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환경, 마음껏 누리는 게 미션
한국에서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이 난 이후 가장 체험하고 싶었던 것은 미국의 고층빌딩도 고급 음식점도 아니었다. 바로 천혜의 자연환경이었다. 이미 한국에도 고층빌딩은 무수히 많다. 한국에 살 때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가끔씩 등산로를 따라 걸었지만, 다람쥐를 포함한 야생동물을 본적은 없었다.
LA 집에 짐을 풀고 단지 내 공원을 둘러보자 단지 안에 다람쥐 여러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요즘은 한국에서 다람쥐를 보기가 힘들다. 청설모도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다람쥐라니. 기분이 오묘했다. LA에 온지 한달 반이 넘은 지금, 다람쥐를 보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아침이면 거실 통창에서 다람쥐가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 장면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며칠 전에는 아들과 땅콩을 갖고 나가서 다람쥐에게 가져다 줬다. 땅콩을 오물 오물 뜯어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이들에게 이 같은 자연환경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미국에 온지 2주차쯤 됐을까. 가족들과 단지 내 공원을 산책했다. 한 백인 부부가 나무 위를 가리키면서 연신 "Really beautiful!"을 외쳤다. 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감탄을 하는 것일까 하면서 그들을 바라봤다. 아주머니가 우리쪽을 보더니 "저기를 보세요. 저기 올빼미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손가락을 따라가자 진짜로 커다란 올빼미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야생 올빼미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아주머니는 "며칠 전에는 이쪽 나무에 있었는데 이리로 옮겼네"라고 말했다. 올빼미를 본 이후 단지 내 공원에 갈 때면 항상 나무 위를 올려다 본다. 올빼미와 다시 마주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아쉽게도 그 이후 올빼미를 보지는 못했다.
몇 주 전 밤에 그린피스 천문대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도 산기슭에서 웬 개 한마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생김새가 개와는 뭔가 달랐다. '어, 저거 코요테인데' 코요테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코요테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잠시 어슬렁 거리다가 산으로 들어갔다.
지난주에는 단지 커뮤니티 센터에서 메일이 왔다. '단지 내 코요테가 나타나니 입주민들은 애완동물을 조심해서 데리고 다니라'는 공지문이었다. 코요테가 단지 내까지 들어오다니. 우리 집은 산에서 꽤 먼 곳에 있다. 만일 코요테가 동네에 상주한다면 그동안 운전을 하거나 걸을 때 코요테를 봤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도 코요테를 동네에서 본 적은 없다.
나는 해변에서 물개와도 마주치고 싶고 멀리 배를 타고 나가 고래도 보고 싶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무스나 곰도 (차안에 있을 때) 슬쩍 마주쳤으면 좋겠다. 미국에 왔을 때 아이들과 최대한 자연환경을 누리고 향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내 미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어떤 동물과 마주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