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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Jun 17. 2021

지베르니 : 클로드 모네의 집에 가다

몇 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화창한 6월이 되었다.

날씨도 좋고 백신도 맞았겠다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

전부터 "가자 가자" 했던 지베르니를 주말에 가기로 했다.

티켓은 미리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전자 티켓을 미리 구매하지 않으면 헛걸음칠 수 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이다. 남편이 입장 3일 전 아침 8시경에 티켓을 구입했는데 내가 확인한 11시경에는 우리가 예약한 9시 30분 타임은 이미 마감이었다.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인 노르망디 지역의 지베르니로 출발했다.

지난주에 이곳에 다녀온 브라질 친구 말로는 차가 엄청 막히고 주차장에 자리도 없었다고 했다.


가는 길에 개양개비 꽃밭이 펼쳐졌다. 남부에서는 흔한 풍경이지만 파리 근교에서는 볼 일이 많지 않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개양개비 꽃 키우는 거 금지야. 마약성분이 들어있어서"

남편은 몰랐다고 한다.

기념 엽서

현장에서 티켓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이미 인쇄된 종이 티켓이 들려 있었다.

30분마다 250명이 입장한다고 했다. 정말 둥둥 떠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30도까지 올라가서 마스크를 쓰고 숨쉬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 쓸 수도 없었다.


주차를 하고 내리니 바로 보이는 모네의 조각상. 

이 곳은 모네가 조용히 작품 작업에 집중하던 그가 아끼던 장소라고 한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지베르니는 나에게 황홀한 나라다.- 클로드 모네>


아이가 연못부터 보고 싶다고 해서 일본 정원으로 갔다.

사람들이 서서 사진을 찍느라고 앞으로 전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만발하고 연못도 아름답고 아침에 물을 뿌렸는지 땅은 온통 젖어 있었다.

옆에 있는 할머니들은 "이곳에 대체 정원사가 몇 명인 거냐?" 서로 물으며 규모가 큰 정원에 놀라워했다.

꽃 종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꽃이 있었고 다들 아름다운 자연을 찍기 위해 기꺼이 무겁고 커다란 전문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딸아이가 망가트린 내 캐논 카메라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의 심장, 대가, 아버지라 불리웠다. 

화가이자 자신의 정원을 직접 가꾸는 정원사이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의 자료로 지금의 정원이 유지되고 있을 텐데 그의 감각이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련 시리즈가 탄생한 정원
모네의 집, 기념품 가게에 타일이 딱 3장 남았길래 15유로 주고 사 왔다. 일본풍 같다.


아이가 8명이었기에 큰 집이 필요했을까. 모네가 썼다는 침대까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모네 작품뿐 아니라 세잔과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네도 당시 화가들처럼 일본 그림에 매료되어 있어서 인지 일본 작품도 많았다. 

정원의 대나무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양산을 든 여인' 작품을 보고 아이들을 불렀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거 기억나냐고 물었다.

"아~~~~"  그게 끝이다. 그때 찍은 사진을 들이밀어야 기억할까 말까.

언제 어떤 장난감을 사준건 어쩜 그리도 잘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딸아이는 그림을 보고 에트르타에 가자고 한다. 작년 추억이 너무 좋았나 보다.

"올해도 가야지~ 아빠가 3시간만 운전하면 돼!"

집 입장을 위한 가방 검사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보안 요원은 음식물 먹는 것 금지, 백팩도 꼭 가슴 앞으로 매라고 지시했다. 소매치기가 많은 모양이다.

기념품 샵 규모도 상당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열쇠고리를 골랐고 나는 어김없이 엽서를 샀다.

4유로짜리 책도 샀다. 오랑주리 박물관에서 샀던 수첩과 같은 수련 작품이 커버로 되어 있었다.

모네의 집 입구(왼쪽)와 관광 안내소(오른쪽)a


모네의 집을 나와 골목을 걸었다. 지베르니 박물관과 개인 갤러리, 카페 등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표지판을 보며 관광 안내소를 찾고 있었다. 

거이 골목 끝까지 다 달아 가정집들만 보이길래 오던 길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남편은 굳이 왜 관광 안내소를 가려고 하냐 물었다. 

해가 엄청 강해 살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기에 피곤했던 모양이다.

내 답은 간단했다. "자료로 가지고 있어야지"

남편은 인터넷에 더 많은 자료가 있는데 굳이 종이를 받겠다고 헤매는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가다 우연히 조그마한 간이 사무실을 발견했다. 

"관광 안내소"였다. 안내원은 지도를 펴 보이며 설명을 해주었다. 

이미 다 돌아보았지만 마치 이제 막 도착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지도를 보고 짜증이 났다. 

골목 끝까지 갔을 때 조금만 더 걸었다면 클로드 모네의 무덤이 있는 교회를 볼 수 있었다. 

"이걸 내가 놓쳤네! 이것 봐! 무조건 관광 안내소부터 가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니까. 모르니까 못 보잖아"

원래는 관광안내소부터 들려 마을 지도를 받으려고 했다. 찾지 못해서 바로 모네의 집으로 들어왔다가 그의 묘지를 못 봤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그깟 지도 뭐가 중요하냐'던 남편을 아쉬워하는 날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Sainte-Radegonde 교회에 저렇게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인터넷 고마워!)


올여름 튈르리 공원 축제 때 맞춰 아이들과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첫 번째 일요일은 무료입장이니까 안 갈 이유가 없다.

인터넷으로 무료 전시 및 공연을 검색해 보자. 특히 지역 신문을 꼭 읽어야 한다.

이메일로 뉴스레터를 받으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2019년에 다녀온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수련 작품


2019년 쁘띠 팔레 인상주의 전시전: 모네의 작품. 1880년 작 -겨울 센느강의 일몰 


모네의 둘째 아들이 60 여 점의 모네 작품을 기증해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모여 있다는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도 가봐야겠다.


6월 17일 목요일부터 프랑스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동금지도 6월 30일 예정에서 20일로 당겨졌다.

다시 일상이 돌아오는 것 같아 기쁘지만 남미발,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락다운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어쨋든 올 여름은 또 즐겁게 지나갈거라 예상된다.

(원래 바캉스 기간에는 자유롭게 풀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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