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소주, 삼겹살

폼페이- 아말피 해안- 포지타노

by 옥상평상

폼페이, 소주, 삼겹살

폼페이- 아말피 해안- 포지타노


11살 일기

오랜만에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먹었더니 맛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돈을 많이 쓴 것 같아 조금 걱정이다.


9살 일기

옛날 연극에서는 직접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옛날에 태어나지 않길 다행이다.


남부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3년 전 나 홀로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에 같은 여행사로 신청한 투어였다. 여섯 시도 안 되는 새벽에 일어나서 숙소를 나와야 했다. 해뜨기 직전의 어둑하고 스산한 거리를 지나 산 조반니 지하철역에 다다랐다. 로마의 출근길 지하철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러시아워 못지않게 붐비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도 느꼈던 사실이지만 대도시의 삶은 어디나 치열하기 짝이 없는 듯했다.


투어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3년 전의 대형버스는 20인승 정도의 미니버스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그날 예약한 관광객의 숫자에 맞추어 버스의 크기도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어제 바티칸 투어에서 만났던 S와 J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로마로 넘어오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한국 청년들의 모습도 보였다. 관광지에서의 동선은 대체로 겹치는 일이 많은 모양이다.


미니버스가 로마 시내를 벗어나 이탈리아의 넓은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많은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포인트에서 재미있는 설명을 놓치지 않고 해주는 가이드가 자칫 지루할 뻔한 버스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폼페이에 도착했다.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화산재에서 건져진 고대 도시의 유적은 여전히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군데군데 새롭게 설치해 놓은 대형 조각들이 주는 위화감은 다소 아쉬웠다. 나름 유명 작가의 특별전시전이라고는 했지만 왠지 궁합이 맞지 않은 고급 재료를 섞어놓은 요리 같았다. 조각 작품에게도 폼페이 유적에게도 서로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폼페이 유적 사이에 전시된 거대한 조각들


고대 원형 극장의 무대에서는 실제 사형수를 데려다가 살인 장면을 공연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그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극장 무대를 향해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형아 여기서 진짜로 사람을 죽였대. 무섭다.”

“어차피 나쁜 죄를 지은 사형수였다잖아.”


겨우 두 살 정도의 나이 차이임에도 형과 아우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무대 위에 흘러넘쳤을 선홍색 피를 떠올리자 나 역시 극장 무대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질병 등으로 실제 죽음을 접하는 것이 낯설거나 금기시되지 않았던 그때, 죽음을 직접 본다는 일은 요즘과 달리 그렇게 대단하거나 별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폼페이 유적을 지긋이 굽어보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은 이천 년 전 이 폼페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던 화산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십여 년 전 한국에서 보았던 폼페이 유적 전시회가 떠올랐다. 이곳 폼페이 유적에서 가져온 건물 벽에 적혀있던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낙서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이천 년 전의 로마 사람과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인생에 대한 느낌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술과 지식은 수 천 년 동안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삶을 살아내는 지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였다.

물을 긷기 위해 폼페이 시민들이 수도 없이 손을 짚어 변형이 일어난 우물 턱의 모습

점심으로는 가이드가 지정해준 식당에서 피자와 와인,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한낮의 와인이 그 풍미를 더해주었다. 버스는 아말피 해안을 따라 포지타노 마을로 향했다. 지난번 방문에는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부러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했었는데 이번에는 로마에서부터 미니버스를 타고 왔던 까닭에 그런 환승 절차가 없어 편리했다. 가게에 들러 포지타노 마을의 특산품인 레몬 맥주와 레몬 사탕을 사서는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여유로운 지중해 마을의 풍광을 즐겼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왔다는 S는 이 평화롭고 한적한 모습에 유난히 감동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견뎌냈던 치열한 일상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레몬 맥주 대신 레몬 소다

로마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테르미니 역 근처에서 한인식당을 발견했다. S와 J와 함께 그곳에서 모처럼 소주와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우리 테이블 근처에서 혼자 식사하고 있던 한국 청년에게도 합석을 제안했다.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 한잔에 취기가 돌며 터무니없는 호기가 발동한 까닭이었다. 결국 그 호기는 내게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식사값으로 200유로가 넘게 나왔던 것이다. 가뜩이나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속이 쓰리긴 했지만 그래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한국 청년들에게 한 끼 사줬다는 뿌듯함이 쓰린 속을 달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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