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의 유용함

육아를 하며 매일 읽기와 쓰기를 하는 이유

by 대강철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지 않으면 일이 아닌가?

육아도 일일까? 주부도 직업일까?

아이 셋을 낳고 직장에 기약 없이 돌아가지 못하고 일을 쉬고 있는 나는

일하러 나가면 애들을 팽개치고 나간 엄마가 되고

일하지 않으면 남편 덕에 편히 먹고사는 여자가 되는 건가.


돈을 벌던 사람이 집에 5년째 갇혀 있으면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리에 맴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생각이 들 때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렇다고 책에 처음부터 몰입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울면 언제든 달려 나가야 하는 나의 삶은 흡사 포식자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 쪽잠을 자는 초식동물의 그것과 같았다.

긴장을 내려놓고 책에 파묻히는 집중의 시간은 짧았다.

야생에서도 사자만이 배를 깔고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돼있는 가젤의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텍스트를 읽었는데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었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눈에 안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었다.


책 읽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돈도 안 되는 일에 나는 왜 매달려있는가.


남들은 모두 돈이 될만한 일을 하느라 바쁜책 볼 시간 있으면 주식 공부라도 해서 살림에 보탬이라도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만 하는가.

스스로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가슴에 물음표를 한가득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지금 속해 있는 환경에는 없는 가능성을 상상을 통해 그릴 수 있는 언어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언어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언어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언어가 풍부해야 합니다.

_메모 독서법 p112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언어의 힘이라니.

내가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자꾸만 책에 기대는 것이 이거였구나.

나는 나의 삶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도 나의 상황을 100프로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내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환희와 막막함, 충만함과 억울함을 설명해 줄 언어가 필요했다.

그런 언어는 남이 대신해서 정리해줄 수 없다. 내가 찾아서 나만의 언어로 만들어내야 했다.


아이들도 말을 못 하는 시기에는 징징대거나 이유 없이 통곡을 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그 말로 엄마 아빠가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이유 없는 짜증이 급격히 줄어든다.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덜 나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의 삶을 이해할 언어가 부족했고, 지금 속해 있는 환경에는 없는 가능성을 상상을 통해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기 힘들수록 지금 환경에는 없는 가능성을 찾고 싶었다.


지금 속해 있는 환경에는 없는 가능성을 상상을 통해 그리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언어를 꾸준히 습득해야 나만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언어가 풍부해야 한다. 비단 소설만이 손쉬운 현실도피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보여주는 세계가 나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책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책의 섭취가 필요했다.

아이들도 음식을 충분히 먹어줘야 똥이 잘 나오듯, 책도 충분히 읽어줘야 알맞게 소화되어 태변같은 글들이 나오는 거였다. 언어의 변비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꾸준히 책을 읽었다.

손에 닿는 곳마다 책을 두고 손이 닿을 때마다 읽어나갔다. 꾸역꾸역.


가슴속의 응어리처럼 매달린 질문들의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툭툭 나왔다.


나는 아이들이 동시에 울거나 동시에 저지레를 하거나 동시에 잠을 안 자겠다고 난리를 치면 그 순간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의 부족한 모성애에 화가 났다.

고작 아이들이 잠을 안 자겠다고 한다고 죽고 싶은 엄마라니...

극단적인 생각이 달려들 때마다 그 생각들에 발을 걸어 넘어뜨려야 했다.


모성애에 의문을 갖고 있던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암수의 전쟁의 핵심은 누가 먼저 자식을 상대에게 떠맡기고 도망갈 수 있느냐라고. 육지동물은 암컷의 체내에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이 되는 반면, 해양동물은 물속에서 수정이 되므로 정자의 확산성 때문에 수컷이 암컷보다 나중에 사정을 한단다. 즉, 수정란의 상태일 때 육지동물은 암컷이 그 수정란을 갖고 있다면, 해양동물은 수컷이 갖고 있다는 거였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로 인해 육지동물은 암컷이 자식에게 헌신적인 종이 많고, 해양동물은 수컷이 자식을 돌보는 종이 많단다. 예전에 소설 <가시고기>를 읽고 질질 짜던 나는 마음이 짜게 식었다. 부성애가 아니라 정자의 확산속도 때문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론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자유로웠다. 모성애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성도 아니고 그저 수태가 되는 장소에 따라 다른 것뿐이다. 여자의 뱃속에서 아이들이 자랐기에 모성애가 엄마에게 더 강해 보이는 것뿐이지, 남자의 몸에 수태되었다면 부성애가 더 보편적인 감성이 되었을 거다.

그러니까 모성애라는 틀에 가두어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지, 모성애가 있냐 없냐로 괴로워하지 말아야지.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육지동물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계속 내가 유전자의 운반 기계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몸이 원하는 것은 결국 나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뿐이고, 나는 유전자가 불멸하기 위해 거쳐가는 탈것에 불과하다.

이런 말에 나는 실망하기는커녕 뭔가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결국에 나의 몸은 사라질 것이고 유전자는 몸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질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정신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꾸려나가느냐는?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

그저 나의 선택으로만 살아갈 뿐.

정해진 역할이나 의무란 없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너무나 정해진 역할에 맞춰 살아왔다.학생일 때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대학생이 돼서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과업을 착실히 수행했고, 직업을 가진 후에는 비로소 나만의 가족을 꾸렸다.

나는 이 과정들을 차례로 해치워가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마치 잘 푼 수학 문제지를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착착 치는 느낌과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다.


대학에 안 가거나, 직업을 안 갖거나,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안 낳는 삶에 대해 일말의 고민도 안 해본 나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진 것은 이미 아이를 셋이나 낳고나서였다.


어떻게 이리도 상상력이 부족할 수가.

어쩌면 이렇게 무식한데 용감할 수가.


내가 만약 연어라면 이쯤에서 죽는 타이밍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왕창 낳았으니 황폐해진 육체를 떠나는 게.


그런데 나는 아직 30대다.

인간의 평균 수명으로 따져도 아직 절반도 안 살았는데?

운나쁘면 120세까지 살 수도 있다는데?

나는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나만의 이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책을 매일 읽다 보니 내 속에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저 머릿속에 담고만 있기에는 버거운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조금씩 글을 썼다.

내 것으로 소화된 생각들을 야금야금 뱉어냈다. 글을 쓰기 시작하자 곧 이것이 긴장을 풀기에 가장 쉬운 휴식 방법임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거미줄을 뱉어내는 거미처럼 글을 뱉어냈다.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모두 글감이 되었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막내아이처럼 돌보았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이라는 책에 따르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를 해석하는데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유혹이 ‘전문가에게 맡기기’와 ‘단순화하기’라고 한다.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내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글쓰기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_글쓰기의 최전선 p43


은유 작가의 책에서 만난 이 문장은 글을 쓰는 것의 쓸모를 단적으로 알려주었다.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내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글쓰기라는 것.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내가 매달리는 이 돈이 안 되는 일인 책 읽기와 글쓰기가나의 삶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수공업을 하는 것이라니. 새롭게 보였다.

결국에는 나에게로 향하는 길을 찾는 거였다.


남에게 맡길 수도 없고 맡겨서도 안되는 나의 삶을 단순하게 뭉개지 않으려고 오늘도 읽고 쓴다.


그것의 무용함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것인 나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실을 잣듯 글을 잣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