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시니어모델
1. 아빠의 직장생활
가족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자라기란 어렵다.
인생에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아마도 아빠를 뽑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가서 밤늦게 오고 주말에는 하염없이 잠을 자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보험회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하셨다. 우리 때문에.
IMF 시기에 회사는 아빠를 서울에서 저 멀리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발령을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두던 그때도 아빠는 그만두지 못하셨다. 집에는 엄마와 세 딸이 있기에. 먹여 살려야 하는 입들이 집에 많았기에 아빠는 주중에는 직장 근처에서 월세방을 얻어 지내고 주말에만 서울로 오셨다. 지방 발령으로 2년을 주말부부로 지내고 다시 서울로 복귀할 때 아빠의 짐은 밥솥 하나뿐이셨다. 돈을 아끼기 위해 밥솥을 사서 지내신 것.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절약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끼고 모으는 분이셨다. 미래를 위해.
직업이 자기 계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새끼들의 입에 밥을 넣어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의미가 있는 회사생활을 정년까지 하고 나서야 아빠의 직장생활이 끝났다. 아빠의 책상 달력에는 22만 얼마라고 쓰여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으실 때마다 일당을 떠올렸다고. 오늘 내가 버티면 하루에 얼마를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직장생활을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을까? 주말이면 두통약을 먹고 주무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퇴직을 하고는 더 이상 회사에 가지 않아도 돼서 후련해하실 줄 알았는데 아빠는 조금 우울해하셨다.
공교롭게도 아빠가 퇴직을 한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제 고아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직장도 잃고 부모도 잃은 만 56세의 아빠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정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퇴직을 하신 후에도 금세 일을 찾기 시작하셨다.
평소에 취미로 하시던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워보려고 구에서 하는 시니어 클럽에 갔다가 시니어모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셨단다.
외모에 자신감이 있으신 것은 아니었지만 모델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고 덜컥 뽑히셨다. 집에 와서 가족에게 얘기하니 모두가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걱정을 했다.
퇴직금 사기가 공공연하게 많이 있다던데..
아빠... 조심해요.
혹시 돈 달라고 하면 절대 주지 말고요.
나는 퇴직한 아빠가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불안했다.
그렇게 아빠는 시니어 모델일을 시작하셨다.
2. 퇴직 후 제2의 인생 시작 _ '시니어 모델'이라는 블루오션
그런데 어느 날 공익광고 섭외가 왔단다. 촬영을 마치고 오신 아빠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일당도 톡톡히 받으신 걸 보니 신기했다. 아빠의 발그레해진 볼을 보며 돈의 힘을 느꼈다.
역시 돈을 벌어야 사람이 활기가 생기는구나.
이제야 티브이에 나오는 수많은 중장년층 재연 배우들이 다시 보였다.
시니어 모델의 수요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나날이 늘어나는 아빠의 촬영 스케줄을 보고 알게 되었다.
티브이 광고, 재연 프로그램, 홈쇼핑, 유튜브까지 시니어모델의 세계는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었다.
아빠는 50대에서 70대까지 모든 역할을 소화했는데 보통 사람들은 60대와 70대를 잘 구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아빠가 프로필을 나이대 별로 찍어두신 거였다. 까만 머리로 한 컷, 희끗희끗한 머리로 한 컷, 흰머리로 한 컷. 한번 공익광고를 찍고 나자 이것이 다시 경력이 되어 다른 촬영을 불러왔다. 나이가 들수록 수요가 더 많아졌다. 아빠는 지금 60대 후반인데 60대, 70대, 80대까지 소화하신다.
어느 날은 아빠가 물어보셨다.
"좀비가 뭐냐? 서양 귀신이지?"
이걸 왜 물어보시나 싶어 대충 대답을 했다.
"아니, 아빠 귀신은 아니고, 죽은 건데 죽은 채로 막 다니는 거야.
으어어어~ 하면서"
"죽었는데 움직인다고? 홍콩할배처럼? "
"아니 그게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에서 시골 동네 이장인데 나중에 좀비가 된 역할을 찍으셨댔다.
영화의 단역까지 하시게 되신거였다.
촬영장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애를 보다가 사진을 같이 열어본 나는 기절할 뻔했다. 아빠가 얼굴에 피투성이 분장을 하고 웃고 계셨다.
"잘 찍고 오셨어요?"
아빠가 시무룩하게 말씀하셨다.
"너무 사람 같단다..."
감독이 아빠 보고 좀 더 '좀비처럼 해보라'라고 말하면서 걷는 게 너무 사람 같다고 하셨단다. 다행히 같이 찍은 사람이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역할을 해본 유경험자라 그분에게 팁을 얻어 간신히 찍고 오셨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 드려도 좀비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빠는 직접 좀비가 되어보고서야 좀비가 뭔지 이해하게 되셨다.
어느 날은 또 나에게 물어보셨다.
너, 가스 라이팅이라는 말 들어봤니?
이건 또 무슨 역할일까 궁금해서 대답했다.
들어봤죠~ 그거 막 자기가 잘못해놓고
남보고 네가 이상한 거다 네 잘못이다 막 몰아가는 거잖아요~
나의 대답에 아빠가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그거를 네가 어떻게 아니?
아빠는 오늘 그거 하루 종일 찾아봤는데..
느그 엄마가 나한테 자주 하는 거더라!
다음 촬영에서는 재연 프로그램에서 아내와 아들에게 가스 라이팅 당하는 아빠 역할이라셨다.
아빠는 그렇게 세상의 새로운 부분을 배워가고 계셨다.
평소에 우리의 대화였다면 나오지 않았을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은
모두 아빠가 시니어 모델과 배우 일을 하고나서부터였다.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던 아빠가 시니어모델일을 하시면서 굉장히 유해지셨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거침이 없고 외면을 가꾸시다 보니 저절로 건강한 생활을 하신다.
보통 남자 어른들이 퇴직을 하면 평소에 차려입던 데로 안 입고 편하게 입다 보니 자세도 흐트러지고 그러다 보면 생활 패턴도 엉킨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시니어 모델을 하시면서 자세도 더 좋아지셨다. 촬영장에서 메이크업을 받았는데 눈썹을 멋지게 그렸길래 맘에 들어 메이크업 해주는 분에게 이 '눈썹 그리는 것'을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셨단다. 그러자 그 분이 '올리브영'을 알려주셨다고.
아빠는 나에게 전화해서 '올리브영'을 알려주셨다.
아빠 나도 알아요...
어느 날은 또 나를 불러 물으셨다.
너, 이정재 아니?
내가 오늘 이정재랑 드라마 찍었다.
아니, 싸인이나 받아오고 말씀하시지 싶어 물어보니, 이건 보통 역이 아니었다.
직접 이정재랑 합을 맞춰 본 후 이정재를 호통치며 종이뭉치를 집어던지는 역할이라고...
이걸 연설문이라고 써왔어!!
아빠가 호통 끝에 종이를 쫙쫙 찢어 이정재 얼굴에 맞추는 장면으로 클로즈.
우와, 아빠 성공했네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축하했다.
아빠가
적성에 맞지 않는 생활을 25년이나 버틴 아빠가
드디어 즐겁게 일을 하시면서 생기가 도는 삶을 사신다는 것에 기뻤다.
아빠는 촬영이 잡히면 그 전날 짐을 다 싸 두고 넉넉하게 출발하신다.
오전 10시 촬영이면 9시 전에 도착하도록 준비를 하시는 거였다.
새벽 촬영이 있으면 그 전날 근처 모텔에서 하루 주무시고 시간에 맞춰 가시기도 하셨다.
오전에 시작한 촬영이 그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 힘드시냐고 여쭤봤다.
좋아서 하는 일은 안 힘들다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를 불러주는 게 어디냐.
이 말을 듣고 나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언제쯤 명퇴 할지 가늠하는 나의 모습과 상반되는 아빠의 모습에.
3. 젊은이는 퇴사를 꿈꾸는데 노인은 일자리를 찾는다.
백세 인생, 아니 운나쁘면 120세까지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나이 5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할까.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하염없이 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여가 시간이란 일을 하다가 만나는 단비 같은 시간이지, 매일 비가 오면 그건 장마다. 우중충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인정을 받는 가장 속성의 길이다. 지금의 아빠처럼 월급이 아닌 일당을 받는 일은 고용의 안정이 없어 불안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기부여가 명확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기에 아빠가 버는 돈은 모두 부모님이 쓰신다. 받은 일당으로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식으로서도 감사하다. 아빠가 시니어 모델과 배우 일을 하시면서 바빠지자 삼시세끼 집밥을 차리던 엄마도 집밥으로부터 해방되셨다.
윈윈이다.
지금 아빠는 68세시다.
나보다 더 열심히 새로운 기회를 찾고
몸의 힘듦보다 기회가 왔음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아빠의 모습이 내게는 하나의 삶의 표본이다.
아빠는 내게 아이들 키우고 복직을 하면 꼭 정년까지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만 62세에 정년퇴직하거든 시니어 모델을 꼭 하라고.
팁을 전수해주겠다고.
내가 시니어 모델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년퇴직 후에 집에서 쉬지만은 않을 듯하다.
보고 배운 게 크다.
나는 파이어족을 꿈꾸지 않는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일을 하면서 나의 생산력을 확인받고 사람들을 만나고 시대의 변화를 배우고 싶다.
꼬장꼬장한 노인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느라 인생이 재밌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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