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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산책

내가 좋아하는 도시, 속초

by 함지연

서울에서 나고 자라 60년 가까이를 살아온 나는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서울을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긴다면 어디에 정착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부산과 춘천, 그리고 속초. 그 도시들은 서울까지 오가는 교통편이 편리하고 내가 원하는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고 또 자주 방문했던 곳이기에 익숙하기도 합니다.


나는 겁이 많아서 처음 가보는 곳, 처음 해보는 경험,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면이 여전히 두렵고 긴장합니다.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 나는 설렘과 동시에 소심해져요. 때문에 몇 번 다녀왔던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은 좀 더 느긋합니다.


얼마 전, 친구와 속초를 다녀왔어요. 친구에게 속초가 처음은 아니지만, 가족들과 해수욕장 근처에만 머물렀지, 시내를 돌아다니지는 않았답니다.

속초 명예시민이리도 된 듯 친구의 가이드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나는 고속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면 시장이 나오는지 해변이 나오는지 또는 서점이 있는지 머릿속에 지도가 펼쳐집니다.


내가 방앗간처럼 꼭 들르는 물회집을 가고, 속초해수욕장 앞 카페 4층에 앉아 해변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청초호와 영랑호를 걸었습니다.

광활한 바다도 물론 좋지만, 잔 물결이 이는 호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둘째 날, 숙소에서 영랑호까지 걸었어요. 속초의 골목들을 구경하며 슬렁슬렁 걸었습니다. 호수 둘레를 다 돌려면 2시간 정도가 걸린다는데

예쁜 것들을 구경하기 위해 자주 멈추고, 사진을 찍고 감탄하며 걷다 보니, 우리는 2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걸렸어요.

눈 덮인 설악산과 영랑호의 푸른 물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넒어지고 커집니다.

헤드폰을 끼고 달리는 속초 시민을 보니, 부럽더라고요.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마음 맞는 이와의 대화 때문인지 한참을 걷고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2만 보를 넘게 걷고도 우린 밤에 또 걸어서 서점에도 갔으니까요.


왜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지?

그러게, 정말 이상하다.

친구와 나는 그런 말도 주고받았습니다.


벚꽃길과 호수 위의 반짝이는 윤슬, 여럿이 단체 사진을 찍는 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눈을 품은 4월의 설악산 봉우리들.

그리고 호수를 걷다가 사 먹은 장작에 구운 고구마의 단맛.


친구도 나처럼 이런 기억들이 떠오를까요.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속초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지 궁금합니다.


속초에 다녀왔다고 딸에게 말하니,

속초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지난봄에는 딸과 함께 갔었는데요. 딸과 함께 한번 더 다녀와야겠네요. 영랑호 둘레길에 있던 군고구마 가게에 들러 뜨겁고 물렁하고 달콤한 고구마를 딸도 맛보면 좋겠습니다. 벚꽃이 지고 나면, 호수 주위에는 철쭉이 일제히 꽃잎을 펼칩니다.


둘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철쭉이 핀 호숫가를 동그랗게 동그랗게 달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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