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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11. 2023

엄마는 좋겠다. 딸만 셋이라.

우리는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

여섯살이었나.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세 살 터울 여동생이 있었던 나는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라는 동화책을 읽고 나서 엄마에게 동생을 하나 더 낳아달라고 졸랐다. 우리도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어린 나이에도 나는 엄마가 내 말을 못 은척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왜 대답을 안 하?

의아했다.


그리고 몇년이 더 흐른 후 엄마가 진짜 늦둥이 동생을 가졌고 그 동생 또한 딸이었다.


망했다.


셋째도 딸임을 알게 되고 엄마가 처음 뱉은 말이랬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가 되었다.


80년대에 딸 셋을 낳았다는 것은 엄마시대에는 치명적인 콤플렉스였다. 나중에 얘기하기론 엄마는 내가 해순이달순이별순이 얘기를 할 때, 말이 씨가 되서 진짜 딸 셋을 낳을까 봐 겁이 나서 대답을 못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우리 세 자매는 엄마가 콤플렉스가 있건 말건 우리끼리 마냥 좋았다. 원래부터 아기를 좋아하고 대장기질이 있던 나는 동생들이 집에 둘이나 있기에 심심하지 않았다. 특히 나이차이가 많은 동생이 있으니 부모님의 육아를 옆에서 보며 거들 수 있었다. 10대 시절의 초반을 동생이 태어나서 기고 걷고 말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딱히 사춘기랄게 없이 10대를 보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만큼 동생들 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학교가 힘들고 친구들 관계가 어려울 때에도 집에서 나를 따르는 동생들이랑 있으면 곤 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우리 엄마는 딸 셋 중 둘을 시집보내고 막내딸과 친정아빠와 셋이서 단촐하게 살고 계신다. 아파트 앞동에는 첫째 딸네 부부가 아이 셋을 데리고 사는데 사위가 그렇게 사근사근할 수가 없다. 장모님 장모님 우리 장모님~ 둘째 딸이 시집을 갔는데 둘째 사위 또한 그렇게 사근사근 입안의 혀처럼 군다. 집들이에 초대받아 갔더니 둘째 사위가 요리를 해서 대접한다. 장모님 제가 만든 찜닭 좀 드셔보세요~ 첫째 사위가 요리를 곧잘 뚝딱뚝딱해서 신기했는데, 둘째 사위까지 요리를 잘하다니. 엄마가 놀라는 눈치길래 내가 말했다.


엄마, 시대가 바뀌었어.
이제는 남자들도 요리를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거든.


바야흐로 시대가 변해서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는 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왔다. 엄마는 어리둥절해 보이지만 내심 기분이 좋아 보인다.


희한하다. 분명 아들을 못 낳아 서러웠던 시대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 동네에서 우리 엄마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나는 30대의 삶을 살지만 엄마의 60대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 사람의 일생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반전이 많아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에는 분명 엄마가 사는 방식이 답답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처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다.


점점 나아지는 삶. 젊었을 때 힘들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삶. 운과 노력이 모두가 더해져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러한 반전이 있기에 재미가 있는 삶.


우리 엄마, 아들은 못 낳고 딸만 셋을 낳아서 서러웠던 우리 엄마는 살다 보니 그 딸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능력 있으면서도 가정적인 사위들을 야무지게 데리고 왔다. 갑자기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변동된 지위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다.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한때 교사는 최고의 인기직업이었다. 내가 대학을 갈 때에는 문과에서는 전교 1등이 교대를 가고, 이과에서는 의대나 약대만큼 사범대가 인기였다. 코피터지게 공부해서 사범대를 가고 간신히 임용시험에 붙은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내 직업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교사도 공무원도 모두 인기가 시들해졌다. 마치 80년대의 아들부심처럼.


생각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뀐다. 어제의 부러움의 대상은 오늘은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고, 오늘의 연민의 대상이 내일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그 당시에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성별처럼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학처럼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유행이라고 해서, 그 시대에 최고라고 여긴다고 해서 영원히 유행이고 영원히 최고일순 없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데, 내가 옛날에 얼마나 잘 나갔는데.라는 말은 점점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시대는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도 빠르게 변화한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남들이 이렇다 저렇다고 하는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최선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좋아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선택의 결과를 평생의 삶을 통해 책임지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80년대에 딸 셋을 낳았다고 주눅 드는 거나, 2000년 초반에 교사가 되었다고 좋아하는 거나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쟁취했다는 기쁨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못 가진 슬픔은 그 당시에는 커 보여도 막상 시대가 흐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거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살면서 하는 중요한 선택들, 직업을 정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개인의 삶에 중요한 선택들을 결정할 때에 남들이 하는 말, 시대가 하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남들이 하는 말들은 사실 그들의 시대에 맞다고 생각한 방식이지 미래에도 맞을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인기라고 해서 그것이 미래에도 인기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점점 직업은 사라지고 시대가 변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제시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나보다 그들이 시대의 요구를 더 빠르게 파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하는 것들은 내 시대에 좋았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 시대에 좋은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의 선택을 해야 할까?


나에게 줏대가 없으면 없을수록 남의 말에, 시대가 말하는 말에 휘둘리기 쉽다.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하기에는무분별한 정보가 너무나 많다.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일이 성격에 잘 맞는가?
나는 어떤 일은 매일 해도 질리지 않을까?


원래였다면 사춘기에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야 할 질문이지만 요즘 나는 본격적으로 이 질문에 탐색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확인받아야만 안심하는 나이는 지났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니까.

 

요즘 가장 부러운 사람은 우리 엄마, 박여사. 어리둥절한 최후의 승자.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가장 기대되는 사람은 나 자신.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삶에 기대를 갖고 산다는 것만큼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는 없다.





아침에 글을 쓰고 얼마 안되어 브런치 메인에 등장했어요!


감사합니다 :)



하원가려고 보니 조회수가 만????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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