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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리꼴
Oct 29. 2024
영화 <아이덴티티> 내 안에 다른 사람 찾기
우울할 땐 갈비탕이지
"아프다! 이
년아! 아아아아앜"
딸로 보이는 여자가 진료실 앞에서, 노인의 팔을 잡아 끈 게 사달이 났다.
얼굴이 뽀얀 노인이었다.
피부가
검버섯도
없이
고았다.
그
얼굴에서
승냥이 같은
울음소리가
나왔다. 대기석에 앉았던 노인과 보호자들이 일시에 그들을 바라봤고, 어디선가 번쩍 나타난 간호사가 으레 있는 일인 양, 노인을 달랬다.
"어르신, 오늘 왜 이렇게 고우셔요? 아침은 맛있는 거 잡쉈어요?"
간호사는 길게 붙인 속눈썹을 끔뻑이며 노인의 정수리를 쓰담쓰담해줬는데, 과장된 아이라인과 보라색 펄샤도우가
불편했지만
,
몹시
다정했다
.
짙은 화장의
간호사와
괴성을 지르지만
입꼬리는 웃고
있는
하얀 노인과, 그 옆에 선 푸석한 여자의 깊은 한숨. 한
낮의
부조리극 같은 이
곳
에,
나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폭우가 몰아치던 밤.
10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사연을 지닌 채, 네바다의 한 후미진 모텔에 모인다.
영화배우 캐롤라인, 그의 운전사 에드, 죄수를 호송하는 로즈, 로즈가 호송하는 살인마
로버트
, 라스베이거스 매춘녀 페리스, 몇 시간 전 즉흥적으로 결혼한 지니와 루, 어딘가 여행을 갔다 오는 느낌인 3명의 가족 앨리스, 조지, 아들 티모시까지 10명.
그리고 모텔의 매니저 래리. 도합 11명.
이 영화는 모텔에 모인 11명과, 중간중간 끼어드는 연쇄살인마 말콤의 사형집행 하루 전
심의를 벌이는
두 개의 서사가 동시에 진행이
됨으로
,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헷갈리는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접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때 하나씩 고리를 맞춰나가는
데
묘한 기쁨이 있다. 허나 집중력 없는 사람들은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긴가민가하는 찜찜한 기분이 들 수 있으니 조심.
이 오래된 영화를 나는 개봉일에 심야로 봤다.
이때 앞자리에 앉은, 오징어 땅콩에
집중
하던
중년
부부가, 말콤과 11명의 등장인물들의 고리를 찾지 못해, 서로 뭔 소리냐고 물어보다가, 마침내 끙! 소리를 내고 중간에 나가버렸던 일을 나는 목격했던 바이다.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영화
라
고 회자
되
는
,
아이덴티티.
말콤은
4년 전
한 아파트에서
6명을
죽였다
.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집행 하루 전 날 그의 정신과 의사
멜릭과
변호인이
뒤늦게
발견한 말콤의 일기장 때문에 사건이 뒤집힌다.
일기장에는 11명의
필체 다른
인격들이
말콤을 대신해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 그중
살인마인격을 없애면
사형은 피해 갈 수 있다며, 그들은 한밤중 판사를 불러내 재심의를 요구한다.
인격통합이 가능하다 믿는 의사
멜릭.
현실에선 다중인격의 하나인 살인마를 찾기 위해 말콤을
불러 일기장 속 인물들의 정체를 탐문하는 중에
, 말콤의 머릿속 가상현실
인 폭우속 모텔에선,
리무진 운전수 에드가 주축이 돼 10명의 인물들 속 살인마
를
찾아내느라 분주하다.
말콤의 머릿속에서 살인마
인격을 반드시 찾아
죽여야만 말콤이 살 수 있다
.
가상현실 속 모텔에 모인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각자 의심이 갈만한 살인의 이유가 있
다. 모텔에서 캐롤라인, 루, 앨리스 등이
번호키가 카운트되면서
죽어나가면
, 현실 속
말콤의 머리에서
도
하나씩 인격들이 사라진다.
당시에
이런 시도는
무척 신선했다.
스릴러의
뻔한
공식이
지만
관
객들에게 숨겨놨다
곶감 빼듯이
하나씩 내어주는 그런 감질맛
과 스릴이 동시에
느껴졌
으
니까.
페이싱이 아주 훌륭한, 영화.
말콤의 인격 중 하나인 에드(리무진 운전, 전직 경찰)가 현실로 소환돼
,
자신이 말콤의 인격 중 하나란 각성을 하고
다시 말콤의 머릿속 모텔로 돌아가
는 장면
과,
모텔 사무실에서 발견된 카피 신분증에서 11명 모두의 이름이 미국의 '주' 이름을 따서 만
들었고 5.10일로 생일이 동일하다
는 사
실
,
그리고
다섯 명의 생존자와 사라진 시체들.
가장 유력한 살인마인격으로 유추되는 가짜 경찰관 로즈와 대치하던 에드
가
서로 총을 한두 발씩 맞
교환하고 죽
으며
살인마색출
이
드디어
끝
나는 줄
한숨 놓았더니만,
다시 반전.
드디어 오랜 숙원인 오렌지 농장으로 가 다른 삶을
살게
된
마지막 생존자 페리스
가
땅속에서
발견하는
번호키 1번.
그
앞에 삼지창을 들고 나타난 티모시
가
처키의 웃음을 지으며 페리스를
찍어 죽
일
때, 아
.
이 소름 돋는 반전 때문에 골머리를 썪으며 여기까지 왔구나란 작은 탄성
을 터뜨리는 관객들은 소수였다.
얘
는 어디있다 이제 나타난건데?
다
시 헷갈리기 시작.
속전속결의 물고 물리는 말콤 머릿속 범인 찾기는 숨 가쁘고
영리하게 진행돼
, 실제
영화를 보는
내내 말콤의 가상현실이 모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극이란 걸 에드의 각성 전까지는 모르는 관객이
7
할이다.
이때 알아챈 사람은 천재.
이 영화만의 독창
성 또는 반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면
,
해리성인격장애를 앓는 말콤의 육신 자체에는 죄가 없고, 그의 다중인격 중 살인마인격만 제거된다면 말콤을 병원에서 갱생을 시키는 게 옳다?
뇌에만 죄가 있다고?
이 연쇄살인마
가
?
내겐 이부분이
다.
말콤은 사형이 취소돼 병원으로 호송되고 가는길에 티모시의 살인마 인격이 발현돼, 의사를 죽인다.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24개의 인격을 지닌
스물두살
빌리
밀리건이
여러 번의 성폭행을 했음에도, 무죄를 선고받은 예가 있다.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어쩔씨구.
그럼
말콤은
왜 다중인격이 됐고, 자신이 만들어낸 10명의 인격들은 어떤 사연을 지녔나.
다 알 수는 없고, 페리스만 예측가능하다. 티모시가 엄마에게 버려진 후 모텔에서 발견됐고 그의 엄마는 매춘부였고 버려졌을 나이가 지금의 티모시의 나이였
고,
그래서 페리스를 삼지창으로 찍어 죽일 때
'매춘부에게 두 번째의 인생은 없어',라며 눈을 부라렸던 것.
살인의 장소 역시 모텔인 것도 이런 이유.
이런 세밀한 대사
와
복선들, 그리고
돌변한 티모시의 처기 눈썹이
무척
놀
랍다
.
감독이 시나리오를 이렇게 공들인 작품이 나는 너무 좋다.
반전이 있든 없든, 디테일한 부분을 대충 넘어가지 않고 챙기는 그 사소함에 감화된다.
허나 완벽주의 감독들은 오래 살기는
틀렸
다. 얼마나 들추고 또 들췄을 것인가
.
잠
도 안자고.
아이덴티티는 아가사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와 사뭇 흡사한 부분이 있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10명의
사람
들이 외딴섬에 초대되어 한 명씩 죽어나가는 미스터리 소설이
고,
그중 '10명의 인디언 동요'라는
시는,
이렇다. 그리고 실제 이 스토리대로 죽는다.
열 꼬마 병정이 식사하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
중략
)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그리고 이건 아이덴티티에 언급되는 휴즈 먼스의 시다.
감독이 모티브를 따왔다는,
작가가
자신의 집 계단에서 유령을 보고 지었다는 시,
어제 계단 위에서 그곳에 없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오늘도 거기 없었다. 제발 가버렸으면 좋겠다. 어젯밤 3시에 집을 왔을 때
그는 날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
중략
)
어젯밤 나는 계단 위에서 그를 보았다.
계단 위에서 그곳에 없던 사람을 만났다
,라는 구절은 영화가 시작될 때 녹음된 테이프 속 말콤이 한번, 각성한 에드가 한번, 그리고 마지막 티모시가 한번, 이렇게 세번 언급이 된다. 시 자체가 주는 복선과 쫄림이 있다.
그런데
두
개의 시 모두 으스스하지 않나.
게다가
집에서 귀신을 만났는데, 이런 시를 짓다니.
대단한 공력의 소유자
.
엄마는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말
했다.
눈 앞에 보이는데, 정신을 차리자!고 눈을 꾹 감았다 뜨면 스르르 사라지는 그것들.
의사는
그
게
어
쩌면
'
섬망
'
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올해 4월
큰
수술을 받았다. 엄마의 허리엔 두개의 기둥에 8개의 핀이 박혀있고, 그건
엄연한
쇠로 만든 사다리였다
. 열
시간
남
짓
수술을 하고 나와, 하루종일 마취에서 깨지 못하고 섬망에 한달간 시달렸던
그 서슬
퍼런
날들을
잊고 있었는데,
환각은 둘째치고
며칠
전
엄마는 한 시간 전 나와 한참 통화한 일을
전
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심장이 쿵 떨어져, 풀 액셀레이터를 밟고 보령으로 내려갔다. 유명 신경과는 대기만 일주일이 넘었고, 부정확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시에서 운영하는 치매진단센터를 거쳐 2차 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던 참이었다.
주눅 든 엄마는, 말콤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
리며 나를 더 불안에 떨게 했다.
"왜 이렇게 가만히를 못있어!"
"아니 왜 승질이야! 나를 왜 여길 데려와서 이 난리야!"
의사
는 마약성진통제의 후유증같다며,
원한다면 검사를 받으라고
,
불안한 내게 차분히 말해주었다.
간밤
나는
어쨌거나
인터넷 치
매
카페에 가입해 폭풍 읽기에 돌입을 했
고
,
오랫동안 노모를 케어하고 있
다는
누군가가
,
너무 애쓰지 마세요
우린 바꿀 수 없어요
저도 제가 노력하면 될 줄 알았어요
매일매일 타박 말고 따뜻한 말을 해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우린 흉포한 몬스터
와 싸우는 거예요
일상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고서야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는 아들의 담담한 고백
을
듣기에 이르렀다.
기억을 잃어가는 내 부모 안의
보도
듣
도 못한 낯선
몬스터와
싸우려면, 그냥 놔두는
게 최선이란 말인가.
아,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어쩌면
이제 내 앞에
겪어보지 않은
세
계가 펼쳐지는 것인가.
나는 혼자인데.
몇
달간 달콤
했던 날들은
이제 안녕.
이때
진
료를 마친 모녀가 나왔다.
그런
데
하
얀
노인은
눈빛이 따스한 데다
아까와 전혀 다른
점잖은 인격
이 돼, 엄마에게 다소곳이 말을 걸어
오는 게 아닌가
.
"여긴 무슨 일로 오셨을까?"
목소리가
가냘픈
소녀
같아서 나는
좀 전의
그
승냥이는 대체 어디 숨었는가,
조금
얼떨떨했다.
하얀 노인은 엄마의
손을
꼬옥
잡
았
다. 그리곤
"
아줌마,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요
!
응! 응!"
그렇게 몇 번 다짐을 받고
는
딸
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났다.
엄마는
모
녀가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며,
"저렇게 고운데 너무 아깝다"
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간밤에 실은,
엄마가
혹시
돌아가시면,
그 '
쇠
사다리'를 어디에 보관해야하는가,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설쳤다.
아이덴티티도 써야하는데
사다리를 어디에 보관해야하나 자꾸 그 강박이 나를 쫓아다녀서
,
사다리 사다리 사다리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여기저기
를
헤매며
기
차인지 사다리인지 모를 뭔가를
타
다가
서
너번 잠에서 깨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울적해졌다.
엄마와 나는
다
음주로
검사 예약을
하고나와
,
병원
앞
갈비탕
집에 들어
갔
다
.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홀은 한산했다.
우린
뜨끈한
특
대
갈비탕
을
시
켜, 살이 제법 붙은
갈비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제대로 뜯
었
다.
솥밥에 누룽지까지 싹 긁어먹고나니,
엄마와 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리 모녀는
삶에 대한 용솟음치는 자신감
을
확인한듯, 박하사탕까지 굴려가며 들꽃 무더기 사이로 들어가 사진까지 한
장 박았다.
그렇지,
울적할 땐 갈비탕
이
지.
엄마가 본다는 그것들은,
먼저 간 내 아버지, 그리고 얼마전 떠난 언니와 88올림픽에 떠난 내 동생,
그러니까
본인의 자식들이었다.
그리워해서 나타났을까.
어렵다,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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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특급열차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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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화 <미저리> 나는 하드커버가 싫다고 말했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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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런 싼마이를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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