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없는 외식이 자유를 포장한 채 메뉴선택을 강요하는 역설
100여 개나 넘는 다양한 푸드코트 메뉴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게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최근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에 라이온킹을 보러 갔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건물 4층 푸드코트에 갔다. 메뉴는 다양했다. 한 끼 먹는 거 뭘 못 먹을까 싶었다. 한 끼 정도는 거꾸로 매달려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세계는 평소에 없어서 못 먹지, 편식이란 건 없다. 집에서 아침은 확실하게 집밥으로 챙겨 먹고 있어서, 점심과 저녁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중 아침 섭취를 40~50%로 잡는다. 나머지를 점심과 저녁으로 배분한다. 저녁은 웬만하면 7시 이전에 먹는다. 그래야 12시간 간헐적 단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습관으로 살아온 지도 5년이 넘었다. 운동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헬스장에 가서 근육운동을 한다. 등-어깨-가슴-하체 순으로 돌아가면서 운동을 한다. 어깨 근육운동할 때는 삼두, 가슴 할 때는 이두 근육운동도 함께 한다. 이렇게 한 것도 3년이 넘었다.
그렇기에 한 끼 점심 먹는 것은 앉아서 떡먹기처럼 쉬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누워서 떡먹기가 더 어렵게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30분 이상을 메뉴 하나 고르는데 허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르기가 힘들다 못해 1층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나 먹고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목적 없는 외식은 선택을 묵시적으로 강요한다. 그 많은 메뉴로부터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자유롭게 선택하는 듯 보인다. 몇 가지도 아니고 100여 가지가 넘는 메뉴이다. 선택의 폭이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특히 요리를 해봐서 선택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오므라이스류 음식은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이 된다. 노란 색의 계란이 주는 느낌도 좋다. 다만 너무 무난해서 일단 선택에서 제외시켜 놓고 나중에 보게 된다. 그러다가 선택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라면, 떡볶이, 순대나 김밥 같은 분식류는 정말 부담 없는 선택이다. 너무 부담이 없는 게 오히려 역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영화 보러 온 커플이라면 거의 선택 가능성이 높은 메뉴다. 이런 종류의 메뉴는 단품보다는 여러 가지를 시켜 함께 먹는 게 시너지가 높다. 혼자 먹기는 부담될 수도 있다.
비빔밥 종류도 무난한 케이스다. 비빔밥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한 끼 먹기로는 적합한 메뉴다. 집에서도 입맛 없을 때 이것저것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 만으로 비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만 비빔밥은 재료에 신경 쓰인다. 재료의 신선함이 문제인데, 식당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짜장면, 짬뽕과 같은 중화요리는 보통 생각날 때 한 번씩 먹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도 가끔 누가 한번 먹자고 할 때 먹게 된다. 특히 맛집이 대세인 지금은 집에서 시켜먹으면 모를까, 짜장면 하나라도 아무 데나 가서 먹지 않게 된다. 특히 푸드코트에 가서 선택하기는 선뜻 내키지 않게 된다.
냉메밀, 판 메밀, 덮밥 종류도 비슷하다. 무더운 날 냉면이나 판 메밀 같은 음식이 당기긴 하지만, 아무데서나 먹고 싶지는 않은 ‘까탈스런’ 메뉴다. 덮밥은 재료가 중요한데, 수입산이 많은 데다 아무렇게나 덮이는 느낌이 싫은 경우도 있다. 오징어볶음 같은 것은 덮밥으로 먹기에 좋은데. 최근에 비싸서 그런지 메뉴에 없었다.
김치찌개, 청국장, 된장찌개, 탕 종류 등 한식류는 친근한 음식이라 선택 확률이 높은 편이다. 한 끼 대비 가성비가 높은 메뉴에 속한다. 다만 나는 집에서 늘 챙겨 먹는 편이라 일단 제외시켜 놨다. 특히 한식은 밑반찬 같은 게 부실할 가능성이 높고, 메인 요리도 제대로 잘 나올지 장담이 어려운 게 문제다.
아마도 푸드코트에서 가장 무난하게 선택이 높은 메뉴가 돈가스 종류가 아닐까 싶다. 단백질 챙기기도 좋고, 튀김이라 맛도 좋아 든든한 한 끼의 식사로 무난하다. 문제는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 등 종류가 많은 데다, 고기의 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30분 이상 메뉴선택을 못한 채 서성이게 됐다. 결국 경험과 기억을 여러 가능성과 경우의 수로 조합해 종합한 결과 돈가스 쪽으로 선택했고, 돈가스 중에서도 기름의 느끼함과 영양을 잡아줄 카레를 곁들인 ‘카레라이스 돈가스’로 결정하게 됐다.
쟁반에 담겨 나온 ‘카레라이스 돈가스’의 맛은 그저 그랬다. 미소된장국 맛도 밋밋했고, 채 썬 양배추와 통조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옥수수도 보잘것없었다. 카레는 푹 퍼져있었고, 몇 쪽 안 나온 돈가스는 퍽퍽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선택한 결론인 ‘버킹검’이 씁쓸해지는 이유다.
재밌는 사실은 푸드코트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는 달라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끼고 온갖 정보가 넘쳐나도 메뉴 선택에 어려움이 따르는 역설 같은 하루가 나를 지배했다. 직장 점심을 선택 없이 책임지는 구내식당 밥이 새삼 고맙기까지 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