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17
오늘날 개의 품종은 약 34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품종을 따지나요? 안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에 비해 품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반려견을 키우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품종이 있는 강아지, 그것도 특정한 품종의 강아지를 선호한다. 반려가구 현황과 노령견 양육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반려견 가구가 가장 많이 양육 중인 견종은 몰티즈(23.7%)이다. 그다음으로 푸들(19.0%), 포메라니안(11.0%)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1위부터 3위까지의 세 견종을 더하면 50%가 넘는다. 강아지를 키우는 두 집 중 한 집이 이 세 가지의 견종 중 하나를 키우는 셈이다. 반려인들이 이렇게 견종을 가리고, 특정한 견종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품종에 대한 선호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품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품종은 생물 분류학상 종의 하위 단위로 아종, 변종 또는 유전적 개량을 통하여 생긴 새로운 개체군을 말한다. 개의 품종은 개라는 종에 속한 다양한 강아지들을 특성과 생김새로 나누어 분류한 것을 말한다. 여러 특성 중 눈에 잘 띄는 것이 외향적인 특성이라 주로 겉모습을 근거로 품종이 구별되는데 오늘날 개의 품종은 약 34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품종의 다양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개에는 새로운 형질이 만들어지기 쉬운 유전적 특징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외형과 기질을 가진 강아지들을 교배하여 품종의 특징을 강화시켜왔다.
그런데 18세기 이후 강아지 품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인위적인 교배의 결과로 새로운 품종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오늘날 존재하는 견종의 절반 가량이 최근 200~300년 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런 변화는 애완문화, 다시 말해 강아지를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기기 위해 키우는 일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일이다. 자신의 신분이나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 흔하지 않은 강아지, 교환가치가 높은 강아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자 그들의 선호에 부합하는 다양한 강아지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개들은 품종별로 크기와 털 색깔, 다리의 길이와 몸통의 비율, 귀와 얼굴의 생김새가 모두 제각각인데 이러한 개의 (외향적) 다양성은 다른 어떤 포유류보다 풍부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강아지의 품종이 인간의 욕망과 결부되어 다양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나는 강아지를 품종으로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거나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특정한 견종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오히려 품종에 따라 신체적 특성이나 활동량이 다르므로 반려견을 맞을 때 선택지가 있다면 자신의 거주환경이나 성향에 맞는 품종의 강아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한 자유의 모양이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특정 견종에 대한 선호는 개인의 경험, 미의식, 가치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다. 일종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강아지의 수많은 특징 중에서 강아지의 생김새가 취향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외모 중심사회의 모습이 반려견에게도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작고 귀여운 모습을 한 강아지 혹은 코가 납작 거나 다리가 짤따라운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강아지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모습을 한 강아지는 건강상에 문제가 많다. 작게 더 작게 개량된 강아지 중 대다수는 장기부전이나 골격계 이형성 등의 문제를 겪고 납작한 코를 한 강아지는 만성적인 호흡 곤란을 겪는다. 또한 이런 외모의 강아지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근친 사이의 교배나 마구잡이식 교배가 반복되면서 여러 가지 유전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의 기이한 취향과 과도한 욕심 때문에 생겨난 많은 강아지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품종 사이에 위계를 정하거나 순수 혈통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특정 품종에 대한 선호가 유행처럼 퍼진다는 것도 문제이다. 어떤 품종이 사회적인 주목을 받거나 미디어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그 품종에 대한 선호가 형성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동조하게 되는데 특히나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에 대한 장벽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유행은 빠르게 확산된다.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거나 사전에 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는 등의 사회적인 제도가 마련돼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혹은 의지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바로 강아지를 입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행의 흐름이 바뀌고 준비 없이 환상만 가지고 입양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다. 그렇게 유행처럼 입양되었던 강아지들 중 많은 수가 유행처럼 버려진다. 최근 유기동물 보호소에 갈색 푸들이 많이 증가한 것처럼 말이다.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앙받는 오늘날 이런 문제들은 꼬집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모든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반작용이 따르므로 이런 문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가 무엇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강아지는 생명을 가진 개체이고 오랜 세월 우리의 곁을 지키며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취향과 편의를 위해 강아지를 선택하지만 강아지는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 반려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성격을 가지며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관계없이 사랑하는 강아지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참 초라한 모습이지 않나.
아, 그렇게 말하는 너는 왜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수많은 강아지들 중에서 해리와 함께 살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가 얽히고 얽혀 생겨난 일이지만 결정적으로는 내가 강아지와 함께 살 준비가 되었을 때 해리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다음번 강아지가 있다면 꼭 해리와 닮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