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이었다. 사실 학교 기숙사에 잠시 살았던 것뿐이라 독립이라고 하기 뭐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혼자 먹고 잤기 때문에 독립과 다름없었다.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 자체만으로 설레었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리도 했지만 영화를 전공하면서부터 학교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많아서이기도 했다. 뒤늦게 내 길을 찾은 만큼 잘하고 싶었다. 과 특성상 팀플이 많았고, 언제 어떻게 스케줄이 변동될지 확신할 수도 없고, 특히 밤새 회의하고 촬영하는 시간이 많아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만 사는 집에서 자취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기숙사로도 만족했다. 한 살 많은 언니랑 같은 방에서 지내는 거였다. 내 첫 독립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행복했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 기숙사에 짐을 싸들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챙겨가야 할지 몰라서 큰 여행용 캐리어와 배낭에 갖가지 옷과 이불, 생필품 몇 개만 챙겨갔다. 어차피 주중에만 지내다 웬만하면 주말엔 집에 갔기 때문에 첫 기숙사 입주 치고 이 정도면 충분했다. 기숙사는 생각보다 좁았지만 나름 아늑했다. 끝없이 긴 복도를 따라 있는 수십 개의 방 중 내가 살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양 쪽에 마주하고 있는 책상과 침대가 나란히 있었고, 그 위에는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엄마랑 동생과 함께 기숙사 들어온다고 새로 장만한, 새하얀 이불과 베개를 침대 위에 가지런히 덮어 놓았다. 책상에 몇 개의 책과 화장품을 채웠고, 화장실에도 내가 사용할 칫솔과 샴푸를 챙겨 넣었다. 집에 있던 내 물건들을 기숙사로 옮겨 놓고 나니 이제 이 공간이 내 집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고, 나의 물건들로 채워진 그 공간이 나를 반겨주고 있는 듯했다.
사실 한 학기만 지내는 거라 그리 오래 사는 것 아니었다. 한 학기라고 해봐야 뭐 겨우 4달을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여기서 사는 동안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하고 다짐했다. 영화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학교에서 살기로 한 순간부터 내 다짐을 실행했다. 기숙사에 사는 동안 집을 떠나 어느 누구에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 제일 좋았다. 학교에 지각한 적은 거의 없지만, 수업이 없는 날에는 조금 늦게 자도 상관없었고, 밥도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고, 또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도 맘 놓고 볼 수 있었고, 내 얘기 들어줄 착한 언니도 있었다. 모든 게 내가 만족할 만한 조건들이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한 한기 동안 생활하면서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오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악바리처럼 공부하고 버텼다. 미운 오리 새끼로 들어온 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견뎌 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자존심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배우려고 애썼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조금씩 생활에 익숙해졌고, 여기서 공부하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을 정도로 잘하기도 했다.
사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몸은 그럭저럭 견딜만했고, 정신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여기서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영화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도 연애도 친구도 모두 내려놓았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내 연출작 하나 완성하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견디고 버텼다.
솔직히 내가 강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공간에서 살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당근보단 채찍에 더 성장하는 강한 사람이었다. 강한 사람이 되려다 보니 정말 강인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게 기숙사 생활을 졸업하기 직전학기까지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