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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Aug 30. 2021

<내가 이겨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겨레 : '곰'으로 여태 글에 등장해 온 나의 반려인간.

 요새 자꾸만 쓰기 어려운 글을 결심하다 보니 쓰는 속도는 더뎌지고 쓰기는 번거로워졌다. 그래서 오늘은 쓰기 쉬운 글을 결심했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냐 하면 내가 이겨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이겨레가 곁에 있는지 없는지 살핀다. 널찍하고 편안한 상태라면 이겨레가 먼저 출근한 것이다. 조금 좁고 따듯하고 내 것이 아닌 숨소리가 들린다면 이겨레가 자고 있는 것이다. 오늘 같은 수요일에 숨소리가 들리면 큰일이다. 이겨레의 지각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겨레 없이 기지개를 켠다. 그가 어디쯤 갔을지 무의식적으로 짐작한다. 일 하면서 마실 물을 병에 따르려고 물통을 집는다. 물이 반 정도 남아있으면 그가 자기 물을 챙긴 뒤 나를 위해 다시 물통을 채워 놓은 것이다. 아예 비어 있으면 바빠서 잊고 그냥 간 날이다.


 열쇠를 집고 길을 나선다. 지금 나의 직업은 남의 집 욕실과 주방을 청소하는 청소부이다. 이겨레는 남의 집 바닥을 청소한다. 나는 팔과 어깨를 써서 수세미로 욕실 벽을 문지른다. 그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 집 당 한 번 이상은 그런 생각을 한다. 빈말 같은 생각일 때도 있고 절실하게 그가 필요할 때도 있다. 청소하면서 집을 둘러본다. 도무지 물건을 정리할 줄 모르는 집이다. 던져놓은 칫솔 밑에 죽은 바퀴벌레가 있는데도 그냥 사는 그런 집이다. 짜증을 꾹 참고 청소 도구를 꺼낸다. 한국에 가면 그와 어떻게 집을 꾸밀지 생각한다. 우리 둘 다 청소 고수이고 어떤 집이 청소하기 편한지 알고 있으니 분명 쓸데없는 장식은 없을 일이다. 거추장스러운 행거 혹은 관리하기 어려운 대리석 아니면 때가 잘 끼는 조잡한 타일 같은 것은 차치하겠지, 한다. 그런 집을 같이 청소하는 상상도 한다. 그러다 싸우고 화해하는 상상도 한다. ‘이겨레 보고 싶다’라고 또 중얼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대개 이겨레가 오기 전이다. 나는 요가 매트를 깔고 맨몸 운동이나 요가 수련을 한다. 나는 꽤 유연한 편이어서 다리를 펴고 상체를 숙이는 ‘우타나아사나’ 동작이나 두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엉덩이를 대각선 방향으로 하는 ‘다운 독’ 자세 같은 기초 요가에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이겨레는 정 반대이다. 절대로 다리를 펼 수 없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이상하게 요가를 한다. 푸시 업이나 플랭크는 놀라울 만큼 잘 하지만 그가 요가를 하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웃기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요가 수련을 시작하면 열 일 제쳐두고 식탁에 앉아 그가 하는 동작을 본다. 사실 요가도 재밌지만 그가 다른 운동을 하는 모습도 가만히 보면 되게 재밌다. 런지를 하면서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은 진짜로 귀엽다. 더 귀여운 모습은 제자리 조깅을 하는 모습이다. 팔을 마구잡이로 흔들면서 무릎을 높이 드는 모습이 몹시 웃겨서 폭소를 터트리고 싶지만 그러면 그의 루틴이 깨지기 때문에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끌끌 댄다. 그래도 그의 루틴은 깨진다. 그는 웃는 나한테로 와서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 건드린다. 그리고 같이 웃는다. 시간이 계속 지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금방 돌아가서 운동을 시작한다. 어김없이 웃기다. 그의 운동은 금방 끝난다. 기분 탓이기도 하고 실제로 별로 안 하기도 한다. 나는 한 시간도 넘게 하는데 그는 겨우 십오 분 한다. 관람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가 반갑고 아쉬워서 그와 자꾸만 붙어 있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밤이 되기 전까지는 꾹 참을 일이다. 할 일이 많다. 운동이 끝났으니 몸을 씻고 밥을 해야 한다. 나는 정크 비건을 벗어나서 자연 식물식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라 퀴노아와 쌀을 섞어 밥을 하고 두부나 토마토 등의 재료로 가벼운 반찬을 만든다. 이겨레는 나랑 같은 음식을 먹을 때도 있고 그냥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도 한다. 자극적인 음식이 무진장 당기는 날이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 먹는 날도 있다. 지난 주였나, 콩나물 찜을 거의 한 솥을 했는데 이겨레는 한 끼에 그걸 다 먹었다. 뿌듯하게 볼록해진 배를 보면 다시 웃음이 난다. 우리 둘 다 몸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식사가 끝나면 피곤이 몰려온다. 나는 나와 그에게 시간을 준다. 그는 소파에, 나는 침대에 말없이 누워 휴식한다. 그러다 그가 너무 그리워지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그가 온다. 곁에 누워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웃긴 말을 했는지, 운동을 해서 근육이 얼마나 붙었는지 하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지난다.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와의 대화가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처음 만나던 그날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새 버렸다. 그와 말을 할 때면 유독 시간이 쏜살같다. 이렇게 고단하지만 않으면 오늘이라도 밤새 눈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을 참고 하루를 꽉 채우기로 한다. 읽던 책을 펼치거나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노트북을 열어 글도 쓴다. 나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쓰고 있는데 그는 나를 얼마나 사랑할까, 하며 옆눈으로 그를 본다.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분명 출판사에 넘길 삽화를 그리고 있을 일이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잘했으면 하다가도 그냥 그가 나를 그렸으면 하고 바란다. 어쩔 때는 진짜로 나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그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내가 그려질 때도 있다고 그랬다. 집중이 흐트러질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꽉 안거나 괜히 궁금한 것이 생겨서 질문을 던지거나 그냥 쿡 찔러볼 때도 있지만, 그러다 말기로 한다. 아쉽게도 그와 나는 따로이자 같이이기 때문에 꾹 참고 그를 내버려 둘 일이다.


 나는 꽉 찬 하루를 안고 잠자리에 든다. 그 끄트머리에서 드디어 마음 놓고 그를 꽉 안는다. 그의 숨소리는 내 것보다 크다. 냄새도 좋다. 다른 사람의 숨 냄새를 처음 사랑해 보았다. 나는 자꾸만 그 냄새가 맡고 싶어서 그가 날숨을 내쉴 때에 맞추어 들숨을 들이켠다. 그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잠이 가까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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