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감자 같은 <내 마음은>
스윽, 얼굴 옆으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우당탕 의자 소리가 울리는 파티션 너머로 기웃거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잔뜩 인상을 구기며 범인을 쳐다보면, 어떻게 매번 놀라느냐고 웃으며 사라질 뿐이었다.
사무실 가득 키보드 소리만 울리는 오후의 고요와 나른함. 어떻게든 이 시간을 타파해보려는 몸부림이 하필 이런 식의 장난이라니. 아, 다시 생각해도 정말 싫다.
나는 불쑥 나타나는 것에 유난히 취약하다. 스윽 들어오는 그림자,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누군가 때문에 심장이 철렁하며 뒷걸음치고 만다. 손끝까지 파르르 차가워지는 건 내 사정이다. 대부분 그 누군가는 장난이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 뭘 그렇게까지 놀라.” 이럴 때마다 속이 끓는다. 정색하며 싫다고 설명하면 ‘너무 예민하다’거나 ‘기가 약해서 잘 놀란다’는 반응이 돌아와 나를 기함하게 했다. 차가워졌던 손끝이 활활 타오르며 놀람이 화로 바뀐다. 결국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엔딩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장난이 드문드문 계속되었던 걸 보면 그 시절 당연했던 밤샘 프로그래밍이 너무 힘들었거나, 내 정색에 아직 예의를 갖춘, 일로 만난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달랐다. 체면과 예의 없는 순도 백 퍼센트의 화를 감내해 줄 관계이니 정색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역시 이런 장난을 즐겨 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잘 놀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나를 놀래켰다. 방문을 열 때, 냉장고 옆에서, 화장대에서, 설거지하느라 등 돌려 시야가 가려져 있을 때 옆에서 스윽 나타나는 것이었다. 장난기를 감추지 못한 등장이 반, 전혀 의도치 않은 등장이 반이었으니 타박 받는 본인도 억울하겠지만, 어느 날 결국 터져버렸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고무장갑을 벗어 던졌던가. 순식간에 화가 터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리에 힘 풀려 주저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가 다가온다고 알려주려던 딸들도 놀랐지만, 정말 놀란 것은 나였다. 남편이 사과하고 아이들도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다 혼자 남았을 때까지도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날 밤 혼자 식탁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 먼 기억에 닿았다.
“삐삑 삐 삐삐삐-”
잠결에 도어락 누르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벌떡 일어나 앉으니 더욱 선명했다. 내 집 문밖에서 나는 소리다. 뭐지? 생각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쾅쾅! 쾅!’ 현관문까지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어라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섞였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 날뛰니 숨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듯했다.
‘112 신고!’ 멈추지 않는 도어락 소리에, 이제 발로 차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다급했다. 한 골목만 나가면 경찰 지구대가 있는 집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멀리 순찰 나가지 않았다면 곧 도착할 거란 희망만 불끈 쥐고, 흔들리는 손잡이를 찌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에 불을 켜면 현관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갈지 모를 작은 원룸. 이 정도 소음이면 같은 층 누구라도 내다보고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들도 떨고 있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새하얗게 질려갈 때쯤 잠잠해진 어둠을 뚫고 경찰이 도착했다. 손잡이가 부러지기라도 할 듯 거칠게 흔들던 자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경찰관 두 분이 원룸 5층을 다 돌고 주변을 살피고 오셨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집을 잘 못 찾은 취객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일이라도 수상한 사람이 있거든 연락하라며 개인 연락처까지 적어주셨는데, 이 위로가 부메랑이 되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수상한 사람이라니. 야근이 일상인 직업이라 퇴근길은 늘 어둠과 함께였는데! 지하철 계단에서 올라와 큰 교차로 앞에 서면 호흡이 가빠졌다.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혹시 내 퇴근 시간을 지켜보고 있나. 갑자기 다가오는 인기척은 다시 나를 해칠 수 있는 수상한 그림자가 아닐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휴대폰이라도 무기 삼아 단단히 쥐고 걸었던 이십 대의 내가 떠올랐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야 했던 예전 동네는 원룸촌이라 불리며 여러 사건들의 배경이 되던 시절이었다. 뉴스에 나왔을지 모를 한밤의 비명을 듣고, 도망치듯 새로운 동네로 이사해서 겪은 일이기에 공포의 막다른 길에 몰렸던 것 같다.
나는 단순히 잘 놀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놀랄 때마다, 무서웠던 그 순간으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몸이 얼어붙고 온 신경이 치솟아 심장이 튀어나오던 그때로. 그러니 더욱 진심을 눌러 담은 ‘화’로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상처가 된 밑바닥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다뤄진다고 느꼈으니까.
화라는 게 한 번 시작되면 거기서 끝내기가 쉽지 않다. 줄줄이 엮여 올라오는 감자들처럼 다른 기억들까지 달려와 덧붙는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남편의 장난이니, 그날의 화에서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놀래킨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전 회사에서 내 이야기를 우습게 넘기던 동료들의 장난으로, 또 그것을 가볍게 지나쳤던 내 태도까지 들추며 마음이 시끄럽게 이어진다. 화가 나 꽉 닫아버린 마음은, 결국 내가 참아 넘겼던 많은 순간들까지 불러와 팽팽하게 부푼다.
“다친 마음은 나을 수 있고,
닫힌 마음도 언젠가 다시 열 수 있어요.”
『내 마음은』 이라는 코리나 루켄의 그림책은 이렇게 갑갑한 마음에 틈을 내준다. 어떤 날은 창문, 또 어떤 날은 물웅덩이나 얼룩이 되기도 하는 마음을 따스한 빛을 닮은 노란색 그림으로 표현했다. 화로 가득 차 터지기 직전까지 부푼 풍선처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펼치고, 빛을 받으며 활짝 창을 열고 있는 아이를 찾는다. 가만히 그 장면을 내려다보다가, 아이 등 뒤에 선 듯 창밖을 향해 천천히 숨을 뱉게 된다. 그대로 두면 결국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마음이, 푸스스 바람이 살짝 빠져나오듯 말랑해진다. 이렇게 그림책 장면들을 넘기는 동안 숨 쉴 공간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닫는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는 작가의 말은, 화가 나는 진짜 이유와 그 안에 감춰 놓은 내 목소리를 들어보라 속삭인다. 벌떡 일어나 실제로 창문을 열어 감정들을 풀어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도 예전의 기억들을 밖으로 내보내 보았다. 깜짝 놀라는 일을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게 되었는지, 내 경험과 서로의 다른 구석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나도 잘 놀라지만, 남편이 장난치는 것 또한 출발은 애정의 표현일 수 있겠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마음으로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겠지.
이젠 가족들도 안다. 절대, 절대 나를 놀래키면 안 된다는 걸. 하지만 남편의 장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기에.
“내가 화를 내거든, 창을 여시오.” 귀띔이라도 해 둘까.
“미안, 근데 바람이 좋네.” 사과의 말도 미리 일러둘까.
“그래도 난 역시, 화는 낼 거야.” 경고도 필수겠다.
창을 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가끔은 그걸로 충분하기도 하다. 일부러라도 멈출 필요가 있다. 줄줄이 딸려 올라올 화를 멈추고 조금이라도 환기되면, 굳어진 공기가 풀리기도 할 테니까.
나는 나대로, 막아두었던 과거의 마음에 작은 구멍을 내듯 마음의 창을 살짝 열어두기로 한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면, 어두운 마음도 흘러나가 언젠가 다시 가벼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로 했다. 나를 위한 창문이지만 드는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내 주변에도 스밀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