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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Jan 10. 2019

첫 눈 내리는 날

최초의 약속을 기억하는가

최초의 약속


“첫눈 내릴 때 거기에서 만나!”


‘첫눈’이라는 말은 있어도 ‘첫비’라는 말은 없다. 올해도 연인들은 겨울 문턱 즈음에는 ‘첫눈’을 기다리며, 첫눈 내릴 때 만날 장소를 약속해 놓는다. 처음 우연히 마주쳤던 길거리,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만났던 그 카페, 싸움을 하고서 화해를 할 때 거닐었던 동네의 오래된 계단 앞. 도심 한 가운데 큰 서점 앞일 수도 있다. 어떤 연인들은 아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움직이던 도시를 떠나 그들이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던 숲이나 풍경 소리가 설경과 하나가 되는 산사의 일주문 앞을 약속하기도 한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면 이 약속은 더 낭만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시간 통신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했던 어떤 연인들이 그 해 미리 정해 놓은 사랑의 약속만을 맹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첫눈이 내리는 그 순간 각자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약속된 그들만의 숲으로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비가 아니라 눈을 기다리는가. 왜 ‘첫비’라는 말은 없는데, ‘첫눈’이라는 말은 있는가.


'첫눈'은 '최초의 약속'이다. 모든 최초의 약속은 순결하다. 최초의 약속을 상기하는 것, 최초의 약속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은 일상이라는 이름의 관성을 중단시킨다. ‘첫눈’은 최초의 다정한 기억들을 우리에게 불러들인다. 그 다정한 기억들은 사소한 것들, 작은 것들, 어떤 예민한 것들로 이뤄진 이미지들이다. 한 연인들이 맞았던 그들만의 크리스마파티, 작은 손을 호호 불며 까먹던 군고구마, 사랑스러운 입술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 선물로 건네던 빨간 벙어리장갑, 놀이터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는 아이와  강아지. 하얀 도화지 같은 길 위에 함께 찍힌 오른발과 왼발, 평소에는 몰랐던 그의 신바닥 무늬. 사소한 것들을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깨어난다.




하지만 각자 다른 장소에 있던 연인들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같은 시각 동시적으로 첫눈 내리는 걸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첫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아침뉴스를 보고서야 간밤에 새벽에 잠든 사이에 흰 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다. 첫눈은 대개 흩날린다. 첫눈은 몇 분 사이에 사라질 만큼 짦게 내리고, 땅에 쌓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 새벽 잠들지 않았던 누가 첫눈을 보았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처음’을 보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사라지는 환영 같은 '그 순간'을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공중에 흩날리다가 땅에 내려오자마자 바로 녹아버리는 이 처음 시간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연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허공에서 보았지만 곧 녹아버리는 그 시간은, 물질로 소유할 수 없는 비밀, 찰나에서만 탄생하는 순진한 비밀 같다. 첫눈의 설렘에는 그래서 어떤 덧없음의 실루엣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눈을 뜨면 사라지죠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어느 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너의 모든 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 서태지, <소격동> 중에서


눈에서 보이는 찰나적 이미지는 설렘과 동시에 망각의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눈은 "눈을 뜨면 사라지"는 ‘첫눈’이다. 눈은 공중에 날려 땅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공간적 경험을 선사하지만, 순간적으로 출현했다가는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덧없음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다. 그 해의 첫눈은 두 번 반복되지 않는 무엇,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존재 체험을 우리도 모르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다는 이 가사에는 시간 체험의 복합성이 스며 있다.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유일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유일성은 존재 그 자체로 인식되기보다는, 그것이 사라진다는 걸 체험하면서 사후적으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라지기 때문에 반복할 수 없는 것이며,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지금 막 사라진 그것이 우주의 유일한 순간이었으며 유일한 존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첫눈에 대해 유난히 연인들이 애틋함을 가지는 것은 왜인가. 그들의 무의식은 자신들의 사랑에서 첫눈의 속성을 예감하는 것은 아닐까. '최초의 약속'에서 설레다가도 그 약속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을 부지불식 간 느끼는 것은 아닌가. 모든 설렘에는 불안이 내재해 있다. 서태지의 <소격동>에서 “잠들면 안돼요” “너의 모든 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라는 말에는 이런 인식의 아이러니가 깃들어 있다.




간절한 것들은 현실 공간에서 지속되기 어려운 눈의 이미지처럼 아토포스atopos(비존재 공간)적이다.  그것은 아른거리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루엣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아슬한 이미지는 존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한 사물에 교직하면서, 찰나적인 것에 내재한 망각의 문제를 제기한다. 진정으로 사라지는 것은 존재의 물리적 상황이 아니라 기억의 망실이다. 기억에서 잊혀질 때 존재는 더 이상 복원되지도 회귀하지도 않는다/못한다. 존재의 자리는 사라진다. 그들의 찬란한 공간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 없음은 지금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부재하다. 망각이 지닌 진정한 문제적 차원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망각은 설렘을 공포로 바꾸기도 한다. 예컨대 사랑의 첫 약속만으로도 황량한 세상을 천국처럼 살 수 있었던 어떤 연인들에게, 이 약속의 망각이야말로 그들의 현실을 지옥으로 바꿔놓지 않겠는가. “잠깐 사이에 사라지”는 약속의 망각이 어찌 두렵지 않으랴. “어느 날 세상이 뒤집”힌 이 가사의 체험을, 새벽의 첫눈을 함께 바라보던 연인들이 느끼는 그 시간성의 망각에 대한 심적 공포로 읽는다고 한들 별 무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의 목숨은 생각보다 끈질기다. 세상의 공간에서 사라져도 살아남는 존재들이 있다. 어떻게? 기억 속에서 말이다. 망각이 존재했던 것을 부재하게 한다면, 기억은 부재했던 것을 존재하게  한다. 첫눈의 시간에서 문제되는 덧없음은 궁극적으로는 첫눈이 내렸던 시간의 망각과 관련된다. 공간을 점유하는 모든 물리적 실체들은 무한한 시간성에서 보면 눈처럼 찰나적이다. 무한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는 “잠깐 사이에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감히 그것을 '실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것들이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우주의 신비가 있다. ‘잠들지 않는 시간’ 속에서, ‘두 눈에 담고 있는 시간’ 속에서 유한한 존재가 지속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시간의 속성인 덧없음의 진정한 차원은 공간에서의 물리적 소거가 아니라 망각을 통해 일어난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시간을 '시간의식'이라고 불렀다. 시간의 진정한 차원은 수학적 물리량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 진행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우리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그 대상의 시간도 사라진다. 망각은 존재에 대한 시간(의식)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사건이다.

시인 김수영은 서태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이를 다른 방식으로 얘기했다.



눈은 살아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 김수영,  「(1955) 중에서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는 말은 새벽이 지나도록 눈이 녹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새벽에 흩날리던 이 눈 역시 볕이 쬐이면 녹아버릴 찰나적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운명이다. “눈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시각적(공간적) 경험이 아니라 시간의 경험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의 가장 순결한 시간을 기억하는 동안(에만) 눈은 시인의 마음에 녹지 않고 ‘살아 있다’. 그 기억이 새벽을 관통하여 시인의 영혼을 죽지 않게 만든다. 눈이 내리던 새벽은 '첫눈'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원형적 시간이다. 첫눈의 시간, 설렘의 시간, 최초의 약속을 망각하지 않을 때, 눈도 살아있고, 눈을 보는 시인도 살아 있다. 사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연결되는 공동시간의 신비가 우주에 열린다. 모든 존재에게 삶-죽음은 생물학적 층위를 넘어서는 기억의 시간성 문제를 개입시킨다. 서태지가 소격동에 내린 한밤의 눈을 기억했듯이, 눈 위에 대고 하는 ‘젊은 시인의 기침’은 새벽의 순결한 기억을 지속시킨다. 이 지속은 부재를 넘어선 존재,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순간을 환기한다. 김수영은 이 순간을 시의 시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비타협적 리얼리스트인 김수영이 이 기억의 문제를 매끄러운 방식으로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왜 하필 ‘기침’이라는 탈낭만적 이미지로 (첫)눈의 시간을 만나려 하는가. 자식을 잡아먹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처럼, 시간의 죽음인 망각은 우주적 엔트로피를 따르는 물질계의 순리다. 하지만 이 사실은 물리계에 아직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는 우리에게 정반대의 '윤리'를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망각은 존재를 미래에조차 부재하게 하지만, 기억은 사라진 존재의 과거조차 되살려낸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 말이다. 그것은 기억이 '부활'의 메커니즘에 핵이라는 뜻이다. 유한한 우리가 유한한 존재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우주의 기적에 참여할 수 있다. 기억은 능동적으로 의지해야만 지속되는 ‘시간적 운동’이다. 서태지가 저 가사에서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할 때 그도 이 어려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수영의 시에서 ‘기침’은 이 기억의 지속에도 주체의 투쟁이 필요하며, 이 투쟁 역시 모든 생생한 살아있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력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약속도, 인간의 역사도, 존재의 부활도 “눈 덮인 무덤들 속에서 마침내 그의 것을 찾아”(한강, 소년이 온다』)내어 그 존재를 망각하지 않는 의지적 행위이다. ‘아직’ 공간성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이미’ 공간성을 상실한 존재가 죽음을 이기는 시간의 기적은 가능하다. 여기에서 얄팍한 현재는 과거의 지층과 닿고 미래로 열린 다른 차원의 시간의 두께를 확보한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공존-세계시민-생명' 가치에 기반한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사회디자인대학 '미지행'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 예술, 철학, 인문고전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R&D센터, 삼성디자인멤버십 등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인문예술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문ㆍ심의강의해 왔다.


현재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 대표, 자유시민대학 전문가위원, 삼성디자인멤버십 자문위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이자 친구로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 준비위원장이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2018 여름의 책'으로, 『사물의 철학』이 '문체부 책의 달 인문서'로, 스탠포드대학 폴김 교수와의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가 '책따세가 뽑은 2017 교육 부문 인문서'로 선정되었다.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 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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