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젖꼭지 증후군을 아십니까

모유 수유를 포기하다

by 대강철저

첫째를 낳고 모유수유를 배우는데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스킬이다)

나에겐 임신 출산과는 또 다른 관문이었다.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나.


조리원에 가자마자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몸에 열이 났다. 가슴은 손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아팠다. 조리원의 가슴 원장님(진짜 이렇게 부른다)은 젖몸살이라 했다.


젖몸살은 출산의 고통에 버금갔다.

이미 훗배앓이로 끙끙 앓고 있는 와중에 가슴이 납덩이처럼 굳어가는 고통.

출산이 끝이 아니라 극강의 고통이 또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배신감까지 들었다.


대체 조물주는 왜 이따위일까.

엄마가 자궁에 품고 열 달 키워 낳기까지 했으면 최소한 모유는 아빠 젖꼭지에서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슴 원장님이 보시더니 마사지로 풀어야 한다며 나의 돌덩이 같은 가슴을 손으로 쥐어짜고 누르고 젖꼭지를 꼬집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순간 내 가슴을 잡고 있던 손을 붙잡아 옆으로 밀쳐버렸다. 그러자 가슴 원장님이 말했다.

안 풀어주면 더 딱딱해져요.
나중에 바늘로 찔려야 돼요.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을 나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공포와 고통에 휩싸여 끙끙 앓았다.


엄마가 되면 자동으로 젖이 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삐익 삐익 소리만 내며 젖이 안 나왔다.

조리원 수유실에 모여 수유를 하면 내 아이만 못 먹었다. 열심히 가슴을 요리조리 쥐어짜 먹였는데도 분유를 주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는 아이를 보며 엄마로 시작부터 빵점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육아는 온통 자괴감과의 싸움이었다.


가슴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아침은 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고문대에 누워 고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마사지 베드에 누워 침대 모서리를 부여잡았다. 나만 참으면 우리 아이 밥이 나온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모유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가슴 원장님이 얘기했다.


모유를 먹이면 엄마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고 아이 머리도 좋아져요.


나는 내가 쥐어짜는 만큼 아이의 아이큐가 올라간다고 믿게 되었다.

아이가 배불리 먹게 모유가 많이 나오길 매일 기도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족발을 뜯어먹고(콜라겐이 모유를 잘 나오게 한댔다.) 모유촉진차를 식사 후에 한 컵씩 마시고, 가슴 마사지도 어느덧 익숙해지면서 드디어 내 가슴에서도 적당량의 젖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울면 젖꼭지가 찌릿하며 모유가 새어 나왔다.

내가 포유류란 걸 이렇게 극명하게 증명하다니.


과락을 모면해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수유 콜을 받았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가슴을 닦고 정갈한 자세로 아이를 기다렸다.

조선시대 애 낳은 궁녀의 삶이 이랬을까?

아이를 낳기 위해, 젖을 먹이기 위해 준비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

내 몸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아이가 되고 아이를 먹이기 위해 살찌우고 몸을 깨끗이 준비해야 하는 느낌.


모유수유를 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자주 났는데 뭔가 이유가 있어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눈물이 먼저 나고 이유를 찾는 것 같았다. 가끔은 아이를 낳고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 울적했다가, 남편과의 관계가 변한 것 같아 실망스럽다가, 뭔가 덫에 걸린 기분이 들었다가 또 아이의 꼬물거리는 모습에 감격스러웠다가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젖소는 늘 이런 기분으로 사는 걸까.

생각해보면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상태이자 우울한 게 당연한 시기이기도 했다.

뱃속에 커다란 범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내 몸 안에서 커져가던 아이가 어느 날 풍선 터지듯 터져 나가고 내 몸속의 호르몬들도 썰물처럼 함께 빠져나가버렸다.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뭔가 주요한 핵심이 빠진 느낌. 상실감이 온몸으로 느껴져 무기력하기도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 눈물이 자꾸 나는 이유를 나는 처음에 산후우울증이라 여겼었다.

아이를 낳고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그것은 출산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 했다. 나는 그런데 모유 수유할 때에만 이 우울감이 심했다. 점점 심해져서 거의 수유하며 나오는 젖의 양보다 눈에서 나오는 눈물의 양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다가 우연히 '슬픈 젖꼭지 증후군'을 알게 되었다.


슬픈 젖꼭지 증후군의 뜻은 이러하다(출처: 위키백과)


D-MER(Dysphoric milk ejection reflex)는 모유 수유하는 여성의 분비 구조 이상을 가리킨다.
D-MER이 있는 여성은 모유수유 직전에 순간 불쾌감을 경험할 수 있다. 모유가 나오려면,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는데, 일부의 여성은 도파민이 불규칙적으로 줄어들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비공식적으로는 슬픈 젖꼭지 증후군, 슬픈 꼭지 증후군으로도 부른다.


나는 작은 상처도 트라우마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 정의를 읽고는 오랫동안 찾고 있던 병명을 알게 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나는 드디어 이 고장 난 수도꼭지의 원인을 찾은 거였다.

서서히 모유수유를 줄이고 분유 수유를 했다. 아이가 백일 즈음이었다.


분유 수유를 하게 되면서 아이는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는 눈물을 덜 흘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모유수유를 포기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이의 면역력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가슴 원장님의 말들이 악몽처럼 나를 휘둘렀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모유가 좋다는 건 안다.
그러나 엄마 인생이 더 중요하다

_<프랑스 아이처럼>


서울에 살면서 프랑스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지는 못할 거란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모유가 좋다는 건 알지만 엄마 인생이 더 중요하다니.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모유수유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정보는 이렇게 많으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가 갖는 기분장애에 대한 정보는 이렇게 꽁꽁 숨겨져 있다니.


이어지는 문장들도 내겐 신선하다 못해 숨통을 트여주는 듯했다.(앞의 숫자는 페이지)


16.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모든 일에 강박을 갖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 해도 자신의 일상을 자녀를 위해 송두리째 바치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71. 아이의 안녕만이 아니라 부모의 '삶의 질'도 중요하게 여겼다.

170. 부모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라는 사실이 다른 역할까지 잠식해서는 안 된다는 게 프랑스 사회의 지배적인 메시지다.

171. 아이가 행복하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서 행복한 모습이다. 엄마이기를 거부하고 여성으로서만 부각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여성의 역할이 잘 융합돼 있다. 그 둘이 동시에 보이지만 둘은 서로 갈등하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육아 스킬이 아니었다.

육아에 관한 철학, 관점이 필요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강박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꼭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아이에게만 올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자연분만과 모유수유가 정답이라는 강박을 내려놓았다.

그랬다. 이건 일종의 강박이었다.


아이는 나의 죄책감과 상관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자잘하게 앓고 지나가는 감기들에 괜히 모유를 안 먹어서라고 이유를 붙이는 못난 짓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제왕절개에 분유로 키운 아이도 잘 큰다. 엄마의 마음이 건강하면.


중요한 건 결국 균형이었다.

나라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

아이를 사랑하고 그만큼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의 삶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취약한 부분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엄마로도 충분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격스럽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함께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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