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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Oct 27. 2020

양지보다 음지를 살핀다

나는 유독 공부를 못했다. 엄마는 20년 이상 교직에 있었고, 아빠 또한 공부를 꽤 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빠의 글씨체는 한글이며 한자며 일반인을 뛰어넘는 필체를 가지고 있었으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핏줄을 이어받지 못하고 거의 바닥에서 기다시피 했다. 내 머리가 안 좋은 것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공부에 있어서는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공부를 하라는 소리를 거의 안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그 누구보다 공부로부터 자유로웠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빠는 그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었기에 그다지 내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중요한 순간, 즉 입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만 짧게 공부를 언급했을 뿐이다.


나는 솔직히 바닥이 아니라 중간 정도의 석차는 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초등학교 때의 성적표는 들춰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초라함 그 자체였지만, 무슨 근거인지는 몰라도 내 나름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표가 나왔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70명이 조금 안 되는 인원 중에 내 등수 뒤로 열 명 남짓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때의 비참한 심정이란? 불과 몇 분 만에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받고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만 있었을 뿐, 나는 그저 나 자신과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음부터는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익숙한 엄마의 글씨체가 선명한 성적표를 앞에 두고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큰 키에 커다란 눈, 그리고 약간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총각이었고 나이는 아마도 서른 살 전후가 아니었을까? 까만 얼굴에 큰 눈이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함과 쑥스러움이 한없이 올라왔지만 눈을 웃음을 짓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떤 황당함에 대한 것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나에 대한 실망감 같은 거라 할 수 있을까? 담임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계속된 침묵이 나는 고개를 숙이게 했다.


“너는 왜 이렇게 이질적이냐?”


담임선생님의 첫마디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본 말, 당연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공부를 아주 잘하게 생겼어, 너 그거 아니?”


선생님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내가 공부를 아주 잘하게 생긴 얼굴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앞뒤 없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내 뻣뻣한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선생님은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 대신 용기를 주었다고나 할까? 나는 집에 도착 하마자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이질적이라는 소리가 무슨 뜻이야?”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선생님의 말이 이해되었다. 공부를 잘하게 생긴 얼굴과 아닌 얼굴이 있는지는 몰라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얼굴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산수든 국어든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만 있었으니까. 머리가 커졌다 한들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이니까. 물론 내게 국한된 얘기이다.


중간고사와 마찬가지로 기말고사 역시 이질적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나를 선생님은 놓아줄 생각도 없이, 성적표를 검사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면담을 했다. 그것도 맨 마지막에 말이다. 불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편안함 같은 게 있었다. 면담을 진행하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시간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선생님은 역시나 혼을 내지도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듯, 질문만 던질 뿐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묻는 말에 꼬박꼬박 답을 했다. 내 답을 들을 때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생님은 웃기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선생님의 까만 얼굴이 품고 있었던 하얀 치아가 선명하다. 반장도 있었고, 전교 1등도 한 반에 같이 있었지만 유독 선생님은 내게 관심을 보였다. 사실 학창 시절 내 기억에 남은 선생님은 거의 없다. 공부를 못했던 나는 늘 주변인이었기에 대부분의 선생님이 무관심했으니까, 특별한 기억이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이례적으로 내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준, 선생님이 고마워서이다. 그 누가 바닥을 기는 학생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나를 봐도 또 다른 누구를 봐도 내 기억에는 없다시피 한 일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일등보다 꼴등에 관심을 두었던 선생님을 가슴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일등만을 위하는 세상이었는데, 이질적인 나보다 더 이질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혹시 이질적이라는 말을 반전이라 말해도 된다면, 나도 반전이었고 선생님도 반전이었다. 꼴등이 따뜻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부족할지라도 또 결과가 미비할지라도 나는 변하고자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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