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여행을 떠나왔다. 우리가 같이 머물던 공간으로. 그 공간은 겨울부터 차츰 쌀쌀해질 초가을까지 머물러 있었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창이 넓어 햇빛이 잘 들고 바람도 잘 들어오는 그곳. 여행지가 곧 집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과 잔상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갔다.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을 무렵. 한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냉장고와 벽에 붙어 있었고 집 비밀번호도 그 사람과의 기념일이었다. 모든 흔적. 그 친구는 비밀번호를 바꾸어주었다. 나는 요즘에 자꾸 그 비밀번호를 꼭 한 번은 틀리면서 집에 들어오는데 그 순간이 참 견디기가 힘들다. 몸이 기억하는 것들. 나는 여행에 늘 서툴고, 모든 걸 잘 마무리하지 못한다. 아직 마무리할 것들이 참 많은데 그러기에는 하루는 늘 짧고 사람을 보내기에는 한 달도 참 짧은 것 같다. 이 여행은 언제쯤 마무리될까. 함께 찾아온 곳에서 혼자 머물기란 외롭고 독에 중독된 듯 매초 쓰라리다. 선택적으로 혼자가 된 거라면 참을 수 있었을까. 사랑은 껍데기부터 아름답다. 눈물의 허물도. 견디기 위해 웅크리는 모양도. 우리를 감싸던 그곳에서 가능하다면 더 따스한 바람을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