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강철저 May 23. 2022

사랑은 그 사람이 살도록 해주는 것

내 인생의 유일한 선택인 남편에 대하여.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만약에 나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선택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한 것인 듯하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시험을 통해 직업을 가진 것처럼 나의 능력에 맞춰 무엇인가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것들과는 달리, 이 남자는 첫 만남에 별다른 노력 없이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인생에서 최초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선택받고 선택한 사람은 남편이다. 그리고 이 사람과 결혼했기에 나는 아이를 셋이나 낳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결혼을 해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나의 속마음과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아도 괜찮을 사람을 가졌다는 것을 꼽을 듯하다. 남편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 할 부끄러운 모습이나 생각들도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애써 나의 치부를 감추거나 잘 보이기 위해 내가 아닌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해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와 결혼하고 나서 나는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의 기준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생은 늘 과제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허들을 넘으면 또 하나의 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미션을 꽤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늘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부터 나는 어깨와 목을 끊임없이 뭉치게 하던 긴장을 서서히 풀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은 나의 생각을 궁금해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고 나의 시도들을 응원해주었다. 언젠가 내가 무언가를 이뤄낼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주었다.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나는 인생이라는 문제집홀로 푸는 게 아니라 함께 말동무를 하며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갈 수 있는 여행 메이트가 생긴 것 같았다. 일상이 과제의 연속이 아니라 여행의 순간들 같다는 생각이 들고부터는 하루하루 눈뜨는 것이 즐겁다. 몸은 힘들지라도 언젠가 이 순간을 너무나 간절하게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 사람과 만나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며 그것도 5살, 3살, 3살의 고만고만한 아이를 키우면서도 우리 부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1. 어떻게든 둘만의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서로를 사랑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단둘이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둘이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육아 퇴근을 하기 전까지 아이들을 보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 이른 육퇴를 해야만 단둘의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일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아도 그때그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렇게 간신히 만들어낸 둘만의 시간을 누리고 함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관계를 잇는 끈을 돈독하게 해 준다. 서로의 관심사에 늘 관심을 둔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만큼 서로를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본능이라면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의식이다.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 자식의 독립 이후에도 남은 시간을 평생 함께 할 사람은 배우자이기 때문에.

        

2. 힘들 때 '서로'를 탓하지 않고 '상황'을 탓한다. 대부분의 싸움은 서로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냥 피곤해서인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처럼 어린 영유아를 키우는 부부라면 누구나 매일 녹초가 된다. 몸이 힘들면 감정이 예민해지고 상대를 탓하기 쉽다. 그러나 상대를 탓하기 시작하면 육아는 지옥이 된다.  육아가 제로섬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힘듦을 남편 탓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육아의 힘듦에 자꾸만 서로에게 화살을 돌릴 때도 있었지만 쌍둥이를 낳고는 서로의 탓을 하지 않고 이 전쟁 같은 상황에서 나와 똑같은 고난을 겪는 전우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육아의 힘듦을 토로하며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남편이 대답했다. "분노조절장애 아니야. 그냥 우린 애가 셋이라 힘들어서 그런거야. " 내가 남편에게 화를 낼때도 남편은 종종 말한다. "침대에 가서 좀 누워있어" 그러니까 육아가 힘들다고 해서 모성애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구조요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3.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서로를 더 사랑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민감했을 주제나 피해야 할 주제도 남편에게는 스스럼없이 생각을 물어볼 때가 많은데 남편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그리고 혼자만의 영역을 서로 존중해준다. 남편은 내가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존중해주고 나도 남편의 일을 궁금해하고 개인 취미를 인정해 준다.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면 논어에 나온다는 이 말이 떠오른다. '애지욕기생'.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게끔 하는 것.


이란 뜻인데, 이것이 내가 남편과의 사랑으로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문장으로 나타낸 것 같다. 남편을 만나고부터는 나는 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이 사람과 나를 반반 섞어 만든 아이 셋을 낳고부터는 나는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찾게 되었다. 아이를 처음 낳고는 나를 잃을까 봐 불안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는 육아를 통해 성장하는 느낌이다. 아마 이 사람과 살지 않았더라면, 혹은 이 사람과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어른으로서의 삶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생을 꾸려가면서 느끼는 만족감에 대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만약에 나중에 딱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면 나는 <월든>과 같은 책을 쓰고 싶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글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인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삶을 기록하고 싶다. 그것이 남에게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나로서 충족하는 삶을 꾸려가고 그 방식에 대해 쓰고 싶다. 그런데 그 삶에서 나는 소로와는 달리 혼자 사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키우는 삶의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은 남편과 나의 몸과 정신을 오로지 희생하기만 하는 과정이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주며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부부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며 키워주는 과정도 육아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아가서는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나는 어른으로서 먼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그러한 삶을 통해 나의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주고 싶다. 어른으로서의 삶이 고되고 힘겨워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험적이고 즐거움이 많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유일한 사람인 남편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부부간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길 수 없다. 보통의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은 대부분 자식에 대한 애정을 적절히 거둬야하는 시기를 지나친 어른의 잘못된 간섭으로 인해 일어난다. 부모의 내리사랑은 어느 순간이 되면 멈추고 자식의 독립을 믿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그때에서야 자식은 자기만의 가정을 독립하게 키울 수 있다. 자식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고 다시 배우자에게 그 관심을 쏟아 인생을 이어나가야 된다. 내가 내 인생을 통해 유일하게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니까. 

부부 사이를 1순위로 두고 열심히 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부간의 사랑은 굳이 지속될 동력이 없다. 부부는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니니까. 자식과의 관계처럼 피로 이어진 사이도 아니고 자식이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육아 동지가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왔을 때에도 이어가려면 둘만의 탄탄한 공감대의 끈이 필요하다. 

 

우리가 낳고 기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밌지만 아이들 이야기 말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재밌다.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우리로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20대와 30대를 함께 건너가며 이어지는 삶의 나날들에서 느끼는 충만함이 40대에 가서는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고 우리 둘만이 사는 집을 상상해본다. 그때의 우리를 떠올리며 지금의 관계를 소중히 다룬다.


내가 남편에게서 가장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밤에 쌍둥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남편이 설거지와 집 정리를 모두 해놓은 것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는 쌍둥이가 태어나고는 매일 이 일을 해주는데 나는 이 사실에 매일 감동을 한다. 왜냐하면 나는 주방일이 가장 힘드니까. 싱크대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고 우울하고 졸지에 허무주의가 된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단다. 개수대에 그릇이 있는데 잠이 오냐고. 


나는 잘만 잔다. 내 눈엔 무의식적으로 눈가리개가 있는 건지 주방은 모자이크 처리가 된 것처럼 뿌옇다. 쌍둥이를 낳기 전에는 그도 설거지를 괴로워하며 했었다. 서로 미루기도 하고 늦은 밤에 집에 와서 들어오며 집이 지뢰밭이니 뭐니 해서 나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쌍둥이를 낳고는 남편은 자기가 하지 않은 집안일이라면 입을 대지 않는다. 내가 힘들어하는 일에 대해 왜 힘들어하냐고 다그치느니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본인이 한다. 나는 그의 빠른 요리에 매번 놀라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는 마늘빵을 만들어 놓았다. 아침에 정신없었을 테네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남편이 말했다.  


"쉬워. 금방 해"


나는 요리를 못하기에 남편이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것에 늘 놀랍다. 

남편이 덧붙였다.  


"애셋 키우면서 <코스모스> 읽는 거보단 쉬워"


나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내가 쉽게 하는 일을 남편은 어렵게 보고 남편이 쉽게 하는 일을 내가 대단하게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자기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서야 깨닫게 된 모습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자기 자신으로 살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랑의 모습이자 이어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이전 03화 엄마는 좋겠다. 딸만 셋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