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혼 Nov 04. 2021

모든 순간이 너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교사라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방학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들처럼 방학 내내 학교에 가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한결 가볍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직업 특성상 휴가를 학기 중에는 거의 쓰지 못하는 점을 생각하면 방학이 없는 교직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이번 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깨어있는 시간을 백으로 본다면 구십은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매일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힘겹기도 했지만 사소하게 보여도 조금씩 확실하게 성장해나가는 아들의 순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값진 기회이기도 했다.


 아들도 함께 한 시간이 좋았는지 예전보다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이유는 다른 집과 같았다. 아빠랑 놀면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처럼 엄마보다 아빠가 쓸모 있는 경우를 알고서 아빠를 찾아댔다.


 뜨거운 태양, 상쾌한 파도 소리로 가득했던 여름방학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8월이 다 되어서야 뒤늦게 늦바람이 불어왔다. 예전 같으면 해외여행을 가거나 바닷가에서 보내던 휴가를 못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아쉬워졌고 하루라도 시간을 내어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육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전 작업, 사후 조치 등을 철저히 하여 아내의 불만을 최소화시키는 일이 불가피했지만 여행 당일이 다가오기까지 익숙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던 까닭에 아내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잠깐씩 술자리를 가지거나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작정하고 여행을 간 것은 아들이 태어나고 처음이라서 기대가 컸다. 코로나 때문에 이전과 같이 여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아들이 없던 시절처럼 친구들과 바닷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바다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달랐지만 우리는 서서히 남편, 아빠의 굴레를 던져버리고 십 대처럼 웃고 떠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가기 전에는 별로 좋아하던 기색도 없던 친구가 오히려 나보다 더 신나서 노는 모습을 보였다. 늙고 무거워진 몸뚱이들이 바다에 가볍게 둥둥 떠다녔다.

 

 나도 덩달아 이 순간만큼은 잊자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해가 지는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했다.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최고조로 향하고 있었고 친구들은 더 멀리 나아가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친구들을 따라가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즐거워질수록 이유 모를 허전함도 같이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방학 내내 안아 들고 있던 아들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아가 지긋지긋해서 더는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름다운 순간을 아들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 새로운 것을 보여주면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아빠가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면 다 웃어주는 아들이 이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신나서 즐거워할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져서 이번 여행은 실패해버렸다. 다음에는 꼭 아들과 함께 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