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속에서

by 미래

램프의 요정 지니가 소원 한 개만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10억을 받는 것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지니에게 내가 생각했던 삶을 그대로 살게 해달라고 할 거다. 내가 바라던 내 삶의 모습, 내가 꿈꾸던 내 모습대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릴 때 누구나 대통령을 꿈꾸었고 의학드라마를 보며 의사를 바랐다. 물론 한 때 나도 TV 속 모습들을 보며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자라면서 수십 번 변했다. 당시 꿈은 막연한 손에 잡히지 않는 별과 같았고 나이를 먹으며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갔다. 의사를 하려면 희생정신도 있어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 나는 그런 조건들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의사라는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꿈을 꾸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소원이란 걸 유튜브 콘텐츠 편집을 하며 깨달았다. 최근 동생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주요 콘텐츠는 리얼리티 쿡방이다. 동생의 요리를 내가 찍는 거다. 유튜브 붐이 일어났을 때부터 채널을 개설하자는 말이 오갔지만 그때는 이미 유튜브가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라 유튜브로 성공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유튜브로 성공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취미이자 재미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시도하기로 했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는 동생과 대학에서 영상물을 좀 다뤘다는 내가 힘을 합쳤다. 재료는 주로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재료들로 동생이 만들 줄 아는 요리들이었다. 초보 제작자라 촬영은 핸드폰뿐이었다.


몇 개의 영상을 촬영했고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편집했다. 필요 없는 부분은 자르고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늘였다. 각종 자막과 효과로 영상미를 더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편집을 하다 보니 재미있었고 나름 적성에 맞았다.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하는 일이지만 손은 계속 움직였다.

일단 편집을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편집하는 시간 동안은 이 영상을 잘 만들겠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잡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편집에 열중하게 되고 내 생각대로 영상들을 조작하는 시간들을 즐겼다. 조금만 하다 자야지 하다가도, 어느새 밤이 훌쩍 지났다.


편집은 내 눈으로 보면서 하는 일이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은 계속 고쳐갈 수밖에 없다. 유튜브 콘텐츠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편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자르고, 붙이고, 꾸며주며 완벽하게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부끄러운 실수는 아무도 모르게 지워버리고,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잘했을 때는 길게 보여주고 싶다.


누구나 자신이 상상한 장면들을 각자의 타임라인에 순서대로 이어 붙이고 싶어 한다. 사회가 정해둔 규칙처럼 여겼지만 졸업을 하고, 경험을 쌓고, 사랑을 나누고, 지혜를 갖고, 성장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려 한다. 어떤 순서로 이어지든 완성된 편집본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중간에 계획이 어긋나거나 빈 공간이 생기면 절망한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순서를 바꾸고 자신의 인생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프레임 속 경험한 흔적들은 그 자체만으로 완벽히 가치가 있다.


취업준비생들의 면접 대비 예상 질문 속엔 '졸업 한 지 꽤 되었네요. 그동안 뭐 하셨나요?'가 늘 있다. 이런 질문들을 대비하는 모습들을 보면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편집되지 않은 것들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편집된 영상처럼 편집자의 주관대로 철저히 계획되어 진행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우리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 인생의 타임라인을 철저히 계획해 놨는데도 시시때때로 계획이 틀어져 버리곤 한다. 졸업하고 국토대장정을 떠나고 싶었는데 바이러스 난에 수 십 명의 사람이 모일 수 없었고, 해외봉사활동을 가고 싶었는데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 대유행이 되어 길이 막혔다.


편집된 영상이라도 원본 영상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적나라한 원본 영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 모습도 여전히 나다. 여전히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대로 살 수가 없다. 눈 앞의 계획도 끊임없이 바뀌고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집된 완성본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그저 오늘 하루, 아니면 내가 계획한 몇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디졸브(dissolve)되며 자연스레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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