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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Jul 26. 2023

[간식 시집] 행운의 아바초! 아이스 바닐라 초코라떼

작고 초라한 생활을 광활하게 만들어준 행운의 클로버, 아바초

*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시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작고 초라한 생활을 광활하게 만들려면, 우선 클로버 하나를 발견하기. 그리고 꿈꾸기."​

103쪽. 한정원, <시와 산책 -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최근 몇달간 도슨트 교육을 받은 후 도슨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육 받는 동안 내가 발표 준비했던 작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연인, 만리장성 걷기> 처럼 어느새 계절이 봄에서 여름이 되어버렸다. 수료증을 받아도 정규 도슨트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전시가 열릴 때마다 몇회씩 활동하게 될 것 같다. 수업에 참여한 후로 지각도, 결석도 한번도 안하고, 매순간 집중했고, 최종 시연 결과도 좋았고, 1기 대표로 인터뷰도 했고, 연령대도 직업군도 성격도 너무나 다른 동기들과도 친해졌고, 마지막 도슨트 활동 직전의 현장 트레이닝까지도 잘 마쳤다. "선생님은 그냥 따로 말 보탤 것도 없이, 그냥 선생님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라며 멘토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전해주신 말을 그대로 쓰자니 쑥스럽지만, 그동안 마음 졸이며, 부족한 나의 한계를 시험하며, 가족들의 협조를 구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성장했기에 이렇게나마 꼭 기록해두려고 한다.

아무튼 나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까지 나를 잘 버티게 해준 소울 푸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동네 카페 코코 피트의 '아바초'이다. 아바초는 '아이스 바닐라 초콜릿 라떼'의 줄임말로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스쿱을 컵에 넣고 발로나 카카오 파우더를 넣어 만든 초콜릿 우유를 부은 다음에, 이탈리안 마라스키노 체리를 두세개 올리는 것이다. 묵직하고 진한 맛부터 하겐다즈와 발로나의 조합까지, 다른 카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료이다. 최소한 베이킹을 해봤거나,  디저트에 진심인 사람만 알 수 있는 두 재료의 만남이지만 아무래도 단가가 너무 높아서 선뜻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 메뉴 같다. 아무튼 나는 처음 이 코코 피트를 방문하며 문 밖에 붙어있는 하겐다즈와 발로나 로고가 찍힌 스티커부터 신뢰가 가서 이 음료를 맛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바초는 보통 카페에서 파는 프라페, 프라푸치노, 혹은 라떼에 아이스크림을 올린 음료들과 맛이나 재료는 비슷할 수 있지만, 역시 발로나와 하겐다즈의 조합은 뭔가 다르다. 정말 한 자리에서 두개도 먹을 수 있는 맛, 너무 맛있어서 평생 다이어트 중인 내가 오히려 운동후에 꼭 챙겨 먹고, 무조건 0 칼로리라고 우기고 싶은 맛이다. 하겐다즈와 발로나에 유난히 집착해서 한 자리에서 파인트 한통을 다 먹거나 발로나 커버춰를 1kg씩 사놓는 나이니까 이 맛을 아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 가까이 있다는게 얼마나 재밌고도 힘이 되던지. 하지만, 늘 조심스러운 나는 사장님께 나의 이 흥분된 마음을 선뜻 전하지는 못하고, 조용히,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늘 먹던 그것 주세요" 하며  '아바초'를 주문하곤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바초의 킥은 '체리' 이다. 설탕에 절여진 고급스러운 색감의 체리, 이 맛이 자꾸 생각나서 결국 나는 luxardo의 병에 든 체리를 아예 한병을 사고야 말았는데, 사장님 말씀으로는 그냥 장식용인 줄 알고 안 먹는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그 맛있는걸! 광택이 나는 검붉은 체리에서는 마치 럼에 절인듯한 향마저 나는데.

그러던 어느날 코코 피트 사장님의 인스타를 보다가 사장님께서 내가 도슨트 교육을 받는 기관의 미디어 파사드를 제작한 걸 보고는 이런 연결고리가 또 생겼구나! 하며 (속으로) 엄청 반가워 했다. 몇번 망설이다가 사장님 작업 하신거 너무 멋지다고 몇 마디를 건넸다. 코코 피트 공간에 걸린 '바우하우스' 사진들을 볼 때마다 뭔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예술을 사랑하는 면에서 사장님과 또 한번 더 통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맛과 예술에 모두 진심인 사람들, 물론 내가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참 만나기 어려웠기에 사장님의 작업과 업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척 즐거웠다.  그런데, 정작 나는 사장님께 사장님과 사소한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을 말을 못하고 있었다. 일단 도슨트 교육이 끝까지 잘 마무리된 후, 아주 후회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후에 사장님께 알리고 싶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비장하게 몰입을 했을까 싶지만, 아무튼 그런 시간이 있었던 덕분에 도슨트를 시작하기 전의 나와는 정말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니까. 아무튼 마지막 최종 발표 준비를 하면서 스크립트가 잘 안 써질 때의 압박감이나 통째로 외워야 하는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아바초를 먹었고, 때론 두개를 나혼자 다 먹기도 했다. 나에겐 지금의 1인분은 적은 양이라 메가 사이즈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ㅋㅋ

덕분에 나는 아바초와 함께, 봄, 여름의 성장통을 잘 겪어 냈고, 사장님과의 대화도 더욱 친밀해져 갔다. 최근에 본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아멜리아 호루비의 <소셜 미디어가 아닌 방식으로 일과 삶을 공유하는 100가지 방법>. 이중에 내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 블로그를 시작한다.

- 책 읽기 모임을 주최한다.

- 당신이 좋아하는 회사, 팟캐스트, 저자에 대한 리뷰를 남긴다.

- 산책을 나가서 주변을 살펴본다.

-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동네 커피숍, 책방, 베이커리, 바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점원들과 친구가 되어 본다.' 이다.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울림'은 여러번의 심호흡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매개로 서로 마음을 열어가며 각자 생각하는 것을 나누는 것도 '작고 초라한 생활을 광활하게 만드는 일' 같다. 그렇게 아바초는 나에게 행운의 클로버가 되었다. 클로버를 발견했으니, 이제 꿈을 꾸어야 겠다.


오늘의 표현

'좋아하는 것을 매개로 서로 마음을 열어가며 각자 생각하는 것을 나누는'​


#간식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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