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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로 Mar 02. 2023

[퇴사일기 6] 내 일을 하고 싶다

회사 잘 다니던 서비스 기획자의 퇴사일기 6편

내 또래의 사람들과 만나면 자주 나오는 대화 소재가 있다. 그 대화는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아야 되냐는 한숨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했던 일과 요즘 하고있는 일을 이야기하고, 몇년 뒤에는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대화는 회사원이든 아니든 같은 맥락으로 흘러간다.


이런 종류의 대화를 많이 하다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왜 스스로 뭘 해야될지 모를까? 왜 스스로 해야할 일을 남이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왜 당장 할 수 있는 일인데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이 있을까? 답은 모르겠지만 누구나 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직을 주제로 쓴 여러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직업을 자주 바꾸고 싶은게 문제인지 묻는 고민글에 달린 답변 중 하나였다. 진입장벽이 높은 일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직업생활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누군가에겐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진입장벽을 통과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다음 도전을 주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니, 나도 뭔가를 오랫동안 한적이 있긴 했다. 어렸을때 피아노를 13년정도 매일 쳤었다. 하루라도 연습을 안하면 손이 굳으니까,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도 못 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후로는 5년째 춤을 추고 있다. 햄스터는 10년째 키우고 있다(햄스터들은 2~3년정도씩 살았다).


진입장벽의 문제라면 내가 밥 벌어 먹었던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도 진입장벽이 낮은 편은 아닌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유명한 회사들에 정규직으로 다녀보기도 했고, 이번에 퇴사결심을 하기 전에도 유명한 회사들 여러 군데에 합격하기도 했었다. 그럼 대학입시나 편입이 빡센 수의대, 뭐 그런 곳을 갔어야 했던 건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만의 기준을 정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하고싶어 하는지, 내 꿈은 뭔지를 적는 나 사전을 만들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전문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부모님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 전문분야가 꼭 직업이어야 하는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내가 왜 서비스기획자가 되었는지 되짚어 봤다.


나는 대학교에서 기획을 비롯한 개발, 사운드, 아트, 그래픽스나 타이포 같은 것들을 얕고 넓게 배웠다. 영화제작이나 영상쪽을 수강할 수도 있었지만 안했다.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여러 직업들을 선택하기에 좋은 전공이었다. 한창 대학교를 다닐 때 나를 도와주시던 분이 개발자였고, 개발자가 핫한(?)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개발을 배웠고, 돈도 벌었지만 기획을 하게 됐다. 내 의도대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게 재밌었다.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개발자는 기획자가 기획한 대로 개발을 하게 되는데, 나는 남이 개발해주는것보다는 남이 기획해주는게 더 짜증났다. 사업적인 영역을 함께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게 재밌었고, 검증할 여러 가설을 설계하는게 좋았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누구에게 어떤일을 맡기면 잘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나열하는게 재밌었고, 실행하는 건 나보다 더 효율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게 내겐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획하는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걸 선택했던 것 같다.


내 직업이 뭔지보다는, 그 직업인으로서 내 삶의 가치를 얼마나 표현하고 있는지가 내겐 더 중요한 일이다.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게 곧 나의 전문성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가 한 말은 멋진 직장 다니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을 바로바로 표현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일이 좋다. 그래서 내 생각의 표현이 제한되는 일을 하는걸 답답해한다. 내 의도를 표현할 수만 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다.


이제는 좀더 내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누가 태클을 걸지언정 결국 내가 내 배를 몰면서 방향을 설정하고, 속도를 낼 수 있는 바다로 나가려고 한다. 쉬고 싶을 때 쉬고, 하고싶은 일 다 하고, 일한 만큼 벌고 싶다. 근데 쉬는걸 잘 못해서 마음이 조금 답답하긴 하다. 어쨌든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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