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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pr 27. 2021

무너지며 배우는 수영

하루 아침의 출발선에 서서

수영을 배운 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일주일 세 번 아침마다 고작(?) 배운 건 발차기와 호흡 두 가지. 드디어 오늘 팔 휘젓는 법을 처음 배웠다. 을 최대한 몸으로 밀착해 큰 원을 그리라는 강사님의 설명대로 연습했다. 하지만 손까지 쓰는데도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빠르게 침몰했다. 나의 몸을 이렇게 통제하지 못한 때가 언제였지. 아마 돌 무렵 걸음마를 배운 뒤 처음이 아닐까 싶다. 몸은 하나인데 발차기와 호흡과 팔 젓기가 각자 따로 움직이니 물에 떠오를 턱이 있나.


라인 두 바퀴를 돌며 실컷 물을 마신 뒤에야 강사님 앞에 섰다.  나 포함 초급반 수강생 3명은 모두 풀 죽은 듯 고개를 떨궜다. 다섯 골을 먹히고 전반전이 끝난 뒤 감독이 있는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는 선수 같은 기분이랄까.


"맘대로 안 되죠? 그냥 가라앉죠?

"네..." 

난 한바탕 꾸중을 듣기라도 한 듯 개미 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발차기가 안 돼서 그래요. 그러니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자세가 다 무너죠."


아. 수업 첫 시간에 배운 발차기부터 문제라니. 한 달이 다 됐는데 가장 기본적인 동작부터 문제였다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발차기부터 배워야 한다는 걱정이 들었다. 진도 좀 빼나 싶었는데.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는데.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냥 수영 그만할까라는 유혹들 무렵 강사님이 한 마디를 더 건넸다.


"원래, 무너지면서 배우는 거예요. 원래 그런 거야. 시겠죠. 그러니까 이번 주는 잘 안 돼도 이것만 계속 연습해 봅시다. 자. 출발!"


원래 무너지면서 배우는 거라니. 툭 던진 강사님의 한마디가 심장에 콕 박혔다. 완벽함이라는 벽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와서였을까. 강사님의 한 마디가 왠지 모르게 따스한 위로로 다가왔다. 벽하지 않으면 뭐 어때, 원래 그런 건데 뭐. 그러니까 한 번 더 해보자. 강사님의 토닥임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던 완벽이란 벽이 허물어지는 기분. 처음부터 잘 해내야 한다는 나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롭던 마음 마법처럼 사라지게 하는 주문 같았다.


"원래 무너지며 배우는 거예요."


물속에서 연습 와중에도 이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 지금껏 두려운 적이 참 많다. 무너지는 것 말이다. 그래서 깨지고, 아프고, 불안해지기보다는 무너지지 않을 안전한 길을 택곤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사랑을 시작할 무렵 상처 받는 게 두려워 지레 겁먹고 스스로 거리를 둬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팔휘저을수록 더 가라앉게 되는 내 습에 움츠려 발차기만 연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면서 나아가기란 어려운 었다.


이런 생각에 빠진 채 연습을 이어갔다. 팔을 크게 휘저으면 저을수록 자세는 엉망진창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무너지며 배운다는 강사님의 말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일까. 더 힘차게 팔을 휘저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럴수록 더 빠르게 가라앉고, 더 많이 물 먹고, 더 힘이 빠졌지만.


수영장을 빠져나오니 4월이 날 반겨준다. 하늘이 참 맑다. 오늘 아침, 하루의 출발선에 서 있다. 스스로에게 마법의 주문을 외쳐본다. "원래 무너지면서 배우는 거예요. 자. 출발!"


수영장에서 출근하는 아침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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