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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Oct 23. 2020

마음이 뜨겁다

내가 자주 지나는 지하철 역사, 점포가 즐비한 계단에서 늘 마주하는 할머니가 있다. 작은 체구답게 얼굴도 손도, 그리고 늘 맨발인 채의 발 역시 작다. 몇 시에 나오는지 또 몇 시에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꽤 일찍 나와서 꽤 늦게 들어갈 거라 생각한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저녁이든 항상 할머니를 볼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할머니를 의식하게 된 시점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족히 3년은 넘었을 것이다. 역사가 생긴 지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쩌다 지나는 길에 마주했지만 얼마 전, 작업실을 이쪽 근처로 옮긴 뒤로 할머니를 거의 매일 본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 번 이상을 볼 때도 있다. 이제는 지하로 내려오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할머니가 떠오른다. ‘오늘도 나와 계시겠지?’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의 형색은 초라하지도 않고 여느 할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가운 계단에 앉아 껌을 팔지만, 의외로 그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아흔 살이 넘었을 텐데, 아직까지도 소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흡사 엄지공주와 같다고 할까? 짧은 머리가 하얗게 새기는 했어도 그 숱이 부족하지 않고, 하얀 피부와 백발의 머리가 할머니의 모습을 더 고상하게 보이게 한다. 분명 할머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것이다. 껌을 팔긴 해도 그 모습이 유독 평화로워 보여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굳이 껌을 팔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껌은 그저 하나의 소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자주는 아니고 간혹 지갑에 천 원짜리가 있을 때, 껌을 하나씩 사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껌을 받지 않는다. 껌을 좋아하지 않아 씹을 일도 없고 짐만 돼서이다. 그래도 껌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할머니에 대한 친근감 때문일 것이다. 뭔가를 오물조물 씹고 있는 듯, 할머니의 작은 입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입 안에 껌이 있는지 뭐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나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생긴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이 영화에서 본 한 장면인 냥 귀엽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는 할머니는, 하루 온종일 계단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그 길고 긴,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의문을 던지곤 한다. 아마도 살아온 세월, 수많은 경험이 쌓여 시간이 우스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만 보아도 유년시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가고 있으니까. 아마도 세월 안에서 시간에 대한 경험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도 곧 지금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며칠 전에, 친구가 운영하는 유통업체에서 택배를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퇴사를 하고 작업실에서 글만 쓰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마침 일손도 부족하다고 하여 바람도 쐬고 용돈도 벌 겸 하는 마음에서였다. 일은 바쁘지도 복잡하지도 않았지만 손이 많이 필요했다. 박스를 만들어 상품을 담고 송장을 붙이는 일이라 고되지도 다칠 일도 없었다. 고급 방석을 유통하기도 했는데, 나는 할머니가 생각나서 친구에게 어디 지하철 역 지하상가 노상에서 한 할머니가 껌을 파는데 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친구는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의도를 알아차린 듯, 방석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넸다. 하자가 있어 반품이 들어온 상품인데, 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흔쾌히 방석을 준 친구가 고마웠다.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때, 인연을 맺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친구이다.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온몸을 불사르는 친구는 지금의 사업체도 혼자 도맡아서 한다. 물론 그때그때 일감에 따라 일용직 근로자를 쓰지만 말이다. 내가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역시 한국사람은 친구와 나밖에 없었다. 내가 일했던 날은 많은 사람이 필요했던 날이라, 열 명 정도의 태국 사람들과 일을 했는데, 자주 그리고 오랜 시간 일을 해왔던 것처럼 손도 빠르고 몸놀림도 재빨랐다. 태국 현지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꽤 다르게 느껴졌다. 그 덕에 나까지 바빠져야 했지만 싫지 않았다.


내게 태국은 여행 경험이 전부였지만, 그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아니 그제야 인식을 했다고 할까? 친구의 부연설명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은 매우 친절했고, 아주 부지런했고, 꽤 밝았다. 쉼 없이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일을 했다. 점심시간에도 조촐한 파티를 하는 것처럼, 옹기종기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지만 그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였다. 태국 사람에 대한 감정은 물론 어떤 호감도 없었던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날이었다.


사장인 친구는 일이 마무리된 늦은 오후, 태국 일꾼들을 모아놓고 다음날 일에 대한 브리핑을 했는데 직원들 모두가 밝고 해맑은 얼굴로 경청을 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존경심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한 자리였지만 뭔가 그 모습이 진지하게 보였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사이, 친구가 그들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었다. 태국 사람들은 쉬라고 할 때까지 절대 쉬는 일 없이 계속해서 일만 한다고 하며, 시간 약속도 아주 정확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다고 했다. 또 자신이 고용해 본 노동자들 중에 태국 사람들이 최고라 하며 앞으로도 무조건 그들만 고용한다고 말했다. 마침 사업장 근처에 태국 사람들 거주 지역이 있어 일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하며 미소 지었다.


친구는 또 다른 얘기를 해주었다. 얼마 전에 새로운 태국 여자 노동자 두 명이 그전에 일했던 업체에서 돈을 못 받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업체에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따졌다고 한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어떻게 말을 시작했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우리 직원 중에 아무개라는 태국 사람이 있는데 하면서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나는 ‘우리 직원 중에’라는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과연 외국인 일용직 노동자를 그렇게 따듯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소에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왜 태국 사람들이 친구의 말에 존경의 눈빛을 보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친구로부터 드라마틱한 얘기를 듣는 내내, 내 가슴도 잠시 뜨거웠다. 또한 내 돈을 받아준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가난한 자를 그리고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텐데, 누구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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