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연재를 시작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은 지난 8월 12일(월) 저희 할머니가 97년 4개월의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모두 저희 할머니가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새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주말, 우리는 일요일에 할머니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월요일에 입원을 하고 바로 위독한 상황이 있었으나 할머니는 일주일을 잘 버티고 계셨다. 물론 매일 면회를 갔던 엄마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계속 진통으로 고생하고 계시기는 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최근 다시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서 다음 주부터 등록된 보호자 1인을 제외하고는 면회를 제한한다고 했단다. 코로나 시국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서 임종을 못 한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고, 그래서 일정이 있던 토요일은 못 가더라도 일요일은 꼭 다녀와야겠다 계획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전날 밤까지도 불편할 때 중간중간 고함을 치기도 하고 몸도 움직이셨는데, 새벽부터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고 얼굴색도 변하고 힘도 떨어지고 계셔서 와보는 것이 좋겠다고 면회시간 맞춰오지 않아도 그냥 오는 대로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생각하며 만의 하나를 대비해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속옷 몇 개와 양말, 그리고 로션하나. 월요일에 꼭 진행해줘야 하는 업무가 있어 노트북도 가지고 출발을 했다.
엄마는 벌써 도착해 있었다. 눈이 빨갛게 부어서는 본인이 도착해서 엄마~라고 부르니까 할머니가 눈을 뜨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씀하셨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동생이 먼저 할머니와 인사 나누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눈을 잘 뜨지 않고 잠깐 떴다가 감았다. 그래도 주변에 반응을 하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침대 옆으로 다가가 침대 양쪽 가드를 손으로 지지하고 할머니의 얼굴 앞에 내 얼굴을 마주하자 할머니가 먼저 눈을 살짝 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힘껏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나 왔어... 괜찮아..."
괜찮냐고 물어볼 수가 없는 할머니의 모습에 괜찮냐고 묻지 않고,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어서 괜찮아하고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괜찮을 거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의 새하얀 머리를 쓰다듬자 할머니가 고개를 천천히 두 번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할머니 눈에 눈물이 스몄다. 지금까지는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 올랐다. 할머니는 내 눈을 보고 있었다. 지난번 나를 보지만 허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 아니라 오늘 할머니의 눈동자는 검고 맑았고 나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조금 더 할머니와 눈을 맞추고 눈물이 스민 할머니의 눈을 손수건으로 닦아드렸다. 나도 할머니도 서로 눈으로 괜찮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아침까지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고 지금은 산소포화도도 올라가고 얼굴색도 다시 좋아지셨으며, 외부 자극에 반응하시니 또 잘 넘어가신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돌아가보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 병원은 이전 대학병원처럼 독실을 제공하지 않아 다른 환자들이 있는 병실이라 이런 순간에도 면회를 길게 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이제 나와야 했고 이제 코로나로 인해서 긴급 상황이 아니면 주 보호자인 엄마를 제외한 우리는 면회가 어려울 예정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할머니 왼쪽 귀에 대고 '할머니, 또 올게' 했더니 할머니가 눈을 떴다. 그러면서 입을 뻐끔거리셨다. 뭐라고? 하면서 할머니 입에 귀를 가져대 댔다.
고...마워...
타들어가는 할머니 목소리.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할머니 얼굴을 보고 '고맙다고?' 하고 반문했더니 할머니가 또 내 눈을 맞추고 고개를 천천히 두 번 끄덕였다. 대답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지난 두 달 남짓 본 그 어느 날보다 편안해 보였다. 또 눈물이 차올랐다. 목이 메어와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아까처럼 할머니의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며 같이 고개만 끄덕이며 풍성한 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바로 할머니는 스르르 눈을 감고 잠에 빠지신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할머니 눈가에 눈물을 다시 한번 닦아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나도 얘기할걸... 나도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할머니를 그곳에 혼자 두고 나와야 하는 상황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얼마 안 남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눈물로 계속 흐려졌다. 진짜 다시 할머니를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랬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집으로 오는 길, 할머니의 그 타들어가던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 내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차에 문제가 있어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집에 돌아오는데 전화가 왔다. 할머니 상태가 또 안 좋아지셨으니 볼 사람들은 면회제한 없이 오라고 했다. 차가 없어 쏘카를 확인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또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급히 와야 할 것 같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급히 카카오택시 앱을 열어 택시를 호출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여정이라 바로 잡히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로 잡혔고 택시를 타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할머니 방금 임종하셨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뭐라고? 가셨다고? 나 지금 출발했는 데에~~~~" 가는 택시 안에서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꺽꺽거리면서 울어댔다. 그리고 도착한 병원의 작은 방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얼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해 보였고 얼굴 색도 맑았다. 몸은 아직 말랑하고 따뜻했다. 할머니는 이제 아프지 않고 편안하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꺽꺽거리며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고 참으며 아직도 풍성한 할머니의 하얀 머리칼, 얼굴, 작은 어깨, 팔, 나보다 20센티도 넘게 작으면서 나보다 큰 손과 발, 할머니의 온몸을 쓰다듬어 드리며 마음속으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