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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Jun 27. 2022

나의 불(不) 건강한 식단 일지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인해




누구나 건강하지 못한 습관들은 하나씩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마치 본인의 치부처럼 느껴져 차마 말 못 할 어두운 면도 있을 것이다.


나에겐  다른 가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밖에서 먹는 식습관과 집에 혼자 있을  먹는 식습관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들과 있을 때는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먹는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는편이고, 혼자 있을 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나만의 세계에 갇힐 때가 있다. 마치 직장생활을 하기 위한 ‘사회적인 자아 입은  출근한  퇴근  비로소 나의 ‘본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저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매운 음식이나 평소에 먹고 싶었던 자극적인 음식을 통해 풀기도 한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이면 시원한 에어컨을 쐬면서 유튜브·넷플릭스와 같은 재미있는 영상과 함께라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차이점은 '의식'의 차이일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머릿속으로 생각 후 구입하고 먹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그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눈앞에 있는 음식들을 해치우듯 먹는 건 같은 음식을 먹는다 해도 차이가 클 것이다. 그저 불안함과 무력감 사이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나 자신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 행위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닌, 폭식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위해 그간 찍어뒀던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저에겐 너무 부끄러운 치부나 다름없지만 용기 내서 올려봅니다.




 주로 밤 기분이 공허해지면 그날 식사량과 상관없이 마음의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달달한 간식부터 고칼로리의 정크푸드를 찾게 된다. 달달하고 짭짤한 맛이 혀에 닿아 목을 타고 넘기는 순간, 잠시나마 평온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어느 정도의 임계점을 넘어가면 다시 기분이 급격하게 곤두박칠 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가짜 배고픔이라고 하듯 텅 비어있는 듯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욱여넣기 형식의 먹는 행위이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 먹은 자리를 둘러보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밀려오는 자괴감과 함께 더부룩한 상태로 다음날까지 소화가 되지 않아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괴로워할 때가 많다. 좋지 못한 습관은 늘 그렇듯, 후회하면서도 어느새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정신을 차리고 사진으로 남겨두기 위해 찍고 있을 땐 늦은 뒤였다. 하나씩 모아 담아 쓰레기통에 넣는 순간, 내 감정도 꽉 차서 더 이상 들일 공간이 없을 때, 하나씩 비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한다. 다음번에는 양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봐야지, 액수를 줄여봐야지 와 같은 수없는 다짐과 쳇바퀴처럼 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늘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다.




식단일지, 아침에 과일 챙겨먹는 습관, 건기식도 챙겨 먹기 위해 요일별로 구분되어 있는 포켓에 담아



 항우울제와 병원에서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심리치료는 계속 이어오고 있지만, 식단을 바꾸려면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필요했다. 우선 얼마나 불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는지, 주로 어떤 상황/감정 일 때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지, 자세하게는 어떤 음식들을 먹었는지 식단 일지를 작성하면서 객관화하고자 했다. 단순히 하루에 몇 칼로리를 섭취했냐 와 같은 '양'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어떤 종류의 음식을 많이 찾는지와 같은 '질' 적인이 중요했다. 워낙 오랫동안 굳어져 왔던 습관이기에 몸이 받아들이기까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기에 식사시간 알람 설정이나 동기부여 멘트를 책상 앞에 써붙이고 수시로 되새기려고 노력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지금은 전보다는 먹는 방식이나 음식의 질 면에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헤매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는 혼자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이 불가능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면 본가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집밥이 그립곤 하다. 독립을 한 뒤에야 집밥의 소중함을 한 번씩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의 반찬들은 약간은 밍밍하고 싱거운 반찬들이지만 건강한 현미밥과 함께라면 그날 하루의 에너지는 가뿐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밥상이다. 요즘에야 반찬가게에서 다양한 반찬을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지만 똑같은 음식이어도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은 분명 다르다. 숟가락에 밥과 함께 반찬들을 한가득 올려 입안에 와앙-! 하고 넣었을 때 느껴지는 꽉 찬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따뜻하고 정성이 느껴지는 밥상의 힘은 정말이지 이렇게 위대하다. 혼자서도 이렇게 저렇게 건강한 음식들로 세끼를 채워보려고 하지만 그때의 그 느낌을 경험하기는 힘들다.




정말 사소하지만 진심이 담긴 따듯한 안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언급하면서 일명 아이유 식사법으로 알려진 '마인드 풀이팅'이 한때 인터넷을 통해 바이럴이 됐었다. 말 그대로 입안에 음식을 넣었을 때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느끼면서 꼭꼭 씹어먹는 행위를 말한다. 가끔 일부러 핸드폰을 치우고 조용한 공간에서 밥 먹는 행위에만 집중해보곤 하는데, 아작아작.. 냠냠.. 치아의 씹는 저작능력부터 혀를 넘어 목을 타고 음식이 몸속으로 들어갔을 때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사실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밥을 먹는 행위는 이토록 소중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잘 챙겨 먹고~!"라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너의 안위를 생각하며 늘 응원할게! 라는 묵언 중 응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부분으로서,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밥을 다시 찾게 되면 나이가 든 거라는 말은, 건강한 입맛을 되찾으려는 때를 말하는 동시에 나를 키운 누군가의 노동을 깨닫게 되는 때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고수리>


먹는 일이 곧 사는 일 같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에는 사는 일도 지겹고, 사는 일이 즐거울 때에는 먹는 일에도 흥미가 붙습니다. 이것은 저만 생각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국어사전을 보아도 '먹다'와 '살다'는 이미 서로 만나 한 단어가 되어 생계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먹고살다'

앞으로도 저는 낯선 식당들에서 자주 혼자 밥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꼭꼭 씹어 먹다가 저처럼 혼자 있을 법한 이에게 으레 전화를 한 통 걸기도 할 것입니다. '밥 먹었어?'로 시작되어서 '밥 잘 챙겨 먹고 지내'로 끝나는 통화.

오늘은 무엇을 드셨을지 궁금한 밤입니다.

<계절산문,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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