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제 볼래?
글쎄...
매번 비슷한 말들만 오갔고, 말을 아꼈다. 때론 연락을 피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 만남을 줄인 것도 사실이지만 너무 오래 만남을 미루기엔 우린 너무나 친구였다. 너무 오래 봐 왔기에 그냥 왠지 잘 아는 그런 친구.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이 일처럼 느껴졌다. 내 소중한 하루를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쁜 내 하루를 잃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에서 김영하 작가는 '친구들 모임에 못 나가는 구간이 있다'라고 했다. 그 구간은 아마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일 것이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듣던 학생 때와 달리 각자 할 일을 찾아 나설 때이기에 모두가 '지망생'이던 시절이다. 꿈은 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지망생'때는 친구를 만나는 것마저 눈치가 보인다. 각자가 암흑의 터널을 지나는 시절이 다르기에 누구는 취업 준비에 허덕이고, 또 누구는 졸업하기 전 취직을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구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더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 긴 터널의 시간은 꿈과 열정만 가지고 버티기엔 주변의 시선과 자책감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일로 만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가수 데뷔가 꿈인 여러 '지망생'들을 데려다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모진 말을 듣게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간절하기에 버티고 또 버틴다. 한 번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끝까지 챙겨보진 못했지만, 누가 우승자인지는 열혈 연예 기사 덕에 쉽게 알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약간은 과장하여 표현되어 있지만 거대한 성장 스토리를 품고 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지망생'들의 무수한 노력들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보다는 무대 위에서 한 번의 경연이, 얼마나 높은 점수로 우승자가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탑 몇 위에 오르고, 그중에서 누가 진정한 우승자인지에 더 관심이 갔다. 엄청난 노력과 고생 끝에 결국 그들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룬 모습을 보며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룬 기분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우승자를 보며 부러워도 했고, 대단한 존경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뒤에 결과에 승복하고 울며, 혹은 눈물을 참으며 나오는 많은 '지망생'들이 더 보였다. 스스로를 얼마나 더 자책하고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좌절하고 있을 나 같은 '지망생'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다음 오디션을 준비할지 궁금해졌다. 아쉽지만 떨어진 그들이 실패자나 낙오자는 아니다.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닐 것이다. 아직 나 역시 이름 모를 '지망생'일 뿐이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했고, 수십 번 좌절했지만, 언젠가 '지망생'딱지를 떼고 더 큰 무대에 오르길 기다린다.
결국 1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들을 본 건 1년 하고도 조금 더 되었다. 솔직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줄 몰랐다.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버텨온 지도 1년이 되었다. 시간은 참 빨랐다. 지나고 보니 그동안 이룬 것은 몇 없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들은 그대로였다. 더 이상 만남을 미룰 수 없었던 것도 내가 그들을 만나게 된 이유였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보고 싶은 길을 가겠다며 홀로 우직하게 걷느라 주변에 너무 소홀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길로 빠지지 않으려, 돌부리에 걸려 괜히 넘어지지 않으려 내 발밑만 보고 갔다. 친구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 걱정마저 애써 피했는데, 이 힘듦을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웠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털어놔야 했다.
역시 오랜만에 만나도 친구는 친구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도 낯설지 않았고 어색함이 없었다. 오히려 괜히 자리를 피해 왔던 게 미안했다. 그리고 나를 기다려 준 것에 고마웠다. 고작 sns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게 친구가 아니라 연락이 안 되면 걱정하고, 힘든 일에 같이 울어주고,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게 친구였다. 아무리 연락이 안 돼도 문득 내가 생각나면 안부 문자를 남겨주고, 내 일을 묵묵히 응원해주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진짜 친구였다. 나랑 같이 밥을 먹고, 술자리를 즐기는 수 있는 사람은 친한 사람들이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술자리 이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 딱 그 정도뿐인 관계였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뿐이라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긴 터널의 시간이 있던 거였다. 나보다 조금 먼저, 잠시 그 터널을 지나왔을 뿐이었다.
모두에게 긴 터널의 시간이 있다고.
그러니 조금만 참자고.
스스로를 위로해주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