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진 Oct 27. 2020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처음은 모든 게 낯설다.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한 것이 낯섦이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일이든 사람이든 모두가 힘들게 느낀다. 초행길을 지날 때도 갈 때와 되돌아올 때가 확연히 다르다. 한 번 지났다고 그 사이 익숙하게 다가온 것이다. 처음은 익숙하지 않기에 두렵기까지 하다. 처음이 아니라면 두려울 이유가 없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자신감을 가지려면 오직 시간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다. 돌이켜 보면 많은 부분을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사랑도 이별도 그리고 아픔도 시간이 해법이었지, 내가 직접적으로 움직인 것이 별로 없다.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노력도 시간이고 그 노력에 대한 결과도 시간이니까. 시간은 경험이 되고 경험은 익숙한 시간을 만든다.


나는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낸 느낌이다. 엄마와 아빠가 있었고, 형과 누나들이 있었지만 내 기억은 혼자 있는 나를 더 기억한다. 둘이 아니라 혼자일 때, 내면을 마주해서일까? 내 머릿속 유년시절은 온통 혼자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무도 없는 동네를 쏘다녔고, 어스름 어둠이 내리면 그제야 집으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오전의 쌀쌀한 바람과 해 질 녘 멀리 보이는 붉은 노을은 쓸쓸함을 더욱 부추겼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보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허한 내 마음은 그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는 이렇듯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사도 그리고 전학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나는 공간이동으로 말미암아 홀로가 아닐 수 있었다. 변화는 환경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까지 뻗었다.


낮 시간 불 꺼진 방이라 할 수 있을까? 내 기억은 전학 오기 전의 생활을 어둠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동네, 학교는 불이 켜진 방처럼 환하게 느껴진다. 왜 나는 이 둘을 이렇게 기억하는 걸까? 불과 한두 달 차이로 어둠이 밝음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관심이 아닐까 한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 유무가 내 마음속 밝기를 조절해 버렸다고 말이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온 나는 그전과 달리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그 관심은 내게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예전과 달리 많이 웃었다. 환경만 달라졌을 뿐, 나는 그대로였지만 선생님도 친구도 내게 다가왔다. 볼품없는 나를 품어주었다고 할까? 그들 때문에 어둠이 가시고 그 자리를 밝음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별다르게 노력한 것은 분명 없으니까. 단 한 명도 나를 주변인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전 동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새 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자리를 제대로 찾아갔다. 마찬가지로 볼품도 없고 공부도 못했지만 밝은 웃음을 지닌 나는 꽤 인기가 많았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전에 없었던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늘 기죽어 생활했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주변인이었던 나와 어울리지 않게 내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게 말을 붙이고 뭔가를 주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즐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목소리는 힘찬 소리를 가졌고, 그 소리와 얼굴과 행동이 비슷하게 닮아갔다. 분단장 한 번 못해본 나였지만 반장 못지않았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신감은 예전의 나를 지워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변화된 내 모습을 직시했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혼자서 지닐 수 있는 마음가짐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관중이 많으면 자신감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중압감을 이겨 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 또한 자신을 좋아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신감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와 아닌 아이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주변의 관심과 응원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다가가야 함은 물론이다. 받아들이는 것도 자신감이고 다가가는 것도 자신감이다. 즉 마음을 열고 닫고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밝음은 자신감을 줄 것이고, 어둠은 의기소침을 줄 것이 분명하니까.


보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의든 타이든 자신감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등에 업든, 강한 의지를 등에 업든 무조건 자신감이 수반돼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누군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감부터 채워 넣어야 한다. 그 시절 내게 생긴 자신감은 주어진 선물 같은 것이었다. 남들과 달랐던 가정환경이 따뜻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냥 시간과 환경의 맞물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돼 만들어진 거라 할 수 있다. 지금 그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어렸어도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외로움은커녕 무대 위 주인공처럼 살았던 나날이었으니까. 짧긴 했어도 그 시절의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전 05화 양지보다 음지를 살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