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며 순항중

by 미래

떡볶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뭐 먹을래?" 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떡볶이는 늘 먹고 싶었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잘 못 먹었다. 먹고 나면 밤새 속이 쓰렸고 아렸다. 그런데도 다음날 되면 이상하게도 매운 게 또 당겼다.

매워도 계속 먹게 되는 떡볶이처럼 인생이 그랬다. 현실은 차갑고 냉정했지만 삶은 살아졌다.


졸업 후 자기소개서 쓰기는 일상이었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앨범이었고 일생일대의 승부였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니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지나고 보니 남은 건 별로 없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인생에 막막했지만 더 깜깜한 건 앞으로의 삶이었다. 걷고 있는 건 분명한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는 멀리서도 한 줌의 빛조차 볼 수 없었다. 이번 자기소개서는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새로운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자기소개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내가 '나'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은 정말이지 매번 어색하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전문성과 특별함을 갖춘 포장지로 덮어야 한다. 대놓고 자기 자랑을 하면 비호감이니까 약간의 실수와 애교 있는 단점으로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정답이 있는 듯하면서 정답이 없는 이 게임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의 명확한 근거를 들어 남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서 써야 한다. 기본적인 자기소개서 쓰기 개념이지만 막상 쓰면 어렵고 기를 쓰고 써낸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읽었을지도 모른 채 아쉬운 메시지만 받는다.


어느 한 센터에서 자개소개서 취업 스터디에 참여한 적 있었다. 스터디 운영은 써낸 자기소개서를 멘토가 읽고 첨삭을 해주는 식이었다. 과제 식으로 멘티들끼리 퇴고하고 서로 피드백해주었다.

남의 자기소개서 읽기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였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좀 더 깊이 알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은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구나' 혹은 ' 와 정말 이런 걸 느꼈단 말이야?"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기 좋았다. 때론 신선한 충격들은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자극이 되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피드백을 해주며 그 사람 인생에 좀 더 관여하는 일이 흥미롭기 했지만 괴롭기도 했다.


나이 때는 비슷했지만 살아온 인생은 정말 달랐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가고 졸업을 했지만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채운 건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누군가는 유학을 다녀오고, 또 누군가는 공모전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관련 경험이 엄청 많았다. 그에 비해 내 자기소개서는 초라하게 느껴졌다. 보기에 따라 각 경험들이 달라 보일 순 있겠지만 그들에 비해 대단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적도, 직무에 적합한 인턴 경험도, 능숙한 외국어 실력도 자랑할만한 학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나름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왔고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엄청난 자랑거리라거나 부끄러운 경험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꼭 지난 삶이 후회스러웠다.


'좀 더 열심히 살 걸.' '엄마 말 좀 잘 들을 걸.' 하고.


후회해봐야 어쩌겠나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미련하게 후회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거나 사소한 경험도 조리 있게 쓰는데 투자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방황을 한다. 강연자 김미경이 말하는 내가 누군지 스스로 탐구하는 시기인 사춘기를 겪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고 불안함을 겪는 대 2병 시기를 지나며 방황하기도 한다. 우리가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발전을 하고 성장을 하고 있다. 갈 곳이 직선으로 명확히 보인다면 우리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끝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다.


상처에 무뎌지고 새살에 용기를 얻으며 나가가는 스스로를 더 안아주자.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부족해도, 내 경험이 하찮아 보여도, 탈락의 고배에 속이 쓰려도 지난 경험들은 내 열정의 증거니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과거보다 더 나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 작가 존 로날드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모두 길은 잃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도 여전히 방황 중이지만, 방황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기에 아직 길은 잃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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