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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Oct 23. 2024

시골개의 서울 입성기

한밤의 드라이브

엄마는 역사에 대천김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박스는 엄마가 가만히 서 있는데도, 조금씩 좌우로 움직였으며 양면에는 동전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역사 앞 모델하우스 홍보 알바생처럼 엄마가 발랄하게 운을 뗐다.


"얘들 한번 좀 볼래?"

엄마는 이거야말로 진정한 서프라이즈!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내가 대꾸를 않자 자기 앓는 척 박스를 내려놓고선,

"나도 힘든데 얘들은 얼마나 답답했겠니? 아이고 삭신아! 그래도 자알 왔으면 됐다!"

엄마는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를 뒤를 한껏 젖히고 펴고를 반복한 후, 다시 나를 살폈다.


그녀는 녀석들을 데리고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단단히 맘을 먹었노라고 했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이냐? 시골 노인네가 강아지새끼 세 마리씩이나 데리고 여기까지 오는 게 말이다"

방금까지 호기롭던 엄마는 자신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시골 노인네'라는 말까지 해가며 나를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박스를 개인방공호처럼 뚫어, 안전하게 녀석들을 공수해 온 본인의 노력을 자화자찬하는 구석이 있는 말투였다. 덤덤한 척했지만, 이미 맘은 부글거리고 있었다.

계속 나를 살피는 눈빛에선 쥐똥만큼의 자책이 있는 듯도 보였다.


"고생하셨네." 

말 한마디에 엄마의 표정이 화사해졌다.

박스 안에서 녀석들은 꼬물거리며 서로를 핥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살짝 녹은 패밀리세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녀석들 중 한 마리가 밑에 깔린 새끼의 등을 밟고 밖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그 바람에 출구로 뒤늦게 나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 할머니, 이 강아지들 파는 거예요?”

다다다다 달려와 한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아무 소리도 않고 기어 나온 한 마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녀석의 보송보송한 분홍빛 배를 아이 앞에 떡하니 보여주며 잇몸 만개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당에서 키우던 삼순이가 네 마리 새끼를 낳았다고 전해 온 건, 한 달 전이었다. 네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낳자마자 죽었고 그렇게 세 마리가 남았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분명 검둥이일 거라고 딱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끼를 놓고 보니 전부 흰둥이라 '이게 뭔 일이냐, 세상에! 넌 알았니?'라고 물었다. 나는 검둥개와 흰둥개를 본 적도 없을뿐더러 항상 마당 그 자리에 묶여있던 삼순이가 암컷인지도 몰랐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인데도 항상 먼저 묻고 본인이 답하는, 그리고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는 사람 잡는 저 화법.


새끼를 낳았다고 말한 그때도 녀석들을 데리고 올라온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다만 '얘들이 너무 아깝다 이 귀여운 것들을 어쩌냐, 너무 아깝다, '라며 혼잣말로 궁시렁거리기에 찜찜한 상태로 그렇게 전화를 끊었던 것이다. 그때 빨리 알아채고 매듭을 지었어야 했는데, 두루뭉술한 엄마의 화법에 또 넘어가고 만 건가.

갑자기 골이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얘들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니, 그냥 너 좀 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지, 얘들 도시에서 주인 좀 찾아줘 봐라. 시골개라고 계속 시골에 살아야 한다는 법 있니? 세상에 아이고 예뻐라.”


12월이었고 바람이 세찼다. 옷을 여미고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내게 엄마는 애틋한 눈빛과 함께,

한 손에는 김박스를 한 손에는 돈 오만 원을 쥐어 주었다.

"휘성이 용돈 줘. 딸 미안, 고마워!"

그리고는 바람처럼 역사 안으로 총총 사라졌다.


 


시골개는 시골개의 인생이 있는 거지,

내 엄마는 왜 이리 쓸데없는 일을 만들까.

나는 착잡했다.


이미 집에는 아이 친구가 이민을 가며 놓고 간 고슴도치 두 마리와 얼마 전 불어난 새끼들까지 여섯 마리가 밤마다 밥그릇을 머리통으로 쳐올리며 야행성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고, 주말에는 병원 상주견인 딸꾹이가 와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밤늦게까지 과외를 하그렇게 시끌벅쩍한 집구석이었다.


나는 빨리 이 일을 해치워야겠다고 맘을 먹고, 부랴부랴 사진을 찍어 지역카페에 올렸다.


엄마가 시골에서 데리고 왔어요. 엄마는 누렁이예요. 엄마 덩치는 크지 않아요,
아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절대로 파양은 안되고, 사랑으로 키워주실 분들만
연락 주세요. 시골에서 엄마가 기차 타고 데리고 온 애들이에요.

     

사진을 올리자마자 쪽지와 전화가 동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약될까요? 일주일 후에 갈게요".

"저 초등학생인데요, 엄마가 성탄절에 선물로 사준다고 했는데 그냥 이 강아지로 할게요."

"지난주에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똑같이 생긴 거 같아서요. 가서 보고 결정해도 되나요?"

" 마리 한꺼번에 가져가도 되나요?"

"혹시 예방접종은 다 됐나요?"

"시골 엄마집에 집 지키는 개가 필요해서요. 분양 가능할까요?"

"말티즈 아니죠? 똥개죠?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지역카페에서 똥개를 분양해도 되나요?"




나는 게시글을 올리고, 한 지역 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골개에 관심을 갖는 사실에 우선 놀랐고, 그들의 가벼운 의도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날 새벽에 웬 술 취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줌마! 얘들 크면 덩치가 얼마나 되오?

이거 똥개 맞잖어! 아니 똥개를 왜 엄마가 데리고 올라왔쏘? 똥개는 시골에서 살아야지. 똥개는 금방 사자만큼 커버려! 꺽. 끅."


헤드 리프팅에 맛 들인 도치 아빠엄마는 번갈아 물그릇을 아작 낼 기세였고, 그새 자란 새끼들은 쳇바퀴를 쌩쌩 돌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뱅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 때문이었다.


나는 취객의 전화를 받고, 카페에서 글을 내렸다.


갑자기 치통이 올라왔다. 치과도 가야 하는데. 치아 사이에 난 구멍에선 언제부턴가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입안에서 나는 정체 모를 냄새와 강아지새끼들의 똥무더기와 도치들의 쳇바퀴 사이에서 분노가 들불처럼 끓어올랐다.


그때 어디선가 타닥타닥 장작불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니 방문 틈새로 아들 녀석이 보였다. 녀석은 치렁한 앞머리를 커튼처럼 내리고 밤에만 활동한다는 크래커처럼 자판을 콩알 튀기듯 신나게 두들기고 있었다.

파리채라도 있었으면 등짝을 피똥쌀정도로 갈기고 었던 현장에 서서, 나는 이 총체적인 난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똥만 쌌지, 조용했던 강아지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덜컥 얘들에게 무슨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남편을 깨웠다. 휘적거리며 나갔던 남편이 애들을 보고와 '물 좀 줘'라고 말하고는 다시 곯아떨어졌고, 나는 물을 간장종지 세 개에 나눠 담아 펜스 안에 넣어줬지만 허사였다. 울음소리는 점점 강렬해져 갔다.

 

깨깽갱갱갱깨갱 중중모리에서 자진모리로 또 휘모리로 왔다리 갔다리 사람 혼을 빼놓는 여우와 늑대의 혼합종인가 싶은, 새벽녘에 기괴함이 서려있는, 사람 환장할 낑낑 거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다시 데리고 가!'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을 인자를 세 번 맘으로 새기고, 꾸역꾸역 새끼들을 달래보기로 맘을 먹었다.

도치들도 이 객들의 희한한 울음소리에 기가 질렸는지, 리프팅을 멈추고 새끼들과 함께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한 마리씩 아기처럼 안고 어르고 달랬다. 그러다가 다시 앞뒤로 흔들어도 보았지만, 새끼들은 빨간 목천장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고, 이내 나는 공포스러워졌다. 문득 악마 오멘이 동물원에 등장했을 때 발광했던 동물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울음은 끈질겼고, 새끼들이 내기에는 크고 드셌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세 마리를 동시에 욕실로 데려갔다. 그리곤 따뜻한 물에 살짝 담가 주었는데, 이젠 바르르 떨면서 눈알까지 까뒤집을 판 아닌가.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욕실에 있는 아로마향초까지 켜주며, 그만 좀 해라 이것들아! 나도 좀 살자란 말이 절로 나왔지만, 녀석들은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위층 아래층뿐 아니라, 피곤에 쩔은 큰애와 남편이 깰까도 신경 쓰였고, 나는 우선 너무 화가 치밀었다. 해서 세 마리를 모두 욕실 안에 가두고  불을 껐다. 잠시 조용해진 듯싶어 문을 열었더니 또다시 깨갱갱깨갱갱갱! 소용이 없었다.


기차를 몇 시간이나 쥐 죽은 듯 잘 타고 왔던 녀석들에게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거란 말인가.

나는 이 깨깨깽깽깽 소리를 어떻게든 멈춰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인품 좋은 앞동 8층 전직 교장선생님 현관 앞에, '불쌍한 애들입니다, 잘 키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쪽지와 박스를 몰래 놓고 올까 잠시 맘이 흔들릴 정도였다.

 



둘둘 담요에 싸, 차를 태웠다. 바닥에 살얼음이 낀, 영하의 날씨였다.

그런 어둔 새벽을 나는 자진모리 악단과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두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녀석들은 계속 울었고, 나도 함께 울고 싶어만 졌다. 내 인생에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사차원의 내 엄마. 어디까지 나를 골탕 먹일 생각인가, 이 양반은.


차를 대면서, 나는 날이 밝으면 다시 얘들을 시골로 데려다줘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 대천김박스!'가 떠올랐다. 그 안에서 조용했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그렇게 재활용 포대 자루에 거의 기어들어가다시피 해서 마침내 박스를 찾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건 내 마지막 보루다. 집에 들어가 나는 이 미친 자진모리 악단 세 녀석을 박스에 고이 넣었다. 제발. 제발.



잠시 후, 녀석들은 그곳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그리고  꺼내서 침대에 놨더니, 아침까지 세상 나 몰라라 잤다.


아, 이것은 한밤의 미라클.


 


강아지 세 마리는 엄마의 바람대로,

큰애의 책임감 강한 영어선생님과 아들의 절친 외동아들 집, 그리고 동물병원의 단골 부잣집에 분양이 됐다.

      

엄마에게 나는 세 마리가 다 분양된 날,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런데 개들 말이야, 도시보다 시골에서 자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아? 맑은 공기 맡고, 뛰어 놀고!"

할 말은 많았지만, 나는 조용히 이렇게만 말을 했다.


"삼순이는 감나무 아래서 평생 집만 지키며 살았는데!"

"그런데?"

"너라면 그렇게 살고 싶겠냐?"


와, 이 궤변.  



 


엄마의 바닐라아이스크림 세 남매는 지금까지 아주 잘 산다.

주인들은 강아지가 커가는 사진들을 내게 종종 보내왔지만, 나는 바빠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도,

녀석들과 했던 한밤의 드라이브와 그 대천김박스의 미스터리에 관해

생각이 들곤 한다.


걔들은 대체 나한테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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