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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Oct 15. 2024

보들레르와 한 밤의 고양이들

마치 곡소리 같기도 한 것이

깃털 같이 얇은 잠이었다.

한밤 중었고, 인터폰이 길게 울렸다.

나는 겨우 기어가서 인터폰을 들었다.

"사모님, 죄송한데, 잠깐만 좀 나와보실 수 있나요?"

경비아저씨였다.


나는 눈을 다 뜨지 못한 채, 펜타닐 좀비처럼 대충 잠바를 걸치고 경비실로 내려갔다. 아저씨는 갑자기 떨어진 기온 때문인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서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추워서라기보다, 내게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해 보였다.

"저기 사모님, 글쎄 말입니다."

그리곤 한평 남짓 경비실로 들어가 주섬주섬 라면상자를 하나 들고 나왔다.


이 새벽에 택배가 왔나, 싶은 그때

"아니, 그 씨부럴 잡 것들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박스는 수건으로 덮여 있었고, 그걸 들추니, 작은 극세사 담요 있었다.

약 기운 때문에 몽롱했던 나는 대체 뭘 가지고 아저씨가 저리 흥분해 있는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경비실 위에 붙은 전자시계는 정확히 새벽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들이었다.

회색빛 녀석들은 여러 마리가 포개진 채 서로의 등에 업혀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 죽었나요?"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고양이들을 들여다봤다.

아저씨는 그중 맨 위에 있는 한 마리를 들어 흔들었고, 눈도 못 뜬 고양이는 입을 작게 오물거렸다.

"죽기 전에 제가 들고 나왔어요, 아니 이 생명들을 그 염병할 것들이 쓰레기통에 버렸지 뭐예요!"

그는, 종주먹을 한쪽 손바닥에 비볐다가 한번 세게 내리쳤다.

범인이 나타나면, 작살을 내겠다는 듯이.


잠시 눈을 부치려고 했는데,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 했다. 그리고 아주 가냘픈 피리소리들렸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마치 작은 곡소리 같도 한 것이, 그냥 무시하려고 하면 다시 들려오고 해서, 소리를 띄엄띄엄 쫓아갔더니, 쓰레기통 안에 파란 비닐이 움직이고 있었단다. 

그의 입에선 동파 풀린 수도꼭지처럼 이런 말들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이 말을 다 믿을 수가 없었던 게, 아저씨는 귀가 어두워 주민들에게 가끔 퉁박을 먹곤 했던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실하고 친절한 아저씨를 나는 좋아했다. 이 추위에 엄마 젖도 떼지 못한 새끼 고양이들이 뚜껑 닫힌 공용 쓰레기통 안에서 울었고 30미터쯤 떨어진 경비실에서 그 소리가 들렸을 리 만무한 일이었지만, 노인의 간절한 얼굴을 앞에 두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찌나 가엾던지, 비닐채 들고뛰어서 들어왔어요, 숨이 떨어질까 봐 난로 앞에 놓고 한 마리씩 계속 비벼주기는 했는데, 두 녀석은 시들하고 세 마리는 꿈틀거리는 게 죽지는 않겠어요."


날 보자마자 쉬지 않고 고양이들이 라면박스에서 잠들기까지의 과정을 읊느라 그의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버글거렸다.


자신이 아이들을 한 시간 동안 부벼서 살려놓고 나니, 이제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고, 아하 그렇지 7층 동물병원 사모님 댁이 있었지,  그 생각이 나면서부터 희망이 보였고, 폐가 되는 줄 알지만 일단 애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인터폰을 넣었다는 줄거리였다.

그게 내가 이 노인 앞에 서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오늘 하필, 어딜 좀 갔어요. 어쩌죠."

나는 이 고양이들을 어미 없을 때, 쓰레통에 버린 인간도 말종이지만, 그렇다고 이 시간에 나를 불러내, 희망을 운운하는 아저씨에게도 조금 화가 났다. 나는 매일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잠만 잘 수 있으면 영혼도 팔아넘길 지경의 노이로제 환자였다.


'설마 이 애들을 다 키우라고 주는 건 아니겠지?'

나는 우울증의 정점에 서 있는, 길을 걷다가 어깨 위에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무거운, 그런 유리멘털이었으므로,  이 고양이들은 내게 가당찮은 일이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전면에 산이 있고, 글램핑장과 캠핑장을 갖춘 드넓은 공원이 있었으며, 산세가 유려 등산객들은 물론이고 입주민들은 이 초록초록하고 쾌적한 지형에 자리 잡은 단지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래서 유난히 집값에 민감했고, 그 분위기를 해치는 불청객에게는 얼음장같이 단호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뭣이든간에.



가장 환영받지 못한 불청객은 우선은 고양이들이었다.

지를 오가는 청설모는 흔한 경우였고, 얼마 전부터는 오소리가 등장해 화단에 고양이처럼 움츠리고 있는 경우까지 생겨났지만, 주민들은 공기가 맑고 자연친화적이라 생기는 일이라며 방송국에 제보를 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저희 아파트에는 오소리가 함께 살아요' 이런 발랄한 주제로.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오소리들에게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인간들이 도토리란 도토리를 죄다 퍼 날라서 생태계의 고리가 헐거워졌고, 너나 할 거 없이 서식지를 들쑤셔놓는 바람에 쫓겨 내려왔다가 아예 주저앉아버린 건지도 몰랐다. 나는 산의 둘레길을 걸으며 종량제 봉투에 하나 가득 도토리를 모아내려 가며, 이곳 도토리로 묵을 쒀먹으면 맛이 기가막히더라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으므로, 그 맥락에서 오소리의 편이었다.


해서 오소리들이 양이밥이라도 선점해야겠다는 지혜를 모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입주민들이 변덕을 부리기 이전에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 절박함 녀석들의 날쌘 달음박질에서 나는 을 수 있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와 유령처럼 동네를 천천히 거닐곤 했다. 불 꺼진 집 앞 공원을 걷다 보면 소리와 청설모와 고양이들이 인적 드문 산책로에서 나를 멀뚱히 쳐다보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럭저럭, 사람들이 잠든 세상에서 이제야 좀 조용하군, 하는 중에 웬 여자가 플래시를 들고 타나 스륵스륵 바지단을 끌고 돌아다니니 녀석들은 내가 썩 달갑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나는 종종 경비들 새총으로 고양이 사냥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즉사시키지는 못하지만, 제법 단단한 돌멩이를 머리를 향해 발사해 맞추는 경우엔, 잠시 정신을 잃고 있다가 일어나서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본 적이 있다.

 

전임 경비는 새총을 잘 쐈다.

새총으로, 최강의 스나이퍼 스웨거를 흉내 낸 듯 목표를 정하고 정확히 조준할 때의 진지함이란. 나는 왕년에 제법 스나이퍼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군, 하며 그 허세 못내 씁쓸기도 했었고.


고양이가 비틀거리며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휘적휘적 사라지, 내 기술을 봤냐는 듯,  웃기까지 해서 입맛이 싹 달아났던 간도 있었는데.


이사 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부녀회와 캣맘들 사이의  다툼에 관한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는 분리수거를 잘하시오, 바로 옆칸에 캣맘들과 전면전을 선포한 부녀회장의 경고장이 궁서체로 쓰여 있었다. 그건 마치 을사늑약 때  유명한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같은 논조였고 내용인즉,


'제발 고양이에게 밥주시 마세요! 이건 저희 모두의 생존의 문제입니다!'로 귀결되는,

나라 잃은 절함과 맞먹는 읍소 내지는 협박의 엄한 글이었다.


그러니이 탯줄을 달고 있는 고양이 다섯 마리는 캣맘들과 부녀회 사이의 암투의 희생양인 셈이었다.

가끔 나타나는 오소리에게도 밥을 주는 아저씨가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들을 발견하고 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거란 사실은 안 봐도 짐작이 가는 바였다.


새총 스나이퍼의 후임자로 온 오늘의 주인공은, 버려진 고양이들을 구해내는 암약을 펼

"염병할 것들, 이것들도 엄연히 생명이잖아요. 그렇죠 사모님, 네? 사모님!"

하는 말마다 뭐랄까, 새총 스나이퍼에겐 없었던, 신념 같은 게 있었다.


경비반장은 한 달에 두 번 각동의 경비들을 모아놓고, 입주민들에게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 것과 여러 번 마주쳐도 꼭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반말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그래서 졸지에 '사모님'이 된 나는 이 노인의 수고로움과 천운을 탄 이 꼬물이들을 어떻게 달래고 살려야 할지를 동시에 판단해야 했지만, 약기운 때문인지 머리가 홱홱 돌아가지 않았다.


"아저씨.. 그럼 우선 우유를 좀먹여볼까요?"

"아! 그럴까요 사모님?"



나는 우유를 데워 내려왔다.

그리곤 아저씨와 나는 한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열어놓은 작은 화장실에서 백 년 된 암모니아 냄새가 올라왔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린 주사기에 우유를 넣고 한 마리씩 돌아가며 입을 벌려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다섯 마리에게 적당히 우유를 넣어 주었는데 그중 두 마리는 애를 썼지만 호흡이 거의 멎은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너무 작고 마른 데다 눈도 뜨지 못한 녀석들이, 한참 추위에 방치돼 있었을 텐데,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칠순이 훌쩍 넘은 노인의 간절함 때문이라도, 인류애를 발휘하는 중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이만큼이면 내 도리는 다했으니, 일어나도 되겠지 하는데.


"사모님, 아침에 시청에 전화 좀 넣어주시겠어요?"

"제가요?"

"네, 그래도 사모님이 저보단 낫잖아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그러니까 나는 얼마 전 집정리를 하면서 재활용 포대에 넣어놓은 수백 권의 책들, 아파트 지하실에 꽂혀있는걸 우연히 목격했다. 그 책을 주워가 키순서대로 정리해, 책장에 꽂아놨던 장본인은 바로 새벽에 나를 불러낸, 고양이 살신성인 경비아저씨였다. 


는 책들의 행방을 우연히 알게 되고 나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가봤.

  마치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의 비밀 서가 같은 느낌이 물씬 들,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더랬는데,


보들레르의 '악의꽃' 떡하니 경비실 책상에 여있는 보게되었. 그는 어딘가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 놨었는데 나는 그 구절이 상당히 궁금했지만,  알은체 하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수사 윌리엄처럼.




"아. 그런데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나는 정말 이쯤 해서 발을 빼고 싶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노인은 내게 고양이들의 생사를 자신과 함께 지켜보자고 나를 어르고 달랠 것만 같았다.

"그냥 전화만 해주세요. 전화하면 요즘엔 시청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사모님."

그는 버려진 동물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나라가 돌봐줄 거라는 믿음을 가진 듯했다.

"얘네들도 다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어요? 사모님."




그러고 돌아와서 나는 싹 달아난 잠 때문에, 거의 꼬박 밤을 새웠고.

아이가 학교에 가고 바로 경비실에 내려갔다.

아저씨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잠이 든 거 같았다.


나는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저씨는 깜짝 놀라 잠이 깼다. 그리곤 화색이 돌아 창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러면서, 내가 돌아가고 나서,  살아난 세 마리의 고양이를 얼마 전 입주민이 손녀 돌잔치라고 준 수건에 돌돌 싸서 깨끗하게 박스에 넣어 놓았는데, 평소에 잘 지내던 옆동의 맞교대하는 경비원이 꼭 한 마리 키우고 싶다며 데리고 갔고, 또 앞동에 얼마 전 김치냉장고 화재로 불이 나 돌아가신 할아버지댁 할머니가 외롭다며 한 마리를 또 데리고 갔고, 마지막 한 마리는 자신이 데리고 가서 손주와 함께 키울 거라고 정신없이 말했다. 말을 마친 그는 개선장군처럼 보였다.


"이게 다 사모님 덕분이에요."




얼마 후, 나는 작은애를 전학시키며 급작스럽게 이사 결정했.

그런데 이사 나오며, 아저씨를 보지 못했다.

나는 감사했다고 적은 봉투 오만 원을 넣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지하실에 한번 내려가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지만, 괜한 미련이 남을 거 같아 그냥 그곳을 떠났다.

 


반년쯤 지나 다시 가본 아파트는 초소마다 큰 자물쇠가 하나씩 걸려 있었고,

사이 모든 게, 자동화 시스템으로 어 묘한 인상을 주었다.

오소리마저 몰래 드나들기 껄끄러운, 위계가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그날 새벽 고양이들보다, 

실은 그 빨간 스토브는 노인이 밤을 보내기에는 너무 작은 골동품 같은 것이었는데

 앞에서 이 노인은 어쩌자고 이렇게 불편한 일을 자처하고 있나.


그 낡은 난로 앞에서 애들을 어루만졌을 노인의 마디 굵은 손가락 뭉툭한 손끝이,

목탄으로 그린 크로키처럼 그렇게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한 장 한 장 넘겼을 보들레르와,

곡소리를 냈다던 고양이들도.


정말 신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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