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분명한 콩으로 집에서 만드는 콩물
더운 여름철에 콩국수만 한 음식이 또 있을까. 영양과 수분, 고소한 맛까지 한 번에 챙길 수 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에는 콩국수 전문점이 없다. 일반 식당이나 중국집에서 콩국수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집에서 만들어먹는 맛과는 거리가 좀 있다.
일반 식당은 주로 콩가루를 쓰는 데가 많다. 콩가루도 물론 콩에서 나왔고, 물에 타서 섞으면 콩물이 된다. 문제는 콩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콩이 좋아야 콩물도 좋은 법이다. 집에서 콩을 사다 해 먹으면 그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나는 주로 생협에서 콩을 구입해 갈아먹는다. 출처가 정확해서 변수 하나는 없애고 갈 수 있다. 요즘 안 그래도 먹거리 문제는 신경이 쓰인다. 콩을 갈아서 만든 두유의 경우,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을 보면 종류별 첨가제가 엄청 들어가 있다. 각종 재료들도 대개 외국산들이다.
특히 일부 식당에서는 저품질의 콩 맛을 감추거나 고소한 맛을 더 가미하려고 우유나 두유를 섞는 경우도 있다. 고소한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집에서 해 먹는 100% 콩물이 심심할 수 있다. 집 콩물에 두유를 섞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걸쭉함과 고소함이 달라진다. 호남 지역의 콩국수에는 설탕이 들어가기도 한다.
콩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재료이기도 하다. 비린내가 있는 데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알레르기 문제는 어쩔 수 없지만, 콩을 정확히 불리고 삶는다면 비린내는 막을 수 있다. 요즘 여름철 같은 날씨에는 불리는 시간을 평소보다 줄이는 게 좋다.
콩은 서민들의 음식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잣을 갈아 국수를 말아먹었다고 한다. 잣국수인 셈이다. 잣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싼 작물이라, 서민들이 즐겨 찾는 여름철 별미는 역시 콩국수다. 사실 잣죽과 흰 콩죽을 보면 외견상 구분이 힘들기도 하다.
요즘은 콩국수를 중화요리 집에서 많이 팔기도 한다. 면 자체가 두껍고 쫄깃해서 소면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콩물은 차가워서 면이 잘 불지 않기 때문에 부드러운 소면도 괜찮다. 단백질이 부족한 사찰음식에서는 여름철이면 비빔밥 대신 콩국수를 자주 올리기도 한다.
콩물 간에는 고운소금이 좋다. 차가워서 빨리 섞이고 녹아야 하기 때문. 소금을 잘못 썼다간 나중에 콩물 마실 때 기겁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콩물은 옷에 튀면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미리 콩물에 소금을 넣지 않는 게 좋다. 콩물은 설탕이나 소금이 들어가면 쉽게 삭는다.
콩은 백두보다 서리태(검은콩)가 훨씬 고소하다. 껍질째 갈면 굳이 우유를 타지 않아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우유를 조금 타서 두유로 마셔도 좋다. 껍질째 갈기 때문에 곱게 갈아야 거친 느낌이 적다. 녹색이 도는 거므죽죽한 콩물의 비주얼도 꽤 당긴다.
요즘은 마트에서 콩국수용 콩물을 판다. 국수와 고명만 있으면 편리하게 그럭저럭 괜찮은 맛의 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콩물은 유통기한이 우유보다도 짧고 비싼 편이다. 잘 사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콩의 출처를 잘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국내산을 고르는 게 좋다.
호남지역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기도 한다. 대개 콩물은 소금 간이 고소함을 더 느끼게 해 준다. 호박죽, 팥죽의 경우에도 소금 간이 유용할 때가 많다. 설탕의 단맛은 미각을 쏠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대구에서 자란 나는 더운 지역답게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먹는다.
설탕의 유래가 콩의 비릿함을 막아준다는 설도 있지만, 전남지역이 설탕을 선호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콩국수가 아니라도 전남 출신 어르신들은 유난히 설탕을 좋아한다. 힘든 농사일이 많다 보니 피로를 푸는 효과 때문일 것이다. 물회, 동치미, 국수에도 설탕을 넣어 먹는다고 알려진다.
콩물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흰 콩을 물에 충분히 불린다.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6시간 이상이면 충분하다. 불린 콩을 10분 정도 센 불에 삶는다. 너무 많이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날 수 있고, 너무 적게 삶으면 비린내가 날 수 있다. 적당하게 삶은 콩인지 먹어보면 식감과 향을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다.
흰 콩은 삶은 후 껍질을 벗겨내는 게 좋다. 검은콩인 서리태는 껍질째 갈아먹기도 한다. 대신 곱게 갈아야 한다. 껍질을 벗길 때는 쌀 씻듯 박박 문지르면 잘 벗겨진다. 콩 500g을 쓸 경우 껍질이 꽤 나온다. 물을 부어 비중 차를 이용해 껍질을 체에 걷어낸다. 이 작업을 몇 번 반복해야 껍질을 제대로 없앨 수 있다.
콩물을 만들 때 껍질을 벗겨 골라내는 어머님들의 모습은 지혜 그 자체다. 삶은 콩을 문질러 껍질을 벗겨내고 물을 부어 체에 골라내는 작업을 5회 이상 반복하게 된다. 물의 양도 꽤 들어가기 때문에 체에 거른 물을 다시 활용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면 물소비가 훨씬 적어진다.
콩 껍질만 벗겨내면 다음은 어렵지 않다. 믹서기에 고속으로 갈면 된다. 갈 때는 고속으로 짧은 시간에 처리하면 영양 손실을 최소로 막을 수 있다. 너무 곱게 갈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영양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콩물을 먹을 때 가루가 좀 씹히는 맛도 나쁘지 않다.
다 갈면 통에 밀폐해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다. 소금은 먹을 때 알맞은 양을 떠서 넣는다. 소금을 넣었을 땐 빨리 먹는 게 좋다. 고소한 맛이 금방 변할 수 있다. 실제로 집에서 해보면 어려울 게 없지만, 고소함과 영양을 고려해서 만들려면 의외로 신경 쓸 부분이 많다. 콩국수 한 그릇, 여름을 나는 힘이 될 것이다.
※ 요리 음식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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