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14
해리와 함께 살며 하고픈 것이 있었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패들보드를 타는 것이다. 해리는 물을 좋아한다는 리트리버인데다가 우리는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이런 바람은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리와 살게 된 다음 해의 따뜻한 봄날이었다. 바다가 잔잔하고 수온이 많이 올라서 ‘드디어 오늘이다!’ 하고 만발의 준비를 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산책로 아래 인적이 드문 해변으로 내려가 신나게 뛰라고 산책 줄을 풀었는데 해리가 주저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묵직하면서도 쿠션감이 있는 물먹은 모래의 질감이 이질적인 모양이다. “괜찮아” 하며 내가 먼저 뛰어가니 내려가 녀석도 따려 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신이 났는지 해변을 종횡무진 신나게 뜀박질을 한다. 이 여세를 몰아 바다로 들어갈 차례. 그런데 이 녀석, 바다의 끝에 엎드려 사지에 물만 적실뿐 물속으로 뛰어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무릎이 잠길랑 말랑한 얕은 물에서 앉아서 거친 숨을 내쉬며 헥헥거리고만 있다. 물먹은 강아지를 일으켜 세워 바다로 몰아보지만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다. 결국 족욕(?)을 끝으로 바다에서 철수를 했다.
다른 리트리버들은 지칠 때까지 바다에 뛰어들어서 문제라던데 우리 개는 왜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들어갈 생각을 않는 걸까 정말 이상했다. 어쩌면 움직이는 물이, 파도치는 바다가 무서운 게 아닐까, 소심한 해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인 물을 찾기로 했다. 반려견 수영장을 검색해 보니 가까운 곳에는 없고 집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적당해 보이는 곳이 있었다. 이곳이라면 해리도 안심하고 수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휴일에 차를 달려갔다. 집 앞에 바다를 두고 2시간을 운전해서 수영하러 간다는 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함께 헤엄치는 꿈을 이루려면 어쩔 수 있나.
일찍이 도착한 수영장은 해리의 발이 바닥에 닿는 얕은 수심과 그렇지 않은 깊은 수심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얕은 수심에서 함께 걸으며 물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긴장을 했는지 몸이 굳고 고개를 자꾸 빳빳하게 들기는 했지만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고 그럭저럭 잘 따라왔다. 그렇게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해리를 받쳐 들고 깊은 수심으로 갔다. 이제껏 잘 따라오던 강아지는 발이 닿지 않는 곳이라 당황했는지 온몸이 뻗뻗하게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아무리 부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20kg이 넘는 몸을 팔로 받치고 있으니 뻐근해져서 잠시 수영장 밖으로 해리를 올려주었더니 줄행랑을 치고 몸을 턴다. 그렇게 다시 물속에는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운동장에서만 놀았다. 떠날 때가 되니 다시 2시간을 돌아갈 생각에 아쉬워서 한번 더 물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손으로 해리 몸을 받치고 있다가 혹시나 하고 손을 슬쩍 빼 보았는데 역시나 온몸이 굳어 앞발만 허우적거린다. 뒷발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앞발에만 힘을 꽉 주니 무게중심이 맞지 않은 몸뚱이가 점점 뒤쪽으로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니 무서워 더 힘을 주고 그럼 더 가라앉고. 물트리버는 무슨. 완전 맥주병이 따로 없다. 가라앉는 강아지를 구조하여 철수했다.
그러고도 우리 개가 수영을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그 뒤로도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애를 썼다. 충격요법을 사용하라는, 깊은 물에 빠뜨리면 본능적으로 수영을 해서 나올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랬다가는 해리 성격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만 생기고 이번 생에 수영을 배우는 것은 아예 물 건너가 버릴까 봐 관두었다. 물갈퀴도 있는 강아지에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두어 번 더 수영장에 데리고 다니다가 이제는 해리는 물을 무서워하는 리트리버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리트리버인데 왜 물을 싫어할까 너무 이상하다 싶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해서 그러는 거라고 익숙해지면 물트리버에 걸맞은 수영 실력이 계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을 거부하는 해리를 애써 외면하고 물가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리트리버라고 해서 다 물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물을 싫어하는 강아지인데 함께 물놀이를 하고 싶은 내 욕심이 ‘리트리버가 물을 싫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아지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인지하는 것은 강아지의 품종이다. 골든 리트리버, 몰티즈, 푸들, 진도견, 시고르자브르종 등의 품종으로 강아지를 분류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품종에 대한 이미지로 그 강아지가 어떠한 성격이고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도 그랬다. 해리는 골든 리트리버이고 리트리버라면 당연히 물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해리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성격과 행동을 보였다.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수영 실력 외에도 해리는 흔히 ‘리트리버다움’이라고 꼽히는 특성들과 거리가 좀 있다. 신체적인 측면에서는 대형견치고, 리트리버치고 덩치가 매우 작다. 살집이 없어서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게 아니라 키도 작고 전반적인 체구 자체가 작다. 그래서 몸집만 보고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개체라고 “몇 개월 됐어요?”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섯 살인데요.” 하면 흠짓 놀란다. 또 온순하고 사람이라면 집에 들어온 도둑이라도 좋아한다는 일반적인 리트리버의 성격과는 다르게 경계심이 많고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 물도 무서워한다. 이쯤 되니 이 녀석 리트리버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그런데 해리가 정상성에서 벗어난 좀 특이한 개체가 아니라 원래 품종이라는 것 자체가 강아지의 성격과 특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 아닐까? 같은 품종에 속한 강아지들이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지만 어쩌면 그것은 동양사람, 한국사람들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 비슷한 행동 패턴이나 사고방식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강아지의 품종이 강아지라는 개체의 특성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강아지가 자라온 환경이나 자라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해리가 어떤 강아지인지 설명하는 말은 해리가 속한 골든 리트리버라는 종의 평균적인 모습이 아니라 해리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특정한 행동들이다. 물을 무서워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냄새를 맡을 때 사람들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여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강아지. 해리는 이런 모습을 하고 나와 함께 살고 있고, 이런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에 비하면 ‘나는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산다’라는 말은 해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매우 납작한 표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