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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Aug 04. 2022

출근길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서울의 심장까지

아침 6 30. 희뿌연 하늘과 구름 사이로 하늘이 환해진다. 어제 내린 비는 밤이 저무는  아쉬웠는지 머리가 살짝 젖을 만큼만 흩뿌린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담배를   입에 물며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버스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온다. 오늘은 유독 사람이 적어 좌석에 앉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카톡하는 사람, 방송 보는 사람, 포털 보는 사람 등 제각각이다. 요즘은 릴스나 쇼츠, 틱톡같은 짧은 동영상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많다.


목적지인 오송역에 버스가 도착할 무렵 세종시의 홍보용 로고송이 흘러나온다. 출근길 중 가장 짜증나는 순간이다. 80년대 건전가요를 연상케 하는 가사와 도입부인 ‘아~ 아~ 아~’가 시작할 때 이미 내 손발가락은 오그라들고 없다. 더구나 약간 중독성이 있어서 버스에서 내릴 때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짜증난다.


KTX의 자유석은 보통 열차 맨 끝의 18호차에 있다. 계단을 올라오고 또 계단을 올라와서 한 번 더 계단을 올라온 다음 약 100미터 정도를 더 걸어 가야 한다. 아침 운동이려니 하고 걷기는 하는데 조금 늦기라도 하는 날에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할 것 같다.


예전에 몇 번 출발 직전에 뛰어서 타 본 적이 있는데 표현 그대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죽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즘은 늦어도 그냥 걷는다. 일찍 왔다고 가만히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지루하니까. 자유석에 자리가 있기만 바랄 뿐이다.


KTX에 올라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에 있는 순방향 끝 복도 쪽 좌석이다. 내릴 때 바로 내릴 수 있고 승차할 때도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히지 않아서 좋다. 좌석에 앉아서는 보통 라디오를 듣거나 집에서 들고 나온 신문을 본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내릴 때쯤에는 눈을 감고 자고 있다. 오늘은 유독 열차 소음이 심했지만 잠은 잘 온다. 아침 출근길 10분이면 낮잠 한 시간보다 잠의 효율이 좋다.


KTX에서 내렸다. 지금까지는 상경길이고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출근길이다. 서울역이 종착역이라 내리는 사람이 많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머리만 보고 있자면 일하러 이동하는 일개미 같다. 늦으면 안 되니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쭉쭉 나가야 되는데, 여름이나 비 오는 날에는 다른 사람과 살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서로 불쾌할 수 있으니까.


서울역의 동쪽 끝 플랫폼으로 가면 전철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러 역사 밖으로 나왔는데 마주 보이는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와 남대문 경찰서를 보는 순간 ‘여기가 서울이구나’라는 감격스러움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그저 삶의 현장일 뿐.


출근 시간대의 1호선 전철은 무질서하다. 플랫폼이 좁아 전철을 기다리는 줄과 오가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엉켜있다.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내리는 곳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칸으로 이동해 꾸역꾸역 자리를 잡고 서 있으면 5분 안에 전철이 온다.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고나 할까.


대학 시절 전후에 타봤었던 1호선 전철은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특히 신도림, 영등포, 서울역에서는 사람을 비빔밥처럼 비벼서 꾸겨 넣던 시절도 있었다. 조금 이른 출근 시간대라 그런지 그 정도는 아니다. 요령껏 잘 서면 옆 사람과 닿지 않을 정도로 서 있을 수 있다. 조명도 밝고 에어컨도 시원해서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치고는 쾌적한 편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까.


대한민국의 중심 세종에서 서울의 심장 광화문까지의 진짜 마지막 구간이다. 종각역 1 출구부터 사무실까지 도보. 시간으로는  6 정도인데, 이게 그렇게 힘들다.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힘들기도 하지만 2시간가량의 여정의 마지막이라서 그런  같다. 2시간이면 김포공항에서 하네다 공항까지   있는 시간이다.


아직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교보문고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오늘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지만 이미 지쳐서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다.


이렇게나 길게 썼는데, 아직 8시 30분. 하루 일과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신청곡은 싸이, 나의 Wanna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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