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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다

제주 여행 with 아들

by 함지연

아들과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아들과 내가 각각 백팩 하나씩

매면 충분하도록 간소하게 짐을 꾸렸어요. 다른 짐은 줄였지만,스케치북 한 권과 오일파스텔을 가져갔습니다. 가방이 꽤 무거워졌고 뚜벅이 여행객인 내 어깨가 감당 가능할까 떠나기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챙겼지요.


어른 손가락 두 마디나 세 마디쯤 되는 길이의 알록달록한 오일파스텔 덕분에 보안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백팩 맨아래쪽에 있는

플라스틱통을 꺼내 보여주며, 공항직원에게

'크레파스'라고 설명해야했지요.


일정이 일찍 끝나 여유로웠던 둘째날 오후,

아들은 숙소에 남아 반신욕을 하고 낮잠을 자겠다고 해서 그럼 엄마는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나섰습니다.


무작정 걷다가 바다 쪽으로 창이 나 있는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2층 자리에 앉아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며 하얀 스케치북을 파란색으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옅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 더 잩은 파란색. 바다의 색은 다채로웠습니다.


평일이었고, 2층엔 친구 사이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그리고 나뿐이었어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그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내 탁자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 중 한 명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모르는 여자의 다정한 칭찬에 조금 부끄럽고, 머쓱하면서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습니다.


이건 오일파스텔이에요.


그림 그리는 모습이 멋있다며 자신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 그리다보면 쉽게 배울 수 있으니 나중에 꼭 도전해 보시라 알려주었습니다.


제주시 어딘가에 산다던, 친구 사이인 둘이 애월로 산책을 나왔다던 그녀들과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녀들이 떠나고, 한참을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과 작은 등대를 그렸습니다.

짙은 파란색과 더 짙은 파란색의 애월 바다는

여전히 다채로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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