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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감이 건강을 좌우한다

C자 모양 어금니로 진화한 인간의 저작과 미각

by 강상철


요리는 식감과의 전쟁이다. 원재료를 어떤 형태로든 부숴야 하기 때문이다. 식감이란 음식을 씹을 때의 느낌이다. 주로 주재료의 경도나 무르기의 상태로부터 나오는 미각이다. 특히 씹을 땐 미뢰를 작동시킬 뿐만 아니라 뇌를 자극함으로써 미각을 더욱 추동시킨다.

요리를 하다 보면 식감이 중요해진다. 재료의 성질을 덜 해체하면서 맛있는 요리법을 찾게 된다. 고기는 구워 먹는 게 식감을 가장 잘 살리는 방법이다.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물에 끓여먹는다면 아무래도 식감은 떨어진다. 질긴 고기 부위라면 오히려 푹 끓이는 쪽이 식감을 살리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물컹한 게 싫은 사람들의 공통점에는 식감이 있다. 미역국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렇다.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물컹한 식감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반면 초밥이나 생선회의 경우에는 식감 때문에 좋아한다. 쫀득한 식감은 생선 탕이나 구이보다 회가 훨씬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식감은 중요하다. 라면의 식감을 살리려면 신속히 익히는 게 중요하다. 특히 젓가락으로 들춰 가면서 공기와의 접촉면을 넓혀주면 좋다. 식감은 대부분 수분과 연관이 깊다. 수분을 되도록 없애주는 게 핵심이다. 소면은 삶은 후 온도차를 이용해 냉각한다. 쫄면은 태생이 식감을 갖고 태어났다.

식감은 취향을 뜻하기도 하지만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최근 가지 요리는 장모님께 맡기는 편이다. 장모님이 틀니 때문에 수증기로 쪄서 부드럽게 무쳐 드시길 좋아해서다. 가지는 소금에 20분 절여 수분을 꽉 짜내고 볶으면 식감을 잘 살릴 수 있다. 건가지 요리라면 식감에는 문제가 없다.

나물은 데칠 때 되도록 살짝 삶는 게 식감을 살리는 좋은 방법이다. 생나물 자체는 그리 식감을 염두에 두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너무 삶아 물러지면 먹기에도, 보기에도 안 좋고 맛도 영양도 떨어진다. 수분을 제거한 건나물이라면 물에 불리더라도 식감은 나은 편이다.

인간이 원재료를 그 자체로 먹는 것은 사실상 특별한 경우다. 과일이나 쌈야채와 같은 일부의 것들이다. 그 외의 재료들은 가공이 불가피하다. 이미 미각과 섭취 시스템이 그렇게 진화해왔다.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다루는 인간은 요리하는 종이 이미 돼버렸다.

내가 장모님과 함께 주방을 쓰면서 요리의 차이점이라면 식감에 대한 관점이다. 장모님은 뭐든 오래 끓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식감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뜻이다. 육수를 낼 때도, 나물을 데칠 때도,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도 시간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식감은 씹는 저작 행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장모님은 사용하던 틀니가 안 맞아 식사를 못하시는 형편이다. 평소에 즐겨 드시던 멸치볶음, 땅콩조림 같은 걸 못 드신다. 과일은 껍질을 까서 드셔야 한다. 감자나 고구마는 푹 쪄서 드시고, 가지의 경우도 푹 쪄서 무치신다.

장인어른도 당뇨병으로 틀니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 국물 있는 것만 드셨다. 그때는 떡이나 라면 같은 것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떡은 탄수화물의 응집물이다. 당뇨에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당뇨병을 가진 장인보다 활동력이 좋으셨던 장모님이 더 쇠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잘 씹지못해 해야 하는 식이요법은 배우자를 고생시킨다. 장인어른이 틀니조차 못 갖췄던 시기에 장모님은 고생하셨다. 배우자의 음식을 항상 더 무르게 조리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요리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틀니를 사용할 수 있어 그나마 먹는 게 많이 좋아졌다.

요리는 과정 자체가 일단 재료를 무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위는 잡다한 재료를 짧은 시간 내에 소화시키도록 진화했다. 치아의 형태도 다른 동물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음식을 맷돌처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하는 12개의 어금니가 대표적이다.

어금니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치아다. 어금니가 없으면, 음식을 씹지 못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다. 애초에 소화기관 자체가 어금니가 있다는 전제 하에 발달했다. 인간과 초식동물은 어금니가 없으면 생존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인간은 때론 잇몸으로 살기도 하지만, 야생동물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인간은 C자 모양의 어금니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고릴라나 침팬지는 서로 평행한 ㄷ자 모양을 하고 있다. 침팬지와의 공동조상에서 갈라져 나오면서 C자 모양의 어금니로 진화했다. 그 전에는 완벽히 평행한 ㄷ자 모양의 어금니 쌍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사랑니가 필요 없는 단계까지 왔다.

사람들 중에는 무의식적으로 어느 한쪽의 어금니만 사용하기도 한다. 식사 중에 문득 왼쪽으로만 씹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껌을 씹을 때 한쪽으로만 씹는 경우도 생긴다. 젊을 때는 잘 모르지만 노화를 겪는 나이에는 균형된 치아 사용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식감을 오래 느끼는 것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좌측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고릴라, 인간의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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