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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니컬가든 가든라이트

식물원 아닌데? 조명으로 재구성된 화려한 뮤직쇼

by 지우맘 Mar 03. 2025

지우가 애틀란타에서 볼 건 보태니컬 가든과 아쿠아리움 정도라며 보태니컬 가든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룸메이트인 지수도 같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일인 토요일에 가자고 플랜을 짜 두었는데 하필 이 따뜻한 애틀란타에 한파가 몰아쳐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식물원이라,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 추위에 가야 하나 싶어서 가지 말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일요일이 되니 날씨가 조금은 따뜻해졌고, 가든라이트 이벤트는 오늘까지만 한단다. 그럼 가 봐야지. 우리가 누구인가? 맛없는 보졸레 누보도 이 시기 지나면 못 먹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사 먹고 저 멀리 섬진강까지 벚꽃 구경 다니며 제철 음식이라고 가시 많은 전어에 환장하는 배달의 민족 아니던가. 그래서 갔다. 


미국 지우가 예매도 하고 리프트도 예약해서 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지수가 우리를 픽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미국 지우는 한국 지우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다. 한국 지우는 말 그대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3주를 집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는 나무늘보이지만 미국 지우는 야무지다. 혼자 세면대도 고치고 TV도 벽에 척척 달고 바질과 아이비, 커다란 이름 모를 나무도 죽이지 않고 키운다. 


그런데 근처에 가니, 엄~청나게 멋진 조명 쇼가 벌어지고 있다. 리프트 기사님이 이런 구경시켜줘서 너무 고맙다며 방언이 터지셨다. 본인은 연봉 10만 불 받는 셰프인데, 리프트 운전 자격 유지를 위해 지금 이러고 있다면서 본인 딸과 손녀 사진도 보여주시고 우리 타기 직전 승객이 따뜻한 실내를 원해서 자기는 더워 죽을 뻔했다고도 했다. 음... 서양인들이 동양인 보면 나이를 가늠 못한다고 하지만 나도 흑인 나이를 가늠을 못하겠다. 그 기사분은 30대에서 40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였는데 딸이 서른이란다. 하긴 요즘은 다들 관리들을 잘해서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나이 맞추기 쉽지가 않다.


보태니컬 가든은 90% 이상 실외에 조성되어 있어 무조건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야 한다. 게다가 이 가든라이트라는 이벤트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사라서 겨울에만 열린다고 하니, 나처럼 추위 많이 타고 한여름밤에 야외에서 맥주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에게는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이 추위를 감내하고도 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내 평생 이렇게 근사한 조명 쇼를 본 적은 없다. 화룡점정은 역시 음악에 맞춰 나무 사이사이 늘어뜨려 놓은 조명쇼였다. 음악을 visualize 하면 이런 모습이구나. 어떻게 이 음악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웅장한 숲과 어우러지는 Creativity가 정말 놀라웠다. 장관이었다. 음악의 장르나 분위기에 맞춰서 어떤 패턴을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소단위인 모티브(악절보다 작은 단위(?)별로 조명의 패턴을 바꿔주는데 정말 음악을 눈으로 보는 듯했다. 완전 음치인 나도 푹 빠져서 감상하게 만들었다. 이 뮤직쇼가 너무 큰 감동을 주어서 나머지는 별로일 줄 알았는데, 그 넓은 보태니컬 가든 전체가 세심하게 조명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멋졌고, 정말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써서 만들었기에, 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일을 꼼꼼하게 한다고 싶어 다시 보이기도 했다. 그중 미니 기차 트레인과 나무요정의 집 같은 것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 있었는데 지수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까지 했다. 오늘 뉴욕에 사는 여자들을 그린 책을 읽었는데, 그 비싼 물가를 감당하면서까지 그 생기와 화려함에 대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숲 속의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개인 취향이란 참 다양하다. 그리고 내가 어느 쪽인지는 경험을 해 봐야 아는 것 같다. 오늘 내가 읽은 책에 나온 주인공 중 한 명은 파티보다는 집에서 혼자 와인 한잔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는데도 뉴욕에 살고 싶어 했다. 나는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시골이나 조금 한적한 위성도시에 사는 편을 선호한다. 우선 교통체증이 싫고, 사람 많은 것이 싫다. 그런데 지우는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여러 문화적 자극이 많은 뉴욕이 애 키우고 살기에는 적합할 것 같다고 하니, Case by Case, 사람 by 사람이다. 지우와 나, 지수 모두 집순이들이라 대도시보다는 작고 호젓한 중소도시쯤이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인 듯. 그리고 이렇게 혼자 있는 걸 즐기기에는 익명성과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많은 꺼리가 있는 대도시가 더 좋을 것 같기도? 나는 둘 다 경험해 보았으니, 알지만 말이다. 이래서 나이 먹는 것도 좋다니까? 나 자신을 훨씬 잘 파악하고 있어 나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드는지 안다. 그리고 또 좋은 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 봐야 나한테 필요한 건 요만큼이라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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