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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6. 2022

소설 '스토너'와 나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우리 사회의 중장년 중, 원하는 데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세계 10위에 GDP(국내총생산)를 달성했고 세계 7위의 무역규모를 가지고 있다. 반면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2022 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146개국 중 59위라고 한다. 경제규모만큼 행복지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우리는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소설 스토너를 읽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오십 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돼서 더 유명해진 소설이라 한다. 스토너란 인간의 담담한 인생을 그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묘한 기분이 전해온다. 스토너와 나의 삶이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자(부모의 바람으로) 농업기술을 배우러 대학에 갔다. 그러나 스토너의 문학적 소질을 발견한 아처슬론교수에 영향을 받아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결국 척박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의 뜻과는 다른 인생 항로를 선택한다. 이후 공부를 지속하며 학자의 길을 걷는다. 그의 첫 번째 선택이다. 어느 날 사교모임에서 만난 이디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순식간에 결혼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금세 서로에게 맞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게 되며 불행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그의 두 번째 선택이다. 그들 사이에는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가 생긴다. 아이를 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스토너에게 이디스는 그레이스와 스토너의 공간(서재)을 뺏어간다. 상실감마저 그대로의 삶으로 받아들인 스토너는 대학에서 조차 자신을 배척하는 학생 워커와 동료 교수 로맥스에게 철저히 유린된다.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스토너의 삶에 어느 날 캐서린이라는 청강생이 등장한다. 둘은 학문적으로 교감하며 서로를 깊게 사랑하게 된다. 그의 세 번째 선택이다. 그러나 로맥스 교수의 치밀한 괴롭힘으로 둘 사이는 깨지고 만다. 그렇게 스토너는 가정과 직장은 그대로 유지한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는 이디스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결혼한 결혼생활이 남편의 죽음과 더불어 깨지고 후에는 알코올 중독이 된다. 그의 네 번째 선택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스토너는 어느 날 마지막을 맞이한다. 


스토너는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한동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지 않으셨더라면 조금은 더 인생이 순탄했으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가난은 삶의 선택의 여지를 안 준다(고생은 어머니가 하셨지 내가 한건 아니니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일탈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매 순간, 보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집중했다면 지금보단 나다운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가정해본다. 유년기 이후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 봐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의 결핍은 덜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마저 대본다. 고단한 삶이 주어지면 생존이 더 급한 과제가 된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고, 아무튼 그렇게 감정처리를 하며 살았다. 물론 가까이 친구들과 형들이 있었지만 내면세계의 정립과 확장은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다. 일종의 상실감이 나도 모르게 묻어들었다(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래도 사고 쳐본 적은 없으니 다행인가. 그럭저럭 한 삶에 순응하며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그러다 성향상 내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왔다. 


결혼 전 엄격하고 자기중심적인 어머니의 성격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어머니의 주어진 삶이 그랬으니). 그러나 어느 정도는 당신의 강한 성격에 기인했던바 그 피곤함을 결혼을 통해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이디스와 그레이스 같은 탈출인가?). 그렇게 결혼을 하고선 어머니의 감정선에선 벗어나는 듯했으나 또 다른 굴레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가 더없이 가깝다가도 가끔은 멀어지는 느낌을 갖는다. 아내의 입장에선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나로선 가끔 넘을 수 없는 벽을 실감한다. 나도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이해 못 해줄 때는 아쉽다. 배려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할 때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생각보다 좋아하는 일들이 내겐 명료해서 시간과 배우자의 인정만 있으면 깊고 넓게 빠질 수 있을 텐데 쉽지가 않다. 싸우기 싫으니 어느 순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그렇다고 자주 싸우는 건 아니다.. 보통은 얘기도 많이 하고 좋아하는). 반대로 아내의 심연 속에 깊은 자아를 내가 못 알아줄 수도 있다. 미안하다. 시간이 갈수록 자의든 타의든, 집과 아이들.. 가깝고 좁은 지인들과의 만남에만 익숙해져 가니 삶이 단조로워짐을 느낀다. 내 삶이 서서히 박제되가듯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익명으로 살다가 익명으로 가는 거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나이에 도달하니 인간의 삶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의 딸들은 본인들의 삶을 순전히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스토너가 물었던 것처럼

난 나에게 무엇을 기대한 걸까?


우리의 부모세대는 생존이 더 중요한 시대를 살았으니 꿈이란 표현도 어색했다. 그러나 이후 세대들도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에겐 삶의 무게와 책임, 의무가 주어진다. 그것을 순응하든지, 박차고 나서든지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어차피 견딜 수 있을 만큼 살아가게 돼있다. 나는 내 삶에 무엇을 기대한 걸까? 스토너는 삶을 순응해가며 살았지만 그 안에서 선명한 선택을 해왔기에 나는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그처럼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매혹당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안목이고 능력이며, 

그 매혹을 따라갈 줄 아는 용기야말로 자유를 향해 가는 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서 : 삶을 위한 철학수업.. 중에서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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