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고 살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 지치고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을 쫓다보면 어느새 나를 잊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분명히 목적지는 있는데 목적지가 없는거 같은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말제르브에게 보내는 편지 외> 에서 장자크 루소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기이한 처지에서 머릿속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내버려 둘 수 있는 방법은 “고독한 산책과 그 산책 도중에 떠오르는 몽상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고독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타인의 방해없이 오롯이 본인의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의미한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누군가 얘기 했다. 장기적인 레이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몸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조언을 받은적이 있다. 이 마라톤은 길게 봐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마라톤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생각이 없어지고 오로지 목적지를 위해서 몸이 움직이고 있는것을 느끼게 된다.
내 발걸음이 이끌리는대로 지면에 닿는 느낌에 이끌려 계속해서 달린다. 그러다 보면 잘하고 있는데도 본인은 이게 맞는건가? 지금 조금 쉬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는 순간도 온다. 이런 부분에서도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대입해 볼 수 있을거 같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을 정립할 시간을 가진적이 언제였는가? 달콤한 상상에 젖어 있었던 적은 언제 였을까? 몽상을 위한 몽상에 잠기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사고하기 위한 에너지를 분배할 상황에 놓여야 한다. 사고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나를 둘러싸고 급변하는 세상의 일들을 급하게 쫓아다니며 흩뿌려지는 생각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화 시킬수 있는 생각을 정립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결국은 혼자다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러나 등산을 함께 하기 시작하면 산을 오르며 발을 맞춰주는 동료과 함께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다. 고통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또 고통을 맞이하는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등산은 번민에 시달렸던 본인에게 해결책이 될 새로운 빌미를 제공한다.
등산을 시작하면 이런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 등산을 오르며 변화하는 지형들을 여러가지 기교 섞인 발재간으로 오르고 나면 좋은 공기와 좋은 풍경이 본인을 좋은생각으로 이끌어 준다. 좋은 생각이라 해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배출되지 않는 아이디어들은 인생의 짐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등산을 하는 와중에 내옆에서 발맞춰 걸으며 마음이 열린 상태의 친구가 있으면, 끊임없이 샘솟는 좋은 생각을 받아줄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 생각의 꼬리가 어느순간에 내 심연깊이 자리 잡은 생각에 다다르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등산의 시작보다는 하산의 과정에서 얻을수 있는 등산의 물리적 고통에 따른 보상이다. 산에 가면 재난 당할것 같은 아쉬운 상상들이 하산하면서 단단한 생각으로 정립되고 본인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산을 등반 하는건 부담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등산을 통해 얻은 감정들로 인해, 일정한 형식이 없던 생각들이 하산을 하면서 놀랍게 정리가 되는 아주 독특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고독한 내영혼이 떠올리는 생각들은 누군가가 위조하거나 탈취해 갈 수 있다. 그러나 하산을 하면서 느낀 본인 영혼의 근원을 찾아가는 명상의 여정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어느 부분을 건드려 빼앗아갈지 알기 힘들고, 평화로운 나의 감정을 망치는 방해를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Musepen 멤버들과 하산을 함께 하며 인생 홀로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 고갈되어 가던 나의 감정과 상상력에 힘이 더해지는 걸 느낀다. 제대로된 하산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다음 등산이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