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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Oct 26. 2024

짖지 않는 개, 인절미

개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어머니 복실이 어디 갔어요?"

항상  자리에 늘 푸른 소나무처럼 독야청하던 개가 보이질 않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쩌렁쩌렁 창고 옆 배나무의 뿌리를 뒤흔들 기세였던 목청의 개였다.

 


"워매, 지난주에 죽었어야"

어머니는 간밤까지 별 탈 없어 보였던 복실이가, 아침에 일어나니 목줄을 끝가지 팽팽하게 당긴 채로 개집 울타리 밖으로 나와 죽어 있었다고 했다.

열 살이 채 안된 복실이는, 큰애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개'라고 이름 붙였던 개였다.



평생 한 평도 안 되는 자신의 집과 울타리 너머를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개. 

시댁에 내려가면 나와 아이들은 개근처에는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복실이는 인기척을 내는 모든 생물들에게 적개심을 보이며, 부부젤라를 성대 깊숙이 장착한 듯 쉬지 않고 맹렬하게 짖기 바빴다. 그래서 나는 복실이의 성대와 관절과 정신상태를 염려하며 바라보곤 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풀어놓고 별 짓을 해도 나오질 않았어"

어머니의 말이었다. 복실이는 왜 그렇게 심하게 짖었, 대체 어떤 태생적인 두려움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마지막에서야 울타리 밖으로 기어나갈 생각을 했을까.   

    


복실이의 빈집은 너무 고요해서 정말 얘가 이곳에서 십 년을 살았던가 싶기만 했다. 그 세월을  눈이 오고, 비오고, 낙엽 지고, 바람 불고, 해가 지는 걸 바라봤을 복실이의 마음이 그 작고 낡은 집에 고여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 집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 집이었구나, 싶었다.




자나 깨나 어머니는 개가 꼭 한 마리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밤에 혼자 있는 걸 무서워도 했거니와, 어머니에게 집 지키는 개란, 담장너머 작은 인기척에도 컹컹 짖어 주며,  악귀를 쫓는 호작도와 같은 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큰집에서 한 마리 데려다 놓았는"

 소리와 함께 마루에 들어섰는, 그새 어머니가 읍내 방앗간에서 찾아온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인절미가 있는 게 아닌가, 긴 시간 운전을 하고 왔던 우린 시장해서 인절미 하나를 덥석 물었고, 그 옆에  '인절미'를 닮은 뭔가가 졸린 눈을 껌벅이며 우릴 쳐다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새끼 강아지였다.




가 있는 곳은 오래된 집성촌로, 배산임수까진 아니고 그저 산자락 아래 깊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젠 가구수도 얼마 남지 않아,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적적한 마을.


큰아버지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남게 된, 큰어머니와 어머니는 한 번도 이곳을 떠나본 적 없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나란히 빼박 이웃사촌으로 평생을 살고 있는 셈이었다.



노인은 머리에 찰싹 붙은 새까만 꼬불이파마와 읍내 구찌짭크로스가방, 고동색 효도화, 하다못해 별이 세 개 붙은 옥장판과 무늬 극세사이불, 쿠쿠밥솥, 삼중냄비까지도 같아서, 깊은 산속 마을에서 여든이 돼 드디어 만난 도플갱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들은  수십 년간 해 떨어질 때까지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일해가며 아이들을 열심히 키웠다. 간혹 좀 더 잘 나가는 자식과 체신을 떨어 뜨리는 자식이 있고 없고의 일 때문에 잠시 쌩 돌아섰던 시간들도 있었지만은, 금세 둘은 화해를 했다. 그들은 그렇게 동고동락하며 아픔과 추억을 공유했다. 여러 마리의 개와 함께.



이 인절미를 닮은 개는 그러니까 큰집의 개, 만두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였다.

어머니는 큰집 개, 만두가 새끼를 낳다는 소리를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집 지키는 개는 복실이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복실이가 가고 나서 맘이 급해진 나머지 그날로 새끼들 중 한 마리를 데리러 갔는데, 이미 동네사람들에게 한 마리씩 건너가기로 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덥석 한 마리를 안고 집으로 부리나케 왔던 것이었다. 



만두가 복실이의 새끼였으니, 만두의 새끼 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꼬인 족보에 관한 얘기를, 나는 저녁을 먹으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고,


그러니까 동네의 모든 개들은 이를테면, 합스부르크왕조만큼이나 기가 막힌 개족보를 가진 셈이었다.



 


           (백팩에 들어가 잠든 인절미)



새끼들은 어미한테 떨어져 나와 마당을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다가 자빠지고 기어 다니다가 자빠지고 있었는데 이 녀석만, 집에서 배를 뒤집고 자고 있었더라 했다. 그리고 꺼내보니 가장 부티나는 '꼴'을 한 순둥이 같더라고. 집을 지키려면 발발거리는 애보다 우직한 애가 더 낫다는 판단을  어머니는 날쌔게 집으로 돌아와 티비 아래 패드를 깔고 녀석을 그곳에 올려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말한 그런 부티나는 '꼴'이란 것이, 내게는 머리통이 너무 크고 눈이 거의 감길듯하다 다시 떠지고 감길듯하다 다시 떠지는 형국이라,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졸게 만드는, 만화 인공에 적합한 소한 인절미와 닮은 캐릭터여서 실소가 나왔다.

 

녀석은 누가 봐도 '인절미'.


"어머니, 얘 오늘부터 '인절미'예요!"

나는 즉석에서 이 졸린 눈의 녀석에게 '인절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래서 인절는 복실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시댁의 방범견으로 임무를 부여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인절미를 잊고 있었다.

명절에 올라오며, 차 안에서 고무로 만든 푸른 지붕의 그럴듯한 집을 쿠팡에서 보내주었고, 집이 잘 도착했다는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집의 사촌 형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서, 인절미 한번 안 보고 싶은가?"



형님은 까망이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고, 큰어머님께 내려올 때마다 집집의 개들을 데리고 들판에 난 길로 산책을 시켜준다고 했다.

"인절미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아는가?"

인절미는 어머니의 예상대로, 우직하고 조용한 애였다.

"그런데 동서, 얘가 전혀 짖지를 않는다네."

뭐라고라? 짖지를 않는다고? 어머니는 안부전화를 했을 때, 가타부타 아무런 얘기도 없었는데 인절미는 어머니의 방범견으로 낙제생이었단 말인가.



나는 그날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시골에선 짖지 않는 개는 하등 쓸모가 없어야."

어머니가  말했고, 나는 갑자기 쓸모없어진 졸음 가득한 눈을 지닌 인절미가 떠올라 맘이 불편해졌다.

도시에서는 짖지 않는 개가 사랑을 받지만, 시골에서는 반드시 짖어야만 하는 게 국룰이었다. 거의가 노인 혼자 사는 가구라, 집 지키는 개들은 최소한의 안전요원 혹은 kt텔레캅이었으니까.



며칠 후 늦은 밤 형님에게 톡이 들어왔다.

"동서, 인절미가 얼마나 사랑받는 줄 아는가? 짖지 않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와서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 가고 작은어머니도 개가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니,  줄을 풀어 밭고랑 갈 때 항상 데리고 다닌다네"

어머니가 개를 데리고 밭에 가신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우선 큰어머니가 만두 언제부턴가 밭고랑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걸 본 우리 어머니가 자신도 똑같이 인절미를 앞세워 밭고랑에 가는 걸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재밌는 한쌍이여."

그렇게 말을 끝냈다.



나는 깜장머리에 꼬불파마를 한 노인 둘이, 각각 개를 대동해 밭고랑을 걸어가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형님은 곧, 만두와 인절미와 까망이가 록초록한 길 사이로 산책하는 동영상을 내게 보내왔다.

바람이 불었고 고요한  인적없는 시골 마을, 간만에 목줄이 없는 개들은 편안해 보였다. 복실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두와 인절미가 대신 살아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다음에 갈 때, 나는 짖지 않는,

인절미를 위해 대문에 달아놓을 커다란 풍경을 하나 사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녀석이 사람만 보면 꼬리를 프로팰러처럼 뱅글뱅글 돌리며 다가가, 두 발로 상대의 장딴지를 치면서 겅중겅중 안아달라고 조른다는 그 얘기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 내가 처음부터 알아봤다.

인절미. 이 낙제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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