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꺼내 보면

by 미래

늘 마음이 불안했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지 못했다. 내 인생의 모토는 '카르페디엠'(오늘을 즐겨라)인데 정작 제대로 즐겨본 적 없었다.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듯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보단 내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 적응하며 살았다. 그래서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곤 했다.


1학년 때를 제외하곤 고등학교 기억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학교에서 밥 먹고 공부한 기억이 유일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여러 추억이 있기 마련인데 내게 고등학교에 대한 기억이 밥과 공부가 전부라니 서글펐다. 공부를 눈에 띄게 잘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고등학생 때만 생각하면 애틋했다.

그래도 고등학생 땐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하교를 했던 일, 학교에서 주는 석식 대신 친구들과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던 일, 밤늦게 집에 돌아가며 친구들과 얘기했던 일은 사소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때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하기 위한 인생의 목표나 다름없었다. 월등히 공부를 잘했던, 내신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 위주로 특별반을 만들기도 했는데, 나는 3년 중 한 두 번 속해있었다. 누구나 알만한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부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고등학생 때 맘 편히 즐겼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대학에 가서 무얼 할지는 정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높은 대학에 가는 게 중요했다. 인생에 있어서 대학이란 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때 좀 더 즐기면서 학교 다닐 걸 하고 후회했다. 가장 아름다웠을 십 대의 추억이 얼마 없다는 게 아쉬웠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시절이라 유독 그리웠다. 고등학생 때부터 십 년 가까이 만나온 친구들과 간혹 고등학생 때 우리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과 함께 그때마다 교복 입던 학창 시절이 더 떠올랐다. 시간은 지나가면 그만인데, 인생에 한 번뿐인 시간을 더 확실하게 기억남을 일들로 가득 채우면 좋았을 걸.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얼마 전 <놀면 뭐하니-싹쓸이> 마지막 회에서 시청자 팬들이 쪽지에 남겨준 글들을 봤다. 쪽지에 적힌 글들이 공감이 돼서 울컥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일 때 그때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고민이 많았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충분히 즐겨도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바람만 불어도 웃음이 끊이질 않던 시간들이 그리웠고 여전히 그때 내 모습들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잘 생각나지 않다가 유독 마음이 힘들 때 찾아왔다. 흐릿하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웃는 날이 많았던 건 분명했기에 잊을만하면 그 기억들을 꺼내보게 되었다.


올여름만을 위해 잠깐 모였다 해체하는 싹쓸이처럼 고등학교 3년의 학창 시절은 소나기처럼 지나갔다. 입시 열기와 소소한 친구들과의 추억들 모두 애착이 갔다. 언제 꺼내보든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진첩이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은 아련하게 남았다. 십 년 뒤 다시 꺼내보면 더 애틋하겠지. 그때 다시 아쉬워지지 않게 매일 기분 좋게 먹고, 한 번 크게 웃고, 편안하게 잠들자. 이런 하루가 계속되면 난 매일 행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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