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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Jun 18. 2019

서교동 골목의 능소화

2019년 6월 18일 화요일의 딱 한 장


  비가 오는 새벽이면 자꾸만 잠에서 깬다. 오늘 새벽에는 비가 요란하게도 내려서 내내 잠을 설쳤다. 오죽했으면 물난리를 겪는 꿈까지 꿨다.

  습에 약한 사람이라 이런 날엔 얼굴이 팅팅 붓는다. 잠을 목과 허리도 뻐근하다. 비가 좋아질 뻔한 적도 있었고 그 시기의 비는 나름대로 비릿하고 풋하고 아름다웠으나 이내 다시 비 오는 날마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하는 일이 반복됐다. 몸에서든 사주팔자에서든 비를 거부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비가 그치고 난 후의 공기만큼 아침과 잘 어울리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출근길에 보니 능소화가 피었다. 어제까진 없던 풍경이다. 와르르 비가 내린 후엔 늘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

  곧 또 탈 듯한 무더위의 계절이 오겠다. 리넨 모자를 쓰고 서교가든 앞 능소화 더미에 묻혀 팔랑팔랑 사진을 찍던 작년 여름의 나를 본다. 올해도 같은 자리에서 꽃을 볼 줄은 몰랐겠지. 잊을 때쯤 다시 찾아오는 예쁜 것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계절들은 또 얼마나 소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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