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투어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테르미니 역 나이키 매장에 가기 위해서는 어제 내렸던 산 지오반니 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했다. 산 지오반니 역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더불어 로마 4대 성당 중의 하나인 성요한을 기리는 '산 지오반니 인 라테란 성당'이 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모든 성당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있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은 콘스탄틴누스 황제가 바티칸의 교황에게 기증한 성당이라고 한다.
바티칸 투어의 출발장소인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는 한 스포츠 매장 앞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열 명이 넘었다. 잠시 후 레게머리를 한 젊은 가이드가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낼 것만 같은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 와! 멋있다.”
혁우는 그의 흑인 래퍼 같은 외모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낯가림을 하지 않는 일우는 벌써부터 가이드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다. 여행기간 한국 사람을 볼 기회가 없어서였는지 아이들은 한국 사람만 보면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우리는 바티칸시티가 위치한 오타비아노(Ottaviano) 역으로 향했다.
바티칸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을 따라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바티칸 박물관 내부를 안내하는 다른 가이드에게 맡겨졌다. 피곤함 때문인지 다소 기계적으로 설명을 하는 여성 가이드였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빠른 말투 때문이었을까? 가우디 투어에서는 그렇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듣던 아이들이 그녀의 설명에는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의 어마어마한 인파와 소음 역시 아이들의 집중을 방해하는데 일조를 했다.
마지막 코스인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섰다. '천지창조'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박물관 직원들의 ‘노 포토(NO PHOTO), 사일런스(SILENCE), 쉬’라는 소리가 줄곧 반복 대고 있었다. 작품을 복원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대가로 얻은 일본 nhk 방송국의 저작권을 이유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이야기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인한 음파가 천장화를 훼손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만약,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반복적으로 울리는 직원들의 경고음이 더 피해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체 관광객들이 빠져나가면서 서 있기도 힘들었던 성당 내부에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벽에 길게 설치된 의자에 앉아 천장화를 올려보았다. 몇 백 년 전 미켈란젤로가 정성 들여 그린 다소 건방지게 누워있는 아담과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하느님의 거대한 모습이 망막을 덮쳐왔다. 둘의 모습은 뇌의 형상을 본 뜻 것이라고 한다. 왜 하필 뇌의 모습이었을까? 언뜻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은 살짝 떨어져 있었다.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직전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에 떠밀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바티칸 박물관 바깥으로 떠밀려 나왔다. 아침에 봤던 레게머리의 가이드 청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성 베드로 성당부터는 자신이 안내한다고 한다. 그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예쁘지만 차가운 누나보다는 투박하지만 서글서글한 형이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꽃보다 마음이랄까? 아이들은 가이드 형 옆에서 깃발을 들고선 가이드 놀이를 했다.
오늘부터 가이드!
"아빠 나도 크면 형아처럼 가이드하고 싶어요."
"나도 형아처럼 파마할래요."
일우와 혁우는 가이드 형이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바티칸 성당을 관람한 우리는 가이드 청년이 추천한 바티칸 근처의 식당에서 엔쵸비 피자와 파스타를 먹은 후 로마 3대 젤라토 가게라는 '올드 브리지'에서 젤라토를 먹었다. 올드 브릿지는 여전히 젊은 아가씨에게 훨씬 많은 양을 주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그 법칙은 어린이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일우와 혁우의 젤라토 역시 다른 젊은 여성들의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크기였다. 올드 브릿지는 무조건 젊은 아가씨와 함께 가는 것이 진리였다. 이곳에서만큼은 적어도 마음보다는 꽃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A선 스패냐 역(Spagna)에 내리자 바로 스페인 광장이 나왔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바로 그 광장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감흥이 없던 아이들도 계단에 걸터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물들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더 이상 영화 속 오드리 헵번처럼 젤라토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광장의 청결함도 중요하겠지만, 현실에서의 탈출구인 관광지에서조차 낭만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었다.
트레비 분수에 갔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공사 중이었던 까닭에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인근의 유명한 카페 '타짜 도르'에도 들렀다. 맛있기로 소문난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해서 먹었다. 쓴 맛과 단 맛의 조화라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독특한 맛이었다.
파리에서 봤던 팡테옹 건물의 원조 격인 팡테옹에 들어섰다. 바티칸 박물관의 '아테네 학당'을 그린 라파엘로가 묻힌 곳으로도 유명한 팡테옹은 신기하게도 둥근 천장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음에도 건물 내부로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건물 내부를 흐르는 공기의 대류 작용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궁금했다. 하지만 청명한 날씨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팡테옹 신전을 소개합니다!
팡테옹을 지나자 넓은 나보나 광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광장에 놓인 세 개의 분수가 어둑해지는 로마의 저녁을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보나 광장은 원래 콜로세움처럼 모의 해상전투 등이 벌어졌던 경기장이 있던 장소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 있는 자리는 모두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석이었다고 한다.
나보나 광장에는 유명한 세 개의 분수가 있다. 그중 가운데의 것이 베르니니가 설계한 4대 강 분수다. 베르니니는 바티칸 광장에 늘어선 아름답고 거대한 기둥들을 설계한 이로 유명하다. 4대 강 분수는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갠지스강, 유럽의 다뉴브강, 남미의 리오 강을 형상화했다.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형형색색의 조명에 빛나는 물줄기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광장 한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리의 화가에게 아이들의 케리커쳐를 부탁했다. 뭔가 아이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을 남겨주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십여분이나 기다려서 받은 그림 속 아이들은 안 닮아도 너무 안 닮았다. 아쉽지만, 추억 한 조각 건진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