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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Nov 17. 2024

영화 <더 로드> 무의식의 재구성

아저씨 감사했어요

나는 한적한 국도변을 달리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히 한밤중 더.

괜히 뒷좌석을 쓱 한번 보는 것이다. 


어떤 때 등골이 서늘해지면 누군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든지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 그런 괴한 상상을 하는 것인데, 그러다가 희뿌연 사람형태의 것이 앞을 가로막는다면 나는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 것인가. 그런 도 않는 생각에 도리질을 치다가  슬쩍 뒷좌석을 다시 한번 살피는 짓거리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버릇은 운영하던 학원 교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홍대클럽에서 밤새 실컷 놀다가 술이 깬 후 차를 몰고 새벽 자유로를  달렸다고 했다.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안개 때문에 적정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복의 한 여자가 중앙선에 서있었고 너무 놀라 액셀을 있는 대로 밟고 그녀를 피해 달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에 술이 덜 깬 상태로 운전한 바람에 나타난 착시라 봤고 해서 상대교사의 음주운전에 반감을 가진채 떠름게 "그래요?"하고는 말았는데



얼마 후 티비에서  자유로에 출몰하는 귀신 이야기에 관해 직접 제보한 사연을 듣게 되었던 것이.

그 제보란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자유로 한복판에서 코트를 입고 한밤중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소문이었다.



"집까지 태워줄 수 있나요"라고 묻도 했다는 여자는,

알고 보니 썬글라스가 아닌 눈이  빠져 까맣게 구멍이 난 상태로 오래전 자유로에서 뺑소니 당해 죽은  20대의 여성일 거란 추측이었다.  이 괴담은, 여럿이 증언했고 실제 자유로귀신을 인증하기 위한 관종들이 카메라를 들고 방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로 자체가 강과 인접해 안개가 끼는 곳이라 운전자들이 헛것을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여하튼, 이 괴담은 방송을 타면서 '자유로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자유로귀신'이 분명하다는 확증편향이 생겨나며 유명세를 탔다.




 

더로드는 미국판 자유로귀신 이야기다. 일명 로드호러무비.

공간자체가 길, 오두막, 산길, 차 안 등으로 제한돼 있고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대단히 미스터리하고 흥미롭다.

몰입도 최강.


아버지 프랭크, 엄마 로라, 딸 메리온, 메리온의 남친 브레드, 아들 리차드 다섯 명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로라의 부모님 집으로 연휴를 보내러 떠나는 길이다.


항상 가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지름길을 택한 아빠 프랭크는 단조로운 길을 가다가 순간 졸음운전을 하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 거 같은 길 위에서 지름길을 고집한 프랭크를 원망하던 찰나, 한 오두막을 지나친다. 그러다 불현듯 나타난 소복의 금발 여자를 차에 태운다. 음산한 이 여자는 얼굴에 상처가 있고 아기까지 안고 있.

전화까지 먹통인 상황에 지나는 길에 있었던 오두막으로 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는데.

 


이때 차에 남아있던 소복 여자는 메리언의 남친 브레드에게 보에 싸인 아기를 보여주는데,

아기는 으스러진 빨간 덩어리. 기절초풍직전의 브레드.



이때 갑자기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차량 한 대, 아뿔싸 뒷자리엔 겁에 질린 브레드가 타고 있다. 뒤차창에 일그러진 브레드의 얼굴을 비춘 채 차량은 멀어진다.


아빠와 딸 메리언은 브레드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차를 추적한다. 헌데 길에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는

잔혹하게 살해된 브레드. 시체에서 그의 핸드폰을 겨우 꺼내드는데 전화기 너머로 괴성이 들려온다. 누군가 살려달라는 울부짖음.


억제할 수 없는 공포의 길 한복판.

도무지 길은 나오지 않고, 끝없이 난 길을 돌고 도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마르콧'이란 이정표. 지도에도 없는 장소다.

그들은 마르콧으로 향하는 어두운 도로를 다시 달리고 달린다. 나오는 거라고는 끝없는 길.

게다가 모든 시계는 7시 반에 멈춰 있다.


라디오에서는 설상가상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았다고 남편을 원망하는 로라.

갑자기 차는 펑크가 나고, 딸은 그 와중에 임신했다고 고백을 하고, 음악을 듣고 있는 동생 앞에 다시 나타난 소복 여자는 키스를 하며 리차드의 입술을 갈기갈기 뜯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검은 차, 이번엔 두 번째로 리차드가 잡혀간다.


누군가 죽을 때마다 나타나는 금발의 소복여자와 검은 차량.


다시 길에 버려진 전신화상의 리차드를 발견. 성탄선물에서 총을 꺼내 장전을 하는 아빠와 타 죽은 아들을 발견하고 정신을 놓는 로라. 횡설수설하며 차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걸신처럼 먹어치우며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드는 로라20년 전의 죽은 친구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말하며 씨익 웃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차량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때 다시 나타난 검은 차량을 혼비백산 총으로 조준해서 쏴버리는 프랭크와, 그 차에서 내리는 반쯤 날아간 머리통의 로라. 한밤중 이게 웬 아사리판인가.


 

이번엔 반실성한 아빠를 태우고 운전하는 메리언. 숲을 걸어서 빠져나가려는 부녀. 숲에서 죽은 사람들의 괴성이 들려오고, 불빛을 보고 달려가는 그들 앞으로  자신들의 차가 나타난다.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부녀는

다시 지나쳤던 오두막을 발견하고 성냥불을 켠다. 그랬더니 뒤엔 소복의 여자가 웃고 있다. 서양귀신이 이렇게 무서워도 되나.


도끼를 휘두르, 실성한듯 딸 메리언까지 때리는 프랭크는 정신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금발의 여자를 쫓아 숲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차를 몰고 도망치는데 기름이 떨어지고, 미로 같은 도로를 혼자 걷기 시작하다가 길에 떨어진 프랭크의 펜을 발견하는 메리언. 그리고 그 위에 피를 낭자하게 흘리고 매달린 프랭크의 시체를 보고 놀라 자빠지는데,


좀 더 걷다 보니 길에는 죽은 남친과 가족들의 시체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게 아닌.

그리곤  다시 아기를 안고 금발의 여자가 출몰해 검은 차를 타고 떠나며 메리언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널 데리러 온 게 아니야,라고.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졸음 운전하던 그때 그 상황이 겹쳐지고, 메리언이 병원에서 깨어난다.

아빠의 졸음운전으로 혼자만 살아남은 메리언, 그리고 검은 차량의 목격자 덕분에 구조가 됐고 상대편 차량에 있던 금발의 흰옷 입은 여자와 아기는 즉사했다는 걸 안다.


사고가 났을때 브레드는 유리에 찢겨 죽고 리처드는 불에 타죽고 메리는 머리가 박살나고 프랭크는 튕겨나가 나무에 걸려죽었다는, 수순과 과정들을 무의식에서 재구성한 듯.


지도에 없던 지명인 '마르콧'은 여의사의 이름이었.  


더로드의 원제는 Dead End.

그러니까 프랭크의 졸음운전에서 혼자 살아남은 메리언의 무의식 혹은 꿈 이야기다. 검은차량은 목격자의 것. 무의식에선 저승사자의 차량.

 

동양적인 공포를 담고 있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악몽속을 거니는 느낌하며, 딱히 고어스럽지않으면서도 대단한 압박감을 주는 영화.

 

뫼비우스띠 같은 그길은 어쩌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일수도 있겠고, 또 흔한 클리셰들을 이처럼  매끄럽게 반전까지 이끈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력호러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매우 놀랍 여만하다.


그래서 이 쌈박한 호러를 널리 알리고자 자유로귀신까지 소급해 동서양 귀신의 배틀을 한번 겨뤄보았다.






휘영이는 내 고등학교 때 친구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였다. 나는 휘영이와 한동네에 살았린 종종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둑신한 동네를 서성이다  기사식당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목격곤 했다.

"저기 저 시커먼스가 우리 아빠."


그러면 아버지는 우리를 불러 세워 2층에 있는 사계절 내내 트리에 알조명을 켜놓는 돈가스 집에서 함박스테이크나 왕돈가스를 시켜주곤 했었다. 소파에선 장판 썩은 냄새가 났지만 함박과 돈가스는 살살녹았던 추억의 맛집.


말수가 없고 가까이 가기도 전에 니코틴 냄새가 쩔어있었던 그리고 손끝이 까맸던 그는, 마른 체구에 키컸고 어깨가 옹송그린 채 슬픈 눈의 소유자였는데, 내게 함박 한번, 돈가스 한 번을 사주고 나서 폐암으로 죽었다.



그래서 조문을 하기 위해 엄마가 일을 다녀와 벗어놓은 검정재킷을 걸치고 휘영이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왜 병원영안실이 아니냐는 내 질문에 휘영이는 아빠가 사람 많은 걸 싫어했다는 소리를 했다.

 


학교를 다니며 끊임없이 말썽을 부렸던 휘영이는 아버지가 얼굴이 새까맣고 택시운전을 해서 증이 난다고 내게 말 적이 있었다.  그날 나와 함께 2층  돈가스집에 올라가면서 녀는


"나랑 떨어져오란말이야!"라고 아버지에게 눈을 흘겼고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막내딸과 두 걸음 폭을 두고 계단을 올랐데, 내눈에 그는 마치 짚이 이리저리 삐져나온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스무살의 내가 휘영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슈퍼로 접어들었을 때

세 자매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양손에 한 병씩 들고 가게를 나오는 중이었고,  나는 그녀들 자정 가까운 이 시각 소복을 입고 머리채를 풀어헤친 그 행색, 막걸리 콜라보가 비현실적이어서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무섭지 크크크크"

세 자매는 진정 놀이동산 귀신의 집 알바를 마치고 나온 듯, 홀가분하게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한 대씩 나눠 피우고 바닥에 소리나게 침을 모아 뱉었다. 저씨는 담배 피우는 딸들에게 매우 엄하게 굴었고 휘영이는 뺨을 맞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병풍 뒤에 있다는 휘영이 아버지에게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앞서 걸어오던 한 청년이 소복의 그녀들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망치는 그 면에서,

 

 

소복의 세 자매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밤에 튀밥 같은 음을 터뜨렸다.



휘영이는 후일에 내게 고백하기를,

아빠를 쪽팔려했던 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아빠를 더 벗겨먹을 수도 없으니 그 점이 너무 슬프다며, 왕방울만 한 눈을 내리깔며 그를 추모했(울었고),


 나는 그의 노란 셔츠깃이 르스름한 등 아래에서조차 새까매서 함박을 먹다가 자꾸 그걸 쳐다봤던 일을 반성했다.


더로드 소복귀신에서 시작된 물고 물리는 기억들이

  최초 함박과 돈가스를 사주었던 참된 어른 휘영이 아버지에게까지 슬러 올라가,

 


코끝이 살짝 알알에 놀라,

자유로귀신 이야기하다가 이게 가을 밤의 청승인가,싶은.



참된 어른 휘영아버지를 추모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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