페인의 경제 상황과 이미 발전을 이뤄 다소 정체된 이탈리아의 그것에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테르미니 역이 있는 자리에는 원래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의 이름도 목욕탕을 의미하는 '테르미니'이다. 3년 만에 다시 마주한 테르미니역은 그때에 비해 많이 정돈된 느낌이었다. 요 몇 년간 발생한 테러의 영향 때문인지 관광객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그와 더불어 구걸을 하는 부랑자들의 모습 역시 대체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있던 자리 곳곳에는 자동소총을 어깨에 맨 군인들이 경계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세상을 연결하는 망은 더욱 촘촘해졌지만 그 이면의 갈등과 분열은 기술의 발달과 무관하게 세계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문득 영화 '메트릭스' 나 ' 터미네이터 '에 등장했던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떠오르며 서글프고 답답한 감정이 들었다.

로마의 지하철 노선은 A선, B선, C선 총 3개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A선과 B선은 테르미니 역을 중심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C선도 개통되어 있었지만 아직 A선 B선과는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앞으로 C선은 우리 숙소가 있는 A선인 '산 지오반니(SAN GIOVANNI)'역을 지나 콜로세움이 있는 B선인 '콜로세오(COLOSSEO)'역을 지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통에 지금도 십 년 넘게 공사 중인 콜로세오 역이 언제 완성이 될 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숙소가 있는'산 지오반니(SAN GIOVANNI)' 지하철 역까지는 테르미니 역에서 세정거장 밖에 되지 않았다. 산 지오반니 역에 내린 후 트렁크를 끌고서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지하철 계단을 힘겹게 올라섰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로마의 오래된 석조 주택들이 무표정한 느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로마 지하철 노선도 (출처: 구글이미지)

“ 지하철도 집들도 스페인보다 더러워요.”


로마에 대한 일우의 첫인상이었다.


“그러게. 그만큼 오래된 도시거든.”

미리 숙소 위치를 입력해 놓은 구글 지도를 따라갔다. 낡은 주택의 커다란 현관에 숙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건물 현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황당한 마음에 문 앞에서 십분 정도 서성이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때마침 식료품 배달을 온 젊은 청년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물건을 넣기 위해 문을 여는 그를 따라 간신히 건물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 아빠 여기 호텔 아니에요? ”

“ 응, 호텔 가격이 비싸서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했어.”

“ 다른 사람들이랑 화장실 같이 쓰는 건 싫은데.”


혁우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고 불안해했다. 아무래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알베르게 숙소의 기억이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고 모든 것이 끝났 것은 아니었다. 숙소가 위치한 3층에 도착해 게스트 하우스의 벨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세 번 네 번 벨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주인은 외출 중인 모양이었다. 내가 쓰는 유심은 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더욱 난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성통화도 가능한 유심을 구입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도 나의 굳어진 표정을 읽었는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응, 잠깐만.”


하는 수 없이 숙소 예약 사이트의 고객센터에 메일을 남겼다. 하지만, 30분이 넘어가도록 답변은 오지 않았다.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얘들아 오늘은 어쩌면 밖에서 자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곤하고 처진 기분에 아이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실없는 말을 던졌다.


“와 재밌겠다.”

“야 넌 밖에서 자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냐?”


속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혁우에게 일우가 핀잔을 주었다.

다행히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숙소 주인인 젊은 아가씨들이 허겁지겁 도착했다. 잠시 시장을 보러 갔다 왔다며 내게 연신 사과를 했다. 진심 어린 그들의 사과에 내 마음도 금세 풀렸다. 하긴 달리 생각하면 급하게 다른 숙소를 알아보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숙소의 상태도 깔끔하고 훌륭했다.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에서 불안이 사라졌다.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딸려 있어 빨래를 널기도 좋고 답답하지 않아 좋았다.


테라스가 있던 숙소의 모습

"화장실만 있으면 완전 특급 호텔인데."


일우 역시 혁우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방에 없는 점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친절하고 유쾌한 주인 아가씨는 늦은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하면서 이런저런 숙소 이용요령을 알려 주었다. 그런 그녀의 친절함에 감사의 표시로 스페인에서 사 온 바르셀로나 맥주를 줬다. 별스럽지 않은 선물임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짐을 정리한 후 저녁거리를 사러 인근 마트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많이 보았던 까르푸 매장이 반가웠다. 컵라면 따위를 찾을 수가 없어 오늘 저녁은 그냥 시리얼과 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이탈리아 도착 기념으로 이탈리아 맥주인 페로니를 곁들였다. 내일은 좀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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