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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Nov 22. 2022

틈날 때마다 우리는 둘이서 오만가지 이야기를 한다.  

남편과 나의 역할분담에 대해서.

1. 우리 집의 역할분담은 이러하다.


다른 집들은 부부가 어떻게 역할분담을 하고 사나 궁금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의 역할분담 어떤지 한번 써보았다. 나와 남편세 아이의 주 양육자다. 애 셋을 데리고 다니면 가끔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누가 키워줬어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제가 키우죠."라고 말을 한다. 물론 때때로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고모,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손이 모두 필요했지만, 그럼에도 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역할은 나와 남편 둘이서 온전히 한다. 남편보다 더 나은 육아 파트너는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애 셋을 '동시에 혼자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남편뿐이다. 그래야 하는 게 당연히 맞는 거고.


나는 첫째를 낳고 휴직을 시작했고 첫째가 5살인 현재까지도 휴직 중이다. 남편은 육아를 위해 주 4일 근무하는 직장에 다닌다. 남편은 4일 중 이틀은 9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집에 오고, 남은 이틀은 저녁 9시에 퇴근한다. 3주에 한번 토요근무를 한다. 아침 8시 20분이 되면 우리 가족은 모두 밖으로 나온다. 집 앞의 유치원에 5살 첫째를 들여보내고 3살 둥이는 킥보드를 타고 어린이집까지 달린다. 나와 남편이 헉헉대며 둥이를 따라가고 오르막에는 킥보드에 두발을 올리게 해서 끌고 올라간다. 8시 40분 즈음이면 셋다 등원이 완료다.


다시 지하철역까지 남편과 둘이 걸어가며 오늘 할 일을 서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둘이서만 대화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기에 이때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오늘 할 일과 앞으로의 계획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은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의견을 가끔 얘기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계획이나 앞으로의 고민 같은 걸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남편은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고민이 없는 사람이다. 대신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내 고민을 신기해한다. 때때로 내 고민의 핵심을 짚어주기도 하는데 그게 나한테는 도움이 많이 된다. 10분 정도 걸으면 지하철역이라 배웅해주고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 중 가장 마음이 가벼운 순간.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 9시다. 어질러진 거실을 대충 치우고 서재방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켠다. 나는 공식적으로는 '휴직 중'이지만 나만의 루틴은 있다. 영어, 독서, 글쓰기 소모임은 매일 틈틈이 한다. 책 쓰기는 열흘에 한 챕터씩 쓰는 것을 목표로 쓴다. 한 챕터를 완성하고 쉬는 때에는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 하루 중 9시에서 2시까지가 가장 집중력이 좋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놓치거나 어영부영 보내면 하루를 망치기 쉽다. 어떻게든 이 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오후 2시쯤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허기가 진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남편이랑 통화한 후에는 저녁에 아이들 먹일 것들을 준비한다. 밥을 새로 안치고 반찬을 확인한다. 있는 반찬을 보고 부족한 게 있으면 한 두 개는 간단하게 만든다. 4시가 되면 옷을 갈아입고 물과 간식을 챙겨 하원을 간다. 어린이집으로 가서 둥이를 데리고 킥보드를 하나씩 타게 해서 첫째가 있는 유치원으로 몰고 간다. 첫째까지 하원하면 셋을 몰고 집으로 들어온다. 우르르 들어온 아이들의 손을 씻고 간단히 과일을 먹고 밖에서 입은 옷을 벗겨 내복 바람으로 두면 아이들의 얼굴에 긴장이 풀린다. 집에 온 게 즐거운 아이들을 안아주면 아이들의 따스한 온기에 나의 긴장도 녹는다. 내복 바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도 쌍둥이들은 내 다리에 서로 먼저 앉겠다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첫째는 유치원 가방을 열고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꺼내며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녁시간. 거실에 상을 펴고 식판 세 개에 밥과 국과 반찬을 담아 하나씩 앞에 주고 둘러앉는다. 유치원 이야기를 하며 한 입 먹고,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며 두 입 먹고, 돌아다니지 말고 먹으라고 잔소리도 했다가, 잘 먹는다고 칭찬도 해주고, 정신없이 잘라주고 먹여주다 보면 식판이 어느새 비었다. 잘 먹고 배가 통통해진 아이들을 보면 오늘의 할 일을 다 했구나 싶다.

남편이 7시 즈음 퇴근하는 날은 그래도 좀 낫다. 남편이 와서 아이들 목욕도 시켜주고 내 저녁도 챙겨주니까.

그러나 9시가 넘어오는 날은 나도 녹초고 남편도 녹초라 서로의 안부만 확인한다. 저녁 9시가 넘으면 나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남편은 폭탄 맞은 거실을 치우고 주방에 쌓인 그릇들을 씻는다. 둥이를 낳고 나서 남편은 언제 퇴근을 하든 설거지를 자기 몫으로 두라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는 건 힘들지만 재우고 나왔을 때 깨끗해진 거실과 주방을 보면 고마움이 물씬 올라온다. 우리는 이렇게 2인 3각으로 육아와 가사와 일을 한다.



2.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요즘은 둘이 있을 때 돈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사이에 돈 이야기가 많아지면 남편은 부쩍 말수가 준다. 우리 집 대출이 얼마고 이자가 얼마고 이런 이야기를 할수록 내 앞의 남편이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괜히 마음이 안쓰러워 말을 멈춘다. 결국에 방법을 찾는 건 나다. 12월이 되면 남편의 마통 금리가 두배로 뛴다. 애초에 3퍼센트였던 대출금리가 7퍼센트에 가까워지는 거다. 첫째 임신 중에 집을 사느라 생긴 대출금이 남편 마통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리 잡고 있다. 그 대출금을 줄여가는 것이 우리 집의 저축인데 줄어드는 속도가 생각만큼 안 난다. 그 와중에 내년에 살고 있는 집을 연장하면 시세에 맞춰야 해서 월세도 든다. 돈이 들어갈 곳은 점점 늘어나는 거다. 이 와중에 남편은 최선을 다해 가정경제를 이끌고 있기에 더 벌어오라고 말하기도 무안하다. 여기서 더 벌어오라는 것은 육아에서 손을 더 떼고 체력을 더 갈아서 벌어오라는 말과 같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아빠와의 시간이 더 필요한 시기이기에 결국에는 방법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다. 다행히 내가 공무원 신분인지라 대출금리는 남편보다 나았다. 특례 대출, 연금 대출 등을 알아보니 남편 마통 금액의 절반 정도는 내 쪽으로 옮겨 금리를 낮춰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절반 정도를 내 마통으로 옮기면 남편의 마통이 줄어들고 줄어든 금액은 아이들 취학 전까진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답이 조금씩 보인다. 졸라매야 할 때가 왔다. 순둥이 남편의 어깨를 펼 수 있게.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자 남편의 얼굴이 조금은 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앞으로 어떻게 돈을 갚고 쓸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워다.


그런데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딱히 돈 이야기를 피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좀 더 나아가면 우리는 어떠한 주제에 관해서도 대화하기를 피하지 않는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게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인 것 같다. 연애 4년과 결혼 8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 속에서도 이 사람과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가 없는 관계가 아니라, 문제를 피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서로에게 있다. 싸우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싸우더라도 응어리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게 어떤 주제로도 피하지 않고 대화가 가능했기에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2인 3각으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돈 이야기는 결혼 전부터 시작되었다. 연애를 총 3년 반 정도 하면서 나는 직장인, 남편은 학생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돈을 버는 건 난데 자꾸만 돈을 내려는 그가 못내 걱정이 되어 나는 데이트 통장을 만들자고 했다. 결혼 날짜를 잡고는 월급통장을 합치자고 했다. 처음에 남편은 월급통장을 합치기보단 각자 월급통장을 쓰고 생활비를 각출하는 게 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렇게 쓰면 돈이 안 모일 거고 진정한 경제 공동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몇 일뒤 자기도 찾아보니 내 말이 맞다며 월급통장을 합치자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이 사람은 유연하다 느낀 것이. 남편은 대화를 통해 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자기 말이 틀린 경우에는 빠르게 인정하고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쓸데없는 똥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월급통장을 합치고 나서야 우리는 진짜 하나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월급을 서로에게 통째로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신뢰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돈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리고 돈 이야기는 결국에는 선택의 문제, 가치의 문제로 이어졌다.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 그 근본부터 내려가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한 거다. 


집을 사기 전에도 비슷했다. 우리는 첫째를 임신하고 나서는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애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돈을 빌리고 갚아야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만삭인 배로 계약서를 쓴날 밤에는 잠이 안 왔다. 집을 사면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고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을 합치며 경제 공동체가 되었다면 집을 사고 함께 대출을 받으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더욱 단단해졌다.



3. 어떠한 주제도 피하지 않는다.


비단 돈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남들과는 대화하기 힘든 주제라도 남편과는 할 수 있다. 이 사람과는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도 된다는 안전함이 있다. 때로는 남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뼈 때리는 조언을 해줄 때도 있다. 그리고 '남'과는 대화가 어렵다 싶은 주제는 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는 이렇게 피하는 주제가 있으면, 특히 그것이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문제라면 이것을 피하는 게 더 문제를 커지게 만들 수 있다. 돈과 섹스는 부부가 피해서는 안될 대화의 주제다. 그러나 지성이 있는 성인이라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꺼내지 않을 주제다. 다만 부부 사이에서조차도 이 두 개의 주제를 피하는 대화를 한다면 관계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저녁 메뉴를 뭘 먹을지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돈이나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부부 사이에선 편하게 할 수 있어야 된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말이다. 돈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돈 이야기를 꺼내면 괴롭기만 하다. 부부관계가 서먹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꽁꽁 얼고 나서는 섹스에 관한 얘기는 입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돈이 잘 굴러갈 때, 부부사이가 좋을 때에 이런 주제로 서로 얘기를 나눠 서로의 생각을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앞으로 생길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길 기미가 있을 때에 대화로 풀어야 한다.

손자병법에도 나와있다. 이겨놓고 싸워야 한다고. 부부 사이의 문제는 문제가 될만한 기미가 보일 때 대화를 해서 해결해야 한다.  언쟁을 할때는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목표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것이라면 언쟁도 의미가 있다. 서로 피하지 않아야 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진짜 대화다.


나는 고민도 많고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남편은 그 어떤 나의 헛된 발길질에도 일단은 들어본다. 그리고 남편은 나의 많은 번뇌와 고민들 속에서도 핵심을 짚어내는 사람이다. 반대로 남편에게 어려워 보이는 일들은 내가 한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격려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이건 이렇게 하자고 약속했다기보다는 이 사람과의 시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각자의 역할이 되었다.


백 쌍의 부부가 있다면 백가지 사랑의 방식이 있을 거다.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의 방식과 역할 분담은 남들 눈에는 모호해 보일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명확하다. 나는 연애 때보다 결혼한 지금이 갓 결혼할 때보다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남편이 더 믿음직하고 사랑스럽다.


쌍둥이 어린이집 상담시간에 담임선생님 우리 둥이들이 어린이집에서 가끔 서로를 '여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둥이가 장난을 치며 서로를 '여보~ '라고 부르며 어깨를 두드리고 "여보 사랑해~"라고 한다고. 그걸 보고 선생님들이 부모님이 사이가 너무 좋으신 것 같다고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이 생중계된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보는 우리의 모습은 다정하구나 싶어서. 엄마 아빠는 틈만 나면 돈 이야기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말해주고 싶다. 너희가 없는 시간에 엄마 아빠는 부부로서의 시간을 틈틈이 갖기 때문에 너희 앞에서 서로 다정할 수 있다는 비밀을.


그동안 엄마 아빠가 먼저 실험해보고 있을게. 좋은 부부관계와 가정을 만드는 실험을.  오만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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