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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영 Oct 01. 2024

달릴 때도 복잡한 나

6월 25일, 생애 최초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 

마침맞게 6.25km를 달려냈다. 장소는 여의도였고, 여의도의 반쪽, 고구마 반쪽 모양으로 친구들과 함께 달렸다. 

달리기와 연이 닿을 징조가 그전부터 하나씩 보이고 있었다. SNS에서 지인이 달리고 있는 모습이 계속 보였고, 그즈음 우연히 새벽 낭독에 참여하며 읽게 된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이었다. 뒤이어 우연히 어떤 분이 전시를 소개하여 함께 갔는데, 그 전시의 타이틀도 'Running'이었고, 전시가 담은 내용과 구현된 방식이 부지불식간에 몰입하게 했고, 지금껏 전시 중 가장 즐겼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대학 동기들이 만든 러닝 모임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6월 25일에 비로소 첫 장거리 달리기를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참 드라마틱하다.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달리기로 이끈 것 같다. 드디어 나도 끈기 있고 부지런해 보이는 사람만이 하는 것 같은 러닝을 하게 되는 것인가? '끈기'와 '부지런함'에 있어 콤플렉스를 느끼는 나이기에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의 첫 6.25 달리기는 나처럼 생에 첫 러닝을 하게 된 친구도 있었고 초보자들이 많아 마음 편히 임했다. 친구들 누구 하나 중간에 걷거나 포기하지 않아서, 쭈구리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끝까지 달리고 허세 있게 '나 운동 잘해'라는 기세로 달려 나갔다. 


사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체육 시험은 전혀 나에게 어렵지 않았다. 무엇이든 재미있었고 패스 기준에 쉽게 도달했다. 특히 자랑스러운 성과는 이단 뛰기, 일명 쌩쌩이 분야에 있었다. 중학생일 때 이단 뛰기를 76회 이어 뛰었고, 줄넘기를 간간히만 하긴 했어도 그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고, 다른 운동으로 체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고, 원래 몸에 근육이 많기도 해서 작년에 70회 2단 뛰기를 다시 한번 달성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시작한 테니스도 너무나 즐겁게 하고 있고 테니스를 할 때 내 몸이 구사하는 각종 퍼포먼스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나는 주로 순간적으로 파워를 내고, 순발력을 발휘하는 운동을 재미있어한다. 마라톤 또는 등산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지루했고 무엇보다 일종의 한 세트를 마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 지루한 과정에서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로지 견딘다는 생각을 주로 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3개월가량 되었는데 매달 50킬로 정도 달려오고 있다. 주 1회에서 2회가량, 뛸 때마다 5, 6킬로 정도 뛴다. 그런데 3개월 전에나 지금이나 러닝을 대하는 나의 기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지루하다. 친구들과 달리면 그나마 좀 낫다. 내 마음의 작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나는 퍼포먼스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혼자 하는 운동, 예를 들어 줄넘기는 '몇 회 달성'으로 퍼포먼스를 바로 인식할 수 있다. 테니스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 샷 한번 날릴 때 얼마나 제대로 쳤는지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 퍼포먼스로 인식이 된다. 러닝도 물론 달성한 길이, 킬로당 소요 시간 등으로 퍼포먼스를 거둘 수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고 그 긴 시간을 채우는 내용이란 것이 단순하고 지루하다. 하,, 저 멋진 야경조차도 나에겐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한 달에 200km 이상 뛰고 킬로당 페이스가 5분 내외인 동기에게 물었다. 


"달릴 때 어떤 기분이야? 무엇에서 쾌감을 느끼는지 궁금해."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았다.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들고, 머리를 비우며 단순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래, 나도 사실 지난 수년간 동네 주변을 주 3회가량 꾸준히 50분씩 걷기를 했을 때 편안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사색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머리를 비우기보다 걸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사색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그것이었다. 나는 좀처럼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서 내보내기 어렵다. 테니스는 매우 역동적이고 순간의 쾌감이 계속 몰아치기에 그 큰 재미가 다른 생각을 허락지 않는다. 그러나 걷기를 하거나 조깅을 할 때는 생각이 오히려 들어온다. 또한 조깅을 할 때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허리 통증은 통증으로 인해 '피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러면서 '이 조깅은 왜 재미있는 걸까? 나는 어떤 의미를 거둘 수 있을까?'를 애써 생각하게 된다. 조깅이 나에게 가져다줄 건강이 가장 큰 의미일 텐데, 건강해질 거야라는 생각만으로 그 시간을 버티긴 어렵다. 이런저런 생각 다 떠나서 움직임, 그 역동 자체에서 느껴지는 어떤 쾌감이 있어야만 그 운동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일단 달리기를 관두고 싶지는 않다. 또한 같이 달리는 친구와 남편이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달린다. 어디에나 달리는 이들이 보인다.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 나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나의 삶이 복잡하여도 달리는 시간을 탈출구로 삼으면 될 텐데 복잡하기 때문에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복잡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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