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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21. 2022

인생은 계속될 뿐 '노후'란 없다.

우리 아빠는 시니어모델 2

1.  인생은 계속된다.


아빠가 시니어 모델일을 시작하고 배우로 드라마나 단역에 자주 나오고

유튜브 광고나 tv에 재연배우로 나오시고부터는 나는 아빠에 대한 걱정을 거둬들였다.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퇴직금 사기라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하게 바라보던 아빠가

이제는 펌프로 물을 매일 길어오는 어른임을 알았으니까.


지금 보면 내가 왜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내가 나이에 대해 옳지 않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나는 60살부터의 삶은 그저 '노인으로서의 삶'이라고만 생각했다.

젊을 때 열심히 일궈놓은 것으로 먹고사는 나이. 자식들의 독립에 뿌듯하고 손주들의 재롱에 기뻐하는 나이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60살은 그런 나이가 아니었다.

'노후' 란 '늙어진 뒤의 삶'을 뜻하는데 60살은 백세 인생에서 아직 낮이다.

활기차게 생산을 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노을이 지려면 멀었다.


60은 노후가 아니다.

인생은 계속될 뿐

'노후'는 몇살부터라고 정해져있는 것은 없다.


아빠가 시니어 모델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자기소개를 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아빠는 스스로를 '20대의 마음을 지닌 60대'로 표현했다.


어느 20대도 아빠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빠는 운전을 하지 않고 웬만한 거리이면 걷거나 대중교통으로만 다니신다. 운동도 되고 돈도 아끼니 얼마나 좋냐고 하시면서. 촬영을 하러 전국구를 다니시면서도 고속버스와 srt를 이용하시면서도 일하느라 세상 구경도 할 수 있다고 좋아하셨다.


몸이 힘듦에 개의치 않고 일할수 있음에 감사해하시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계신다.

작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쓰지 않는 전자제품은 모두 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돈을 그저 아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수입이 될 만한 일을 찾으신다는 점이다.


나는 아빠가

내가 이런 이런 일까지 해야 돼?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을 하신 적을 본 적이 없다.  


무슨 일이든 '나를 불러주는 게 어디냐'라고 말씀하셨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 그다음 일로 연결을 지으셨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해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끔 '취업사기를 당했다'라고 자조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인지라 더더욱 아빠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놀라웠다. 나는 이 직업을 얻기 전에는 시켜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할 자세가 되어있었다.




2.  재능이 없어도 성실함과 꾸준함이 있으면 결국에는 꽃을 피워낸다.


나는 아빠가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을 태어날 때부터 지켜봤다. 엄마 말로는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고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단다. 엄마는 나를 임신 중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다 산 줄 알라'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자 아빠는 이직을 포기했다. 내가 빽빽 울며 당장 돈을 벌어오라고 했으니까.  


그러다가 동생까지 태어나고 나서 아빠는 이직을 포기하는 대신 서울지사로 회사를 옮겼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야 하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라고 노래를 부르던 아빠였기에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혼자 내린 거였다. 재수 삼수를 해서 간신히 지방 대학을 간 아빠는 할머니의 일곱 아들 중에 유일한 대졸자이자 유일하게 시골을 벗어나 서울로 간 아들이다. 머리가 좋지도 않고 집안이 빵빵한 것도 아닌 어느 시골 출신의 남자가 서울에 와서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꿈만 큰 더벅머리 소년이었던 아빠는 남들이 봤을 때 무모한 일들을 그저 자기 속도로 묵묵히 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을 주택으로 개조한 어두침침하고 좁은 집에서 우리 가족은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집 앞에는 하수도 처리장이 있어 여름에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못하는 집이었다. 아빠가 서울 서울 하던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롯데월드가 집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창문을 통해 불꽃놀이가 보일 정도일 뿐이었다. 처음 이사 온 날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우리 집이 망한 줄 알았다.


사투리를 따라 하는 친구들 때문에 활발한 성격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말수가 줄었고

오자마자 본 수학 시험에서 백점을 맞자 친구들은 내가 커닝을 했다고 몰아갔다.

두 번째 세 번째 시험마저 다 맞고 나서야 조용해지긴 했다.


내 사투리를 따라 하고 내가 커닝을 한 거라고 몰아가던 친구들도 1년이 지나자 내 편이 되어주었다.

공부를 곧잘 하고 시험을 잘 봐서 선생님들도 어느 순간 내게 기대에 찬 얼굴로 대해주셨다.

엉성했던 나의 서울말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지고 있었음에도 나는 서울 생활이 힘들고 버거웠다.


아마 나만 힘든 건 아니었을 거다. 나도 동생도 엄마 아빠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버겁게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지도 모르고 서울에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든 그저 자기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성인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가 서울에 데려와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더 넓은 세상에 왔기에 나는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의 나이가 되었을 때 물어봤다.



무슨 에너지로 사셨어요? 외벌이 월급쟁이가 애를 셋이나 낳고?


희망으로 살았지.



나와 내 동생들이 아빠의 삶에 희망이자 빛이었다.

우리는 아빠의 기대를 알았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에 갔고 지금은 어엿하게 각자 자기 밥벌이를 한다.


사회생활을 잘하지도 그렇다고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닌 아빠는 회사에서도 두각을 내진 못하셨다.

그러니까 아빠 인생에서 처음 50여 년은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참고 또 참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포기하고 나자빠질 때도 아빠는 희망으로 버티셨다.


그리고 퇴직 후엔 날아오르고 계신다. 늦게 피는 꽃이었다.


가끔은 그때의 힘든 회사 생활 덕분에, 하기 싫어도 해야 했던 영업들 덕분에, 이직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공부했던 것들 덕분에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하신다.


인생에서 의미 없는 경험이란 없다.

재능이 없어도 성실함과 꾸준함이 있으면 결국에는 자기만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3.  첫사랑은 첫사랑일뿐이듯, 첫 직업은 첫 직업일 뿐이다.


이제는 걱정이 아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빠를 면밀히 관찰한다.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경력 단절 중인 나는 아빠의 삶을 통해 은퇴 후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있다.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나의 직업만을 믿고 살기엔 철이 너무 얇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철밥통이 아니다. 모두가 한 입만 달라고 하는 밥통일 뿐이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내 밥통은 공용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직업에 대한 객관화는 내가 휴직을 하고 살짝 거리를 두고서야 보였다.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하지만 이 직업 하나만 믿고 평생을 살기에는 내가 살아갈 인생이 생각보다 길었다.


평균수명이 120세가 되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지금 나는 아빠를 보며 나의 제2의 인생을 꿈꾼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퇴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직업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첫 번째 직업에 나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지 않으려고 한다.

첫사랑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듯,

나의 첫 직업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 나중에 실망이 크리라는 것을 안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여자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하면 본분을 잊은 것처럼 아니꼽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끊임없이 제2의 직업과 인생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시도를 하는 시기로 삼고 있다. 글쓰기에 몰입을 하면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인생을 벼락치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 하루하루를 해치우듯 살기보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멀리 내다보며 지금의 발걸음을 신중하고 소중하게 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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