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방식
아내의 뱃속에 아들이 찾아온 뒤,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더 두려워했다. 한 번, 이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단단히 금이 간 마음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 내딛는 세계는 설렘이 크다. 마치 핑크빛 세상처럼. 하지만 한 번의 실패를 겪고 나면, 그 크기와 상관없이 ‘불안’이라는 녀석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 자는 아내를 보다가 불현듯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이유다.
"이번에도, 유산하면 그만하자. 그리고 우리 둘이서 여행 실컷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자."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기분이 가벼울 때는 내 큰 머리나 성격을 닮으면 어쩌나 하며 웃기도 했지만 웃음 속에는 언제나 불안이 섞여 있었다. 대부분의 날에는 좋은 걸 하나도 닮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매일밤, 조용히 빌었다.
12주가 지나고 안정기에 접어들자 유산에 대한 불안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제야 아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한 번 놓쳤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우리는 그 손을 꼭 붙든 채 기다림을 아껴 썼다.
사람들은 성별을 두고 유치한 추측을 벌였다. 수정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야바위판을 보듯 여러 미신과 징조를 끌어다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랜덤박스의 포장지가 조금 벗겨지면서 아들이라는 실마리가 나타났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집에 있는 인형 탓이라고 웃기도 하고, 내 기도 탓이라며 한 마디씩 보탰다. 모두가 우리와 같이 기다려주었다.
그날부터 고민이 달라졌다. 아들이라면 어떤 성격일까, 누구를 더 닮으면 좋을까. 입체 초음파 사진이 나오자 ‘닮은 점 찾기’는 더 진지해졌다. 친척들은 우리 옛 사진을 겹쳐보며 각자의 추측을 늘어놨고, 아들은 조금씩 얼굴을 갖춰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세상에 나온 순간,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오래 붙잡아온 불안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낯선 얼굴 하나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은 매일 다른 얼굴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출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아들은 여전히 미지의 선물, 랜덤박스 그 자체였다.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세상 밖에서 만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무언가를 그렇게 오래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끝까지 잡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둘이서만 기다리지 않았다. 누구를 닮았는지 추측하며 증거를 보내주는 사람들, 말없이 등을 다독여 준 사람들, 그들 덕분에 우리는 계속 기다릴 수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정답이 궁금했던 게 아니다. 랜덤박스를 함께 열어보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손을 잡고 있던 건 '불안'만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손이 조용히, 우리 위에 겹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